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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Sep 04. 2021

쿨한 사람 대신, 쓰는 사람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별다른 장래 희망은 없었지만, 되고 싶은 무언가를 꼽자면 그건 쿨한 사람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에 둔감하고, 남의 눈치 따윈 보지 않고, 개썅마이웨이의 인생을 사는 사람. 곁을 지나칠 때 왠지 쿨워터향이 날 것 같고, 휘뚜루마뚜루 걸친 옷 쪼가리도 힙하게 소화해내는 사람. 시니컬한 문체로 글을 쓰고, 악플 같은 게 달려도 한쪽 입꼬리를 올려 흥, 하고 웃고 마는. 그런 상상 속의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대강 눈치챘겠지만, 나는 위에서 묘사한 '쿨한 인간'과 정반대의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에 예민하고, 그 때문에 자꾸 체하고 소화불량에 걸리고, 어깨가 뭉친다. 남 눈치를 엄청나게 보고, 개썅마이웨이는 커녕 그냥 마이웨이하는 것도 힘들어한다. 사회가 부여한 책임, 이를테면 K-장녀로서의 책무나, 사회의 평균에 속하기 위한 노력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젊은 꼰대가 다 된 건지, 직장 상사에게 누구보다 깍듯하고,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서열을 가장 앞장서서 수호하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당연히, 곁을 지나갈 때 내게서 쿨워터향 따위는 나지 않는다.

'안쿨한 사람'으로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던 와중. 한 단어를 만났다. '롤백'. 문과 중에서도 성골 문과인, 게임도 하지 않는 내게 참으로 생소한 단어였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소개하자면, '롤백'은 '코드를 배포하기 전으로 되돌리는 일'을 말한다. 이 단어를 마주한 순간,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롤백이라니. 판타지에서 흔히 나오는 회귀, 빙의, 환생보다 근사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하든, 어떤 잘못을 하든, 그 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나면, 후회도, 찜찜한 마음의 찌꺼기도 남지 않겠지. 갑자기 요정 할머니가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준다면, '롤백'하는 능력을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롤백'하고 싶은 순간들은 주로 이러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는 그 질문에 멋없게 대답한다. 얼마 전, 글쓰기 모임에서 '맥주'라는 주제로 글을 썼을 때 모임원 중 한 분이 내게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때 "모든 맥주를 다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는데, 정확히 30초 만에 그 대답을 후회했다. 나는 헤페바이젠, 쥬시한 뉴잉 스타일 IPA, 청량한 라거, 그리고 괴즈 같은 와일드 비어를 좋아한다. IBU가 높은 스타우트나 포터를 좋아하지 않고, 바디감이 무거운 벨지안 스트롱 에일 같은 종류는 한 모금도 채 마시지 못한다. 그런데, 바보 같이 "다 좋아해요."라니, 그 답변에 대해 과장 없이 일주일은 후회한 것 같다. 그러나 저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냥 "다 좋아해요."라고 어물쩡 대답하고 멋쩍게 웃을 것이다. 글로 쓴 걸 말로 주절거리는 건, 너무 뻐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혹은 업무 중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를 더 구리게 처리했을 때, 아무도 날 비난하지 않지만 내가 가장 나 자신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을 때, 모든 걸 롤백해버리고 싶다. 실수 같은 건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을 못된 버그 같은 거라고, 덮어쓰기나 취소 버튼 하나로 다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고 되뇐다. 그리고 결국 그런 일 따위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좌절한다. 나는 실수 따위 안 하고 배려심 넘치고 지적이고 완전무결한 개쩌는 인간이 되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다음 생에서도, 아니 100번의 과거 회귀를 거치더라도 이루기 어려운 소원일 테다.

롤백이라는 단어에 골몰하다 보니, 결론은 이렇게 났다. 인생에 롤백이 어디 있냐, 그런 게 있으면 인생은 얼마나 깔끔하고 시시할까. 어차피 롤백 같은 거 할 수 없는 거, 나도 쿨한 인간이 되는 것쯤은 이번 생에서 포기하자. 대신 글 쓰는 사람이 되자. 후회를 곱씹는 걸 멈출 수 없다면, 더 잘근잘근 씹어서 소화해버리자. 후회하는 인간에서 극복하는 인간이 되자. 글 속에서 자신을 열심히 해명하고, 위로하고, 인정했다. 현실 세계에서의 내가 자신을 거세게 비난할 때, 활자 세계에서의 나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롤백이나 패치가 오류를 없는 일인 척 덮는 작업이라면, 글쓰기는 정 반대다. 끊임없이 되감기, 그것도 마이너스 배속으로 무한 되감기 하는 일이다. 과거로 회귀하여 쓰고자 하는 순간을 생각하고, 심지어는 활자로 박제까지 한다. 모두의 기억 넘어 아련하게 사라질 기억을 내 손으로, 직접. 그 과정은 때론 괴로웠지만 후련하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이게 바로, 쿨하지 못한 인간의, 좀 지질한 구석이 있는 인간의 생존법이라는 걸. 뭐든 글로 적고 나면 그저 활자 속 작은 에피소드가 된다. 나의 쿨하지 못함을 오히려 정면으로 드러냄으로써, 좀 쿨한 체도 할 수 있다. 나의 끔찍한 실수도 재미있고 유쾌한 일화로 남는다. 그게 좋았다.

글을 하루에 한 번 쓰든, 일 년에 한 번 쓰든, 나는 영원히 글 쓰는 사람일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차지하지 못하는 마이크를, 활자의 세계에서나마 손에 꼭 쥘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혹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제야 후회를 다 털어내고, 두 다리를 쭉 뻗고 잠들 것이다. 글쓰기와 함께라면 내 인생도 작은 진폭으로나마 곡선을 그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게 상승곡선이든, 하향곡선이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니 계속 쓸 것이다. 어딘가에 다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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