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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혼부 연예인과 결혼했다 20

애교가 1도 없습니다

by 장정윤

승현은 필요 이상으로 웃지 않고 할 말만 하는 내 모습이 가식 없고 솔직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누군가의 애교를 부담스러워하는 스타일인데 나는 그렇지 않아 좋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승현은 제대로 짝을 만났다. 그러나 시아버지의 바람은 달랐다.


나는 애교가 1도 없다. 한 번은 아빠랑 동네 옷가게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주인이 아빠에게 (뭘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따님이 애교가 많이 보인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아빠는 그때 살짝 진저리를 치며 '애교요~? 애교 없어요 우리 딸!'이라고 말했다. 난 그 상황이 웃기면서도 좀 미안했다. 아빠는 당연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겠지만 마음 한 구석엔 팔에 매달리며 애교 있는 딸을 그려봤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도 마찬가지다. 다 커서는 엄마에게 팔짱 한 번 낀 적 없다. 음... 뭔가 쑥스럽고 간지러운 건 하고 싶지 않은데 아빠나 엄마는 그런 걸 딱히 바란 적도 없다.


엄마, 아빠에게 스킨십도 사랑한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는 친구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아마도 부모님이 다정하기가 끝없는 분들이시라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으리라 짐작한다. 반대로 우리 집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 절대로 들켜선 안된다는 미션이라도 갖고 있는 분위기다. 그냥 같이 술 마시고 맛있는 거 먹고 웃고 떠들고 농담하는 분위기. 누구 하나라도 거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낸다면 어색함을 못 견디고 각자 방에 들어가 다음날까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조카가 태어나면서 조카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 종일 달고 살았다. 그렇게 사랑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13살 조카도 썩 애교 있는 성격은 아닌 걸 보니 애교 DNA가 없는 거 같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항상 관심과 사랑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스킨십이며 사랑한다는 말이며 굳이 아쉽지 않았다. 츤데레 스타일의 가족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많은 가족들이 우리 집 같지 않은가?


그런 집안에 애교쟁이가 하나 들어왔는데 바로 승현이었다. 승현은 부모님에게 칭찬과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대화 중간중간 노래를 한다던가 유행어를 써가며 분위기를 유쾌하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또 식사할 때 부모님의 앞접시가 빌 때마다 드실 음식을 하나씩 올려드렸다. 확실히 우리 집 스타일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를 그렇게 챙겨주는데 싫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승현은 아무리 작은 거라도 부모님 갖다 드리라며 챙겨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안마기며 소파며 큰 선물들을 했다. 나와 둘이 맛있는 걸 먹을 때면 다음엔 부모님하고 같이 오자고 꼭 말했다. 실행되는 일은 드물었지만 난 그런 승현의 마음을 부모님에게 잘 전달하였고 부모님 또한 마음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셨다. 무엇보다 승현은 나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다. 부모 입장에선 내 딸에게 잘하는 사위만큼 이쁜 사람이 어딨을까. 가끔 싸워 속상한 마음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아빠는 본인 마음이 승현에게 멀어질까 자꾸 이르지 말라고 하셨고 엄마는 내 편을 들어주다가도 그래도 승현은 예쁜 사위라 하셨다. 귀염성 있는 행동에 스스럼없는 승현의 복이라 생각한다.


나도 마음만큼은 승현 못지않게 시댁에 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나 승현과 다른 점은 오사바사하게 굴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만큼 표현하지 못한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마음과 다르게 애교 있는 말들이 목젖 위로 튀어나오지가 않는다. 목젖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다. 모든 귀염성 있는 말들이 거기서 걸러진다. 어머님은 자주 나에게 옷이며 액세서리 등을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으시는데 (격양된 목소리로) 어머님 너무 예뻐요~라는 그 한 마디가 안 나와 (무심하게) 괜찮은데요~ 하고 만다. 마음도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걸 꼭 입 밖으로 꺼내야 한다니... 신혼 초 시어머니는 가끔 승현과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하셨는데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하는 성격도 못되니 처음엔 몇 분도 안 되어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서는 혹시 어머님이 내가 어머님 전화를 귀찮아한다고 생각할까 봐 거의 종일 괴로웠던 적도 있다. 차라리 문자 애교는 조금 할 수 있는데 어머님은 문자를 안 하시는 게 함정. 그래도 얼마 안 돼 어머님은 내 성격을 파악하시고 본인께선 말이 너무 많거나 과장해서 반응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다고 하셨다. 정윤아, 난 너 같은 성격이 딱 좋아 라고. 그 이후로 공연히 애교 섞인 말투로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문제는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만큼 마음을 나눌 기회가 없다 보니 그만 서운한 마음이 드셨던 모양이다. 새 식구 맞이한 재미가 하나도 없으셨을 거다. 은근히 그 서운한 기분을 내비치셨는데 우리 며느리는 애교가 없다고, 막걸리 사들고 공장 한 번 안 온다고 방송에서 두어 번 말씀하셨다. 솔직히 그 방송을 보면서 순간 마음이 서늘해지며 눈물이 핑 돈 건 사실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진심이 통하지 않았구나. 아버님 입장에선 나와 많은 말을 주고받는 것도 아니니 서운할 만도 하다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다. 이젠 아버님도 며느리 성격이 그러려니 받아들이신 거 같지만 애교 없는 며느리 본인의 답답함과 불편한 마음을 누가 알까.


나도 속시원히 손하트를 공중에 날리며 ‘울 아버님 최고~ 다음에 또 만나요~ 뿌잉뿌잉(?)’ 이라고 외쳐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아버님 들어가 보겠습니다’라고 밖엔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 목젖 위로 올라오지 않은 그 많은 말들이 그 많은 마음들이 전달될 날이 올까.


승현이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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