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뻔하게 흘러가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아빠의 결정에 많이 울었다. 일을 하다가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울었다. 같이 일하는 작가들이 시도 때도 없이 눈가가 촉촉해지는 날 이상한 눈으로 봤다. 효진 작가는 별별 이야기를 다 공유하는 내 단짝 동료였지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승현과 난 같이 일하는 프로그램 팀원들에게 연애를 비밀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도 연애를 알리지 않았다. 혹시나 소문이 나면 승현이 곤란해질 것 같았다.
아빠가 승현을 만나지 않겠다는 건 이 연애도 반대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난 엄마와 아빠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많아질 테고 또 승현과 결혼을 결심한다 해도 수많은 난관이 펼쳐질 것이란 의미였다. 아빠를 설득해야 했다. 이미 난 이때 승현과 결혼을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에게 사실 그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제발 한 번만 만나보라고 생떼를 부렸던 거 같기도 하다. 난 부모의 뜻을 잘 거스르지 않아 왔다. 착해서가 아니라 맞서는 일이 귀찮았고 성격이 강한 부모님을 이길 자신도 없었다. 아빠에게 승현을 만나보라 설득한 일은 나에겐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물었다.
“네가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만나는 보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만날 필요도 없어.”
나는 그냥 질러버렸다.
“결혼할 거야! 한다고!”
그렇게 약속이 잡혔다. 아빠는 코스 요리가 나오는 중국집 룸을 잡았고 꽤 고가의 술 수정방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덜컥 겁이 났다. 승현은 결혼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었지만 나에게 결혼하자 확실히 말한 적은 없었다. 내가 한 말에 엄마와 아빠는 결혼까지 생각하고 나왔는데 승현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다면? 승현은 당황할 것이고 엄마와 아빠는 상처받을 것이다. 그제야 정신이 버뜩 들었다. 이젠 승현의 의중을 자연스럽게 확인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선배, 그… 우리 엄마 아빠 만나는 거요. 부담스럽진 않아요?”
“아니. 전혀 아닌데.”
“아니 그게… 엄마랑 아빠는 좀 진지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나도 진지하게 생각하는데.”
이제 됐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저 승현에게 밥 한 번 사주겠다는, 엄마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부터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울고불고 혼자 난리를 쳤다. 결과적으로 결혼을 추진시킨 건 나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지금 나도 쓰면서 깨달았다.
그렇게 그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