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절 Aug 13. 2020

마곡사에서의 한여름

여름방학

‘여름’하면 뜨겁던 그날의 마곡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위치한 작은 사찰이다. 매미 소리가 지겨워지던 8월, 12살이 된 나는 그 해도 어김없이 가족들과 여름 여행을 떠났다. 고적답사 떠나듯 각 지역의 역사유적지와 사찰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가족 휴가를 보냈는데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의 역사적 취향이 묻어난 여행 일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다만, 그 여름에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 자체가 흥분될 만큼 좋았다.

 

 그러니깐 마곡사로 떠난 그 해, 2005년 여름도 무지막지하게 더웠는데 이젠 여름을 싫어하는 내가 그때까지만 해도 이 계절을 꽤 즐겨했다.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는 여름이 도래했다는 신호를 주는 우거진 녹음을 마주하기만 하면 엄청 긴장한다. 그토록 좋아하던 여름이 어쩌다 내게 사라졌을까.

 

 여름을 좋아하던 마음이 소멸된 이유는 아마도 연례행사였던 가족여행이 마곡사를 기점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 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는데, 그것은 사람 속을 헤아릴 줄 모르고 숨어버렸다. 정말 더웠지만 가족 앨범에 차곡차곡 끼울만한 사소한 기억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이제는 속절없이 추억 너머로 사라져 버린 그때가 무진장 그립다.

 

 제대로 된 가족여행을 떠나본 지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나는 그사이에 점점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의 부모는 자식들 모르게 경제에 속박당하고 위협받으며 남은 기간을 유예시키기 위해 애를 썼던 사이에 가족 여행은 더 이상 모두의 입에 오르지 않았다. 당연히 가족 여행은 우리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 점처럼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서 멀어져 갔다.

 

 요즘 꿈에서 자주 그날의 마곡사가 나온다. 지루한 사찰에서 나와 며칠간 묵게 될 펜션 근처 계곡에서 집에서 가져온 김 빠진 튜브를 갖고 아빠와 어린 동생들과 함께 물에서 첨벙거리던 이미지가 자꾸 튀어나왔다. 아장거리며 걷던 막내를 가슴에 안고 아빠와 우리를 보던 엄마의 지친 미소도 흐릿하게 보였다. 가끔 너무 행복했던 기억들은 잘 꺼내지 않는 편인데, 꿈에서라도 아릿하게 남은 가족과 함께 한 여행을 들춰보고 싶었나 보다.

 

 나의 부모는 그때보다 많이 늙었고, 나와 어린 동생들은 건장하게 성장해 남은 젊음을 채워나가고 있다. ‘함께’ 하고 있지만, 한 계절을 모두가 그날처럼 막연히 행복하게 보낼 수 없음에 종종 마음이 무거워졌다. 올여름이 끝나기 전에, 나는 나의 가족들과 그날의 마곡사처럼 여름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그날의 마곡사가 자주 그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