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절 Sep 14. 2020

우리가 달리는 진짜 이유

달리기=성장서사


시행착오라는 말을 좋아한다. 삽질해도 그 과정을 인정해 준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확대해서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감이 좋다. 시행, 착오. 거듭된 실패에도 어찌 되든 목표하던 바로 올곧게 가기만 하면 되지 않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그랬다. 그럼에도 삶은 되도록이면 아니 가능하다면 결과주의, 결론 주의에 가깝다. '역시 세상은 요지경' 거리면서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해주지도 않는 위안을 셀프로 해본다.

시행착오라니 요즘 꽂혀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것은 작년엔 '걷기'였다면 올해는 '달리기'이다. 고작 2달 정도 된 런린이이지만, 달리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정말 흐음 뻑! 말이다. 예전에는 달리기가 꼭 사서 고생이다 싶었다. 안 그래도 가슴 벅찬 인생 일부러 뛰기까지 하면서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숨이 벅차오르는 삶에 지쳐 버린 심신에 달리기가 꽤나 효과 좋은 처방이었다. 뛰는 것에 집중해서 그럴까. 형체 없는 답답함과 우울감이 맨 앞에 있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마스크 안에서 겨우 호흡을 나눠 가며 숨을 쉬느라 정신없다. 1km가 이렇게 길고 험했는지 뛰고 나서야 알게 된다. 심장이 터질 것 같던 런데이를 몇 회차 거듭하고 나면 1km를 거뜬하게 뛰어낸다. 어느새 기록을 보고, 모니터링하며 속도를 높이고, 시간을 줄여나갈 생각을 한다.

신기하게도 달리기는 성장 서사에 가깝다. 호기롭게 뛰었다가 금세 지쳐 멈추다가도 스스로 다독여가며 앞으로 추진하며 달려 나간다. 달리기가 꼭 인생 같다. 그러니 애처롭고 안타까운 현실이라도 달릴 때의 인생에서만큼은 무조건 심리적 만회가 가능해진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2달을 꾸준히 달리며 단련해온 심장이랑 거래를 하며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가볍고 추진력 있게 뛸 수 있게 도와달라고. 심장이 말을 듣겠냐마는 그것이 꼭 기폭제가 된다. 결국 해냈고, 어제보다 평균속도를 1km가량 줄였다. 얼굴이 벌게졌고, 몸의 하중을 상당 부분 실은 오른쪽 무릎은 거칠게 욱신거렸고, 파열로 인해 인내가 늘어날 대로 늘어난 왼쪽 발목은 퉁퉁 부었다. 그럼에도 그 아픈 것들을 이고 뛸 때가 좋았고, 뛰고 나서 흐른 땀과 거친 호흡이 내겐 감동이었다.

코로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늘었다. 나이키 NRC 앱으로 그날의 달리기를 인스타그램에 기록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을 보면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코로나를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정서적 저항인가 싶기도 했다. 아님,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될 나이에 가까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만큼 쉽고 간단하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운동이 또 없지 않나. 이상 지금까지 달리기 찬양 글은 아닙니다만.

내가 쓴 문장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잡념엔 달리기, 생각 정리엔 걷기가 답. 그러니 먹먹하고 답답하고 잡스러운 감정을 소회 하고 싶을 땐 시행착오가 많아 심장도 머리도 발목도 아득해지는 달리기를 함께 해보자. 분명 그 감정과 고민은 달리고 나면 작고 소박해진다. 그럼 가뿐히 우리의 생으로부터 점점 소멸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곡사에서의 한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