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직전에 깨달은 내가 그를 화나게 한 이유

by 온호류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이혼을 앞두고 터져버린 오열 (남이 되기까지 D-11)



"지금 몇 시야!? 왜 이렇게 배려가 없어! 자는 사람은 생각 안 해?"


새벽 1시, 자는 줄 알았던 (전)남편이 문을 벌컥 열고 나와 빽 성질을 냈다. 그의 일정에 맞추느라 아침 6시에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어제 저녁을 먹은 직후부터 열심히 짐 정리를 해오던 중이었다. 함께 살던 이 집에서 나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기 위해 말이다.


"너 일정 맞추느라 이러는 거잖아. 그러게, 여유 있게 출발하면 나도 자고 일어나서 짐 싸도 됐을 텐데, 오후에 약속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내 부탁 들어주기 싫다고 굳이 굳이 아침에 출발하겠다고 한 게 누군데."

"잠을 자야 운전을 할 거 아냐. 그리고 내가 짐 옮겨주는 것도 이미 충분히 협조하는 거야."

"내가 무슨 그냥 짐을 옮겨달래? 빨리 우리 사이 정리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넌 회사 다니니까 너 편하게 내 몸만 쏙 빠져주겠다는데 그거 못 도와줘? 어차피 서울 가는 길인데 짐 좀 실어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누가 여기 계속 살고 싶데? 원하면 니가 살아."



새벽부터 우리는 또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남편은 나의 배려 없음에 대해, 나는 그의 치사함에 대해, 우리는 그렇게 또 서로를 비난하며 마지막 남은 미움까지 알뜰하게 주고받고 있었다. 그의 성화에 못 이겨 어질러 놓은 짐들을 대충 쓸어 담고선 2시가 다 돼서야 경태를 꼭 껴안고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비어 가는 내 방



새벽 5시, 짐 정리를 다 못했던 터라 3시간만 자고 일어났다. 업어가도 모르게 잘 자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잠귀가 매우 밝았기 때문에 그가 깨지 않게 조용조용 짐을 쌌다. 늘 그보다 늦게 자던 내가 침실에 들어가려고 문손잡이만 잡아도 깼을 만큼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라 나는 몰래 침입한 도둑놈처럼 조심조심 움직였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항상 그러하듯, 그는 얼마 안 있어 침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어떻게 시작됐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자기를 일찍 깨웠다고 그런 거겠지) 우린 2차 설전을 벌였고, 가뜩이나 짐 쌀 시간도 부족한데 말싸움까지 하느라 정리 못 한 짐들을 뒤로하고 서울로 출발해야 했다.


"아침부터 미안해."


웬일로 남편이 먼저 사과를 했다. 자기가 예민해서 아침부터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잠 못 잔 것도 맞으니까 나도 미안해. 나는 근데…."


괜찮다는 말만 하려고 했으나, 그가 먼저 마음이 풀린 듯한 태도로 나오니까 여태껏 그의 대화 거부로 하지 못했던 말들이 한꺼번에 다 튀어나와 버렸다.


"우리가 지내온 세월이 있는데 너가 이렇게 돌변한 게 너무 서운해. 적어도 법적으로 완전 남이 될 때까진, 이혼 과정을 끝마칠 때까진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잖아. 오히려 마지막이니까 더 잘해줄 수도 있잖아. 난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되려 너한테 못 해준 것만 생각나고 미안하기만 해. 더 잘해줄 걸 후회되면서 애틋해진다고. 이혼을 결심했던 순간에도, 중간 과정에서도 난 진심으로 네가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길 바랐어. 나처럼 널 힘들게 하는 사람 말고 널 화나지 않게 하는 그런 착한 여자 만나서 잘 살길 바라고 있다고.

그런데 넌 뭐가 그렇게 내가 밉니. 너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많이 힘들었던 거 알잖아. 어떻게든 이혼 안 하고 잘해보려고 노력한 거 너가 제일 잘 알잖아. 그런데 어쩜 나한테 이렇게 모질게 대하는 거야?"


어제 함께 차를 타고 오가는 와중에도 툭 건드리면 이런 서운한 감정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거 같았지만, 차 안의 공기와 그의 표정이 너무 냉랭해서 차마 입을 열 수 없던 그런 마음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물론, 그가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지난 연재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이미 마음을 정리한 것처럼 보이니까 자신이 갖고 있는 미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보란 듯이 더 차갑게 구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내게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 정말 미워져 버린 거일 수도 있다. 원치 않는 이혼에 휘둘리는 게 싫어 빨리 정을 떼려고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유가 어쨌건 간에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우리는 함께 아이 계획을 세우며 미래를 그리던 그런 사이였다. 때론 밉고, 날 아프게 하지만 그래도 한 팀이 되어 각박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가자고 약속했으니까 끝까지 가보자고 결의를 다진 그런 사이.


그렇게나 각별한 사이였는데 이혼하기로 했다고 해서 이렇게 돌아서 버리는 게 서글펐다. 여느 때처럼 잘 화해했으면 우린 다음 싸움까지 또 잘 지냈을 거다. 이제 화해하지 않기로 한 거 말곤 전과 다를 바 없는 사이인데 갑자기 이렇게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의 이런 토로에 남편은 자신의 토로로 답했다. 내 노력은 알지만 자기도 억울하고 쌓인 감정이 많다며 설움을 토해냈다. 내가 맨날 그의 잘못인 것처럼 말하는데 우리 둘 다 똑같다며 내 잘못도 크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듯했다. 남편이 말했다.


"난 존중받는 느낌 하나도 못 받았다고. 이건 니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은 거야. 내가 어느 부분에서 모멸감을 받았는지, 좌절감을 느꼈는지."

"돌아봤어. 그래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잖아. 너를 더 존중해 줬으면 좋았을걸,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내가 널 존중하지 않아서 우리가 이렇게 된 거라고 날 비난하면 안 되지. 우리 부부상담하기 전에 내가 너에게 받아온 취급이 있잖아."

"그러니까 그런 논리로 나를 대하면 되냐고. 내가 널 함부로 대했으니까 나도 당해봐라! 이거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어."

"그건 너가 잘못한 거야."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아니야? 자기 기분 나쁘게 한다고 욕하고, 말로 상처 주고, 하면 안 되는 행동 하고, 술 먹고 실수하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 안 좋은 마음이 쌓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니니? 이런 게 쌓여만 가는데 어떻게 너를 존중할 수만 있겠어. 근데, 그럼에도 너를 더 존중하고 인정해 줬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그게 내 한계였어. 근데, 너가 과거에 한 행동은 '미안하다고, 앞으로 잘한다고 했잖아!'라고 했다한들 쉽게 지워지는 감정이 아니야. 그렇게 간단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그럼 어떡해? 어떡하냐고!"

"너가 나를 좀 더 보듬어주고 좀 더 사죄하는 마음으로 나를…"

"난 그랬어!"


남편은 내 말을 끊고 자긴 그랬다고 했다. 과거의 행동에 대해 충분히 사죄할 만큼 했다고. 하지만 나는 크리스마스의 악몽같이 큰 사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사과의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밖에 그가 내게 준 상처들에 대해서도. 그의 사과 방식은 말없이 저녁을 차려주거나 장난을 거는 식이었지 내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준 적도, 여한이 없을 만큼 달래준 적도 없었다. 나는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


"그랬다고?"

"내가 했다는데 니가 뭘…"

"내가 받질 못했잖아. 하나도!"


나도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가 우리 관계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하나도 없는 건 아니었는데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거겠지. '하나도'라는 말에 격분한 그는 언성을 더욱 높였다.


"그건 니가 느끼는 거잖아! 내 행동에 대해서!"

"내가 느끼게끔 해줬어야지. 너만 아는 게 아니라 내가 느끼게끔! 그래, 우리 처음 이혼하기로 하고 나서는 내가 훨씬 못했어. 왜냐하면, 나는 이미 한계치가 왔었거든. 그래서 그만하자고 한 거잖아. 근데 너가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며? 그럼 잘했어야지. 너 2달 만에 다시 욕했잖아. 내가 한계에 다다를 동안 너가 못 한 게 있으니까, 너가 더 잘했어야지."

"난 잘했어!"

"넌 잘 못했어."

"그건 니 생각이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듯했던 우리 대화는 어느새 또 격해져 있었다. 서로를 비난하며 서로를 탓하고 있었다.


서울 가는 내내 이렇게 말다툼을 벌이다가 나는 그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오열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동안 그와의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내가 참고 견뎌야 했던 것들은 싹 잊고 자신의 억울함만 내세우며 어떻게든 나를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에 화가 치밀었던 거 같다. 나는 지난 과거를 다 잊고 그의 행복을 바라고자 하는데, 여전히 날 미워하며 내 잘못을 증명하려는 그에게 분노가 폭발한 거다. 얼마나 흥분하고 악을 썼는지 호흡이 진정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선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스러워했다. 아마 운전 중이 아니었으면 여느 때처럼 울지 말라며 잘못했다며 꼭 안아줬겠지.


한 치의 물러섬도 없던 우리의 싸움은 또 상처만 남긴 채 허무하게 끝이 났다.





5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내가 이렇게 오열하면서 감정을 폭발시킨 건 손에 꼽는다. 기억나는 건 세 번 정도? 생각해 보면 그때마다 남편은 바로 화를 거두고 먼저 미안하다며 나를 다독였다. 평소 같지 않게 말이다. 순간, 언니가 예전에 한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부부상담을 받은 지 2달 정도 됐을 때쯤 다시 이혼 위기가 찾아왔고, 남편이 엄마에게 전화하면서 언니도 우리 부부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언니는 말했다.


"제부는 화내는 걸로 밖에 자신의 아픔이나 힘듦을 표출할지 모르는 사람인데, 네가 분노라는 감정 앞에서 꼼짝도 안 하니까. 점점 더 세게 화내며 너를 밟으려고 하는 걸지도 몰라. 자기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감정적으로 하나도 안 힘들어 보여서 점점 화의 정도가 강화되는 거지. '이래도 아무렇지 않아?' 하면서."


사실 언니는 남편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래서 그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한다고 했다. 언니도 화가 나면 감정적으로 치닫는 편이었고, 마치 남편과 내가 그러하듯 처음엔 별거 아닌 걸로 시작했다가도 나중엔 언니는 성질이 나서 울고불고하는데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목소리 좀 낮춰, 쪽팔리게 왜 이래."라고 하는 식이었다. 언니는 나의 그런 태도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화가 나면 물건을 부수고 밥상을 엎어버리는 아빠를 보며, 작은 일에도 쉽게 성질내는 엄마를 보며, 나는 '화'라는 감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거 같다. 성인이 되어갈수록 그런 감정과 화를 표출하는 모습을 멀리하게 됐고, 그렇게 나의 성격은 화가 나면 아주 냉소적이고 차분해지는 쪽으로 굳혀져 갔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약간의 경멸을 품은 채.


"네가 너무 단단해서 화가 잔뜩 난 제부는 그런 너를 깨트리고 싶었을 거야. 난 이렇게 화나는 데 너는 너무 평온하니까 약이 오르는 거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너의 태도가 화가 난 자기를 이상하고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 거 같아서 더 화나고, 자기처럼 힘들고 눈물 나게 만들고 싶어지는 거야."


언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남편을 머리끝까지 화나게 만든 것은 그의 분노에 공감하기보단 그 분노를 냉소적이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내 차분한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좀 더 여리고, 감정적으로 취약하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성격이었다면 남편과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분노를 노려보는 사람이 아니라 분노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사람이었으면 우리 관계가 좀 나아졌을까? 승부욕을 자극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싸주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행동해야 했던 걸까. 강해도 약한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괜찮아도 안 괜찮은 척, 참을만해도 못 참겠는 척. 좀 더 자주 눈물을 보이며 힘든 모습을 보여야 했던 걸까.


그에게 격노하느라 온몸의 에너지를 다 쏟아내곤 씩씩거리며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마음 한편에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잘못과 나의 최선을 찾고 있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그냥 "이 새끼가 나쁜 놈이었어요." 하고 깔끔하게 끝내버리면 좋을 것을, 뭐 이렇게 끝까지 나의 부족함을 찾느라 혼자 바쁜 건지…. 이 순간만큼도 온전히 그를 미워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미련해 보였다.


부르르 떨리던 몸이 가라앉을 때쯤,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좋아하는 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단 나의 바보 같음을 탓하는 게 더 편한, 나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눈물 없는 여자 눈에 눈물 나는 걸 보고 싶어 했던 그를 욕하기보단 눈물을 좀 더 흘릴 걸 그랬다고 나를 탓하는 게 마음이 편한, 그런 사람인 거 아닐까.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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