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싸워가며 일찍 출발한 탓에 9시도 안 된 이른 아침, 친정집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격해졌던 싸움은 나의 오열로 끝이 났고 그 뒤론 큰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각자의 착잡한 마음을 달랬을 뿐.
차 안 가득 싣고 온 나의 짐들을 옮기는 데, 마치 그날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 2달 전쯤 이혼을 결심한 그날도 여기 오는 길에 크게 싸우고선 이렇게 짐을 옮기는 중이었는데…….
그날도 오늘처럼 내가 오열해서 싸움이 중단됐다면 우린 아마 이혼하지 않았을 거다. (전)남편은 나의 오열로 분노가 꺾여 차분해졌고 살짝 풀 죽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였다면 남편도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고 엄마에게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다.
여러 개의 박스와 큰 캐리어 두 개를 엘리베이터에 싣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데 묘한 적막감이 흘렀다. 이혼을 결정하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만나는 거니까 그도 긴장됐을 거다. 하필 집이 24층이라 올라가는 시간이, 그 정적이 참 길게도 느껴졌다.
현관문이 열리고 우리 소리를 들은 부모님이 현관으로 오셨다. 엄마는 남편을 보더니 운전하느라 고생했다며 그를 챙겼고, 아빠도 "ㅇ서방 어서 와."라며 평소 우리가 집에 왔을 때랑 똑같이 그를 반겼다. 엄마 아빠의 바람처럼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편은 들고 있던 박스를 엄마의 발 아래쪽에 내려놓고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엄마는 울 준비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그의 말을 듣자마자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혀서는 괜찮다며 그를 안아주었다.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빠를 제외한 우리 셋은 그렇게 현관 앞에서 우두커니 훌쩍이고 있었다.
그는 짐을 마저 옮겨준 뒤 돌아갔고, 조금 뒤 언니와 형부가 도착했다. 아까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집에는 약간의 침울함이 감돌고 있었다. 언니가 기분 전환할 겸 카페에 가서 브런치를 먹자고 해서 아빠는 집에 남고 언니 부부와 엄마를 데리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가는 차 안에서 아침에 있던 일에 대해 언니 부부에게 말해주었다. 둘도 내색은 안 했지만 그와의 좋은 추억이 많은 만큼 속으로 몰래 훌쩍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나에겐 안 좋은 행동을 많이 했어도 우리 가족에겐 한 번도 나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가족에겐 그저 철부지 막내딸과 살아주는 좋은 사위이자, 제부이자 동서였을 거다. 나도 그렇고 아직 실감이 안 나서인지 우리 가족은 나로 인해 강제된 그와의 생이별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아까의 장면이 떠올랐다. 본 적 없던 그의 처참한 표정과 울먹이던 목소리. 대전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도 그려졌다. 나의 짐들과 오고 가는 말다툼으로 가득 찼던 차 안이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땐 텅 비어 있을 거였다. 그를 화나게 하는 어떤 것도 없이 고요하게. 집에 돌아가면 이전보다 더 텅 비어버린 내 방이 그를 맞이할 거고, 시간이 촉박해 정리하지 못한 우리의 결혼사진도 덩그러니 그를 반길 거다. 그는 그 액자들을 하나씩 떼어 쓰레기 봉지에 담으며 쓸쓸한 표정을 짓겠지.
느닷없이 눈물이 흘렀다. 엄마와 언니 부부는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혼자 결혼사진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니, 아직 따끔거리는 나와의 추억을 손수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그의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내가 할걸. 잠을 안 자더라도 내가 하고 올걸. 그에게 너무 가혹한 일을 시킨 거 같았다. 안 그래도 나보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내색은 안 하지만 더 아파하고 있을 텐데…….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은 점점 더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처음엔 얘 뭐냐며 웃던 언니도 실컷 울라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고, 형부는 조용히 휴지를 더 가져다주었다. 나를 너무 괴롭게 하니까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나 가족보다 가까웠던 존재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은 강렬했다. 잘한 결정이라고, 서로 윈윈이라고 긍정 회로를 돌리지만 긍정의 힘으로 마취되지 않는 마음의 어느 부위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우는 거 같았다.
사랑과 증오, 고마움과 미움. 미안함과 원망, 안쓰러움과 해방감. 이혼이라는 사건은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던 감정들이 얼마나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알게 했다. 그가 힘든 것보단 차라리 내가 힘든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를 아끼면서도 새벽에, 그리고 오는 차 안에서 그가 한 말을 생각하면 정나미가 떨어졌다. 텅 빈 집에서 홀로 지낼 그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이제 더 이상 이런 유치한 말다툼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했다. 이혼하길 정말 잘했다 생각하면서도 너무 속상해서 울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이상한 감정 상태가 지속됐다.
섞이면 안 되는 약물이 섞인 것처럼 내 몸의 이상 반응은 종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꺼이꺼이 우는 내 모습을 본 엄마와 언니가 당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둘은 내가 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할머니 장례식이라던가 슬픈 영화를 보고 운 것을 제외하고 나의 아픈 감정을 드러내며 눈물을 보인 것은 성인이 되고 아마 처음일 거다.
지난 화에서 나의 단단함이, 그의 분노에 공감하지 않는 차분하고 냉소적인 태도가 그의 화를 돋우고 그로 하여금 나를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아닌 이겨 먹고 싶은 사람으로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길 했다. 내가 잘 울고 그가 달래줘야만 하는 여린 사람이었다면 이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닿으니 나는 왜 이렇게 드세고 강인한 성격을 갖게 되었나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식에서 부모님께 낭독한 편지에 나는 이렇게 썼다.
"엄마, 아빠, 저를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잡초처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잡초 같은 제가 정말 좋아요. 밟혀도 금방 일어나는 강인함이 좋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제가 좋아요."
학창 시절, 아빠의 반복되는 사업 실패로 우리 집은 급식비를 나라에서 지원받을 만큼 힘들어졌다. 부모님은 빚을 갚기 위한 맞벌이로 바빴고, 자연스레 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나이인 고1 때부터 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본의 아니게 뭐든 알아서 해결하는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란 거다. 이후 대학교, 유학, 대학원, 결혼 등 대학교 1학년 등록금을 제외하곤 일을 하든, 장학금을 받든,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 왔다.
비싼 유학을 대신해 미국에서 베이비 시터를 하며 영어를 배우거나,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며 대학원을 그만두는 등 파격적인 행보에도 "너는 뭘 하든 잘할 거라 걱정이 안 된다." 같은 말을 듣곤 했다. 생활력과 적응력이 만렙이라 사막에 갖다 놓아도 잘 살 애라는 이미지였던 거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잡초, 혹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들장미 소녀 캔디. 나의 아이덴티티는 잡초 맛 캔디 혹은 달달한 잡초. 뭐 그런 거였다.
타고난 성격도 있었다. 요즘 말로 깡이 세다고 해야 하나? 고집 세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반항심도 가득한 그런 청춘만화 날라리 남자주인공 같은 캐릭터가 나였다. 그렇다고 일진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중3 일진 언니가 우리 반 급식에 손을 대면 뭐 하는 거냐며 대들 수 있는 정도의 대범함은 있었다. 예쁜 외모가 아니라 콤플렉스가 있을 법도 한데, 눈이 작다고 놀리는 오빠들에게 쌍꺼풀 수술 해줄 거 아니면 입 닫으라며 받아칠 여유도 있었다. 예쁜 꽃은 아니었지만 밟혀도 무럭무럭 잘 자라는, 누구도 함부로 상처 입힐 수 없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낙천적이고 털털한 성격과 안 좋은 기억력이 만나니 극강의 회복탄력성까지 더해졌다. 시험 보고 나면 빛의 속도로 잊어버리는 시험 범위처럼, 자고 일어나면 안 좋은 기억이 금세 지워졌다. 그래서 남편이 아무리 아픈 말로 비수를 꽂아도 다음날이면 꽤 멀쩡해졌고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남편의 화해 시도에 금방 기분을 풀곤 했다. 아빠와 크게 싸우고 가출한 다음 날 의외로 멀쩡했던 것처럼 말이다.
남편은 타격감 제로인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게 습관이 된 거고, 나는 그냥 넘기면 안 되는 것을 쉬이 용서하고 지우는 게 습관이 돼버렸나 보다. 어릴 적부터 자리 잡아온 잡초 같은 정체성에 익숙해진 탓인지 힘든 상황도 별거 아닌 듯 넘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쉽게 상처받거나 눈물을 보이는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게 나는 맘껏 성질을 부려도 되는 사람이 돼버린 거다.
언니는 나와 남편의 관계를 보며 강해 보이는 사람의 고충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도 힘든데 스스로도 힘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은 더더욱 모르니 충분히 위로받고 챙김받지 못하는 거지."
언니 말이 맞다. 여태껏 괜찮았으니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으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받으니 아무리 단단한 나여도 내부에 균열이 생기고 있던 거다. 언니는 이어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강해보이면 쓰러질 때까지 패게 된다고, 가까운 사람한테는 약해야 해. 그래야 보호받고 챙김을 받아."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할 때 산들바람에도 휘청거리는 코스모스처럼 금방 자지러지고, 앓아 눕고, 눈물을 뚝뚝 떨궜다면 우리의 관계는 좀 더 아름다워졌을까?
여태껏 살면서 당당하고 단단한 내 성격이 꽤 마음에 들었었는데, 참한 아내가 되기에 썩 좋은 성격은 아니었나 보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나를 지키고 그 공을 인정받고 싶던 그의 욕구를 나는 끝내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울타리 같은 거 필요 없다며 그가 만든 울타리를 나도 모르게 부숴버렸는지도 모른다.
언니 말처럼 남편에겐 밟아도 괜찮은 잡초가 아닌 잘 보살펴줘야 하는 한 송이의 코스모스여야 했는데. 처음 받아보는 극진한 보살핌이 성가신 듯 '난 알아서 잘 자라니까 내버려둬.'라고 나도 모르게 무언의 압박을 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