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상담으로도 안 되던 게 이혼 전날에는 가능했다

by 온호류


2024년 4월 30일 화요일

최종 법원 출석을 위해 대전으로 (남이 되기까지 D-1)



엄마가 나를 버스 터미널에 내려주며 말했다.

"마지막 인사 잘하고 와. 고생 많았다고 토닥여 주고."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면 한 달 뒤쯤으로 법원 출석 날짜를 정해준다. 의무적으로 4주의 조정 기간을 갖고 약속된 날에 가정법원 판사를 만남으로써 법적으로 진짜 남이 될 수 있는 거다. 내일이 바로 그날이다. 완전히 남이 되는 날.

대전으로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대전에 가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이제 진짜 끝이구나!'

아직 실감은 안 났지만 슬슬 몸과 마음이 우리의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니 (전)남편은 출근했는지 없었고 집은 고요했다. 나는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데다 늘 경태와 함께 다니니 딱히 외롭다거나 쓸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텅 빈 집에 들어오는 순간 숨 막히는 고독감이 나를 압도했다. 드문드문 남아있는 우리가 함께였던 추억이 더 이상 우린 함께가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매일 퇴근하고 이 광경을 마주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벽에 걸려있던 우리의 결혼사진은 사라져 있었지만 장식장에 놓아둔 작은 액자는 그대로 있었다. 서울숲에서 내 고등학교 친구가 찍어준 스냅사진. 사진 속 우리는 즐거워 보였다. 두 번의 유산을 떠올리게 하는 두 개의 임신테스트기도 액자 앞에 그대로 놓여있었고, 대학원을 그만두던 날 그가 서프라이즈로 보내 준 대왕 꽃다발의 '축 해방' 리본도 장식장에 그대로 달려 있었다.


이 집은 우리의 내면과 닮아있었다. 반절은 이미 이혼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머지 반은 여전히 과거와 헤어지지 못하고 추억을 버리지 못한채 망설이고 있는 우리의 어정쩡하고 모호한 상태 말이다.




대충 짐 정리를 한 뒤, 저번에 급하게 왔다 가느라 인사드리지 못한 다른 단골 카페에 들렀다. 젊은 사장님 커플이 운영하는 윅스커피. 여자 사장님이 키우는 포메라니안 콩이가 앙칼지게 짖으며 반겨주던 곳. 약 2년간 거의 매주 들렀지만 경태와 콩이는 한결같이 데면데면했는데, 오늘은 마지막이라 그런지 서로에게 더욱 무관심했다. 겨우 간식으로 둘을 한 곳에 모아 기념사진을 찍었따. 사장님이 자신의 핸드폰에 있던 귀여운 경태 사진을 즉석에서 뽑아주시기도 했다.



경태와 콩이



처음으로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는 바 자리에 앉아 두 분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제 매주 못 본다는 사실을 아쉬워하시는 게 느껴졌다. 나만 아쉬운 게 아니라서 기쁘기도 했다. 아직 실감이 안 나서인지 지금은 남편과 헤어지는 것보다 내가 애정하던 대전에서의 일상과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 된 것이 더 안타깝고 속상했다.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으나 4시간 가까이 대화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서 집에 들어갔다.

도착해서 보니 남편은 혼자 저녁을 먹은 듯했다. 상투적인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 남편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혹시 같이 밥 먹으려고 내가 오길 기다렸나...?' 살짝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내일이면 앞으로 안 볼 사이가 될 텐데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무시하고 짐 정리를 하다 거실에서 잠들었다.






다음날, 남편은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했고 저번에 왔을 때처럼 먹고 싶으면 먹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게 우린 함께 식탁에 앉았다. 진짜 마지막 식사였다.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 이거 하나는 알아줬으면 좋겠어. 난 네가 싫어서 헤어지는 게 아니야.”

말하기 전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내가 울먹이니 그가 왜 우냐며 달래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어쩌다 보니 법원 가기 전까지 3시간이나 계속됐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부 기억나진 않지만 아주 부드러운 대화였다.


"내가 좀 더 고맙다고 표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힘들게 일하고 와서 해주는 밥. 두 번, 세 번 맛있다고, 고맙다고 할걸."

식탁에 앉을 땐 경직돼 있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계속 말했다.

"난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게 아무렇지 않은데 넌 힘들었을 거 같아. 우리가 이렇게 다른데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널 배려하지 못했어."

"같은 게 아니라 많이 힘들었고, 상처였어."

남편이 자연스레 말을 보탰다. 결혼 생활 통틀어 처음 제대로 인정받는 기분이라며 그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거 같다는 얘기도 했다. 남편이 원하는 게 뭔지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충분히 해줄 수 있던 것들인데,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후로도 그동안 남편에게 사과하고 싶었던 것, 한 달의 이혼 조정 기간 동안 후회하고 반성했던 것들을 남김없이 쏟아냈다. 한바탕 얘기하고 나서는 그가 내게 잘못해서 큰 상처로 남았지만 제대로 사과받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난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어. 그때 네 말 안 듣고 자전거 위험하게 탔다고 화내고 가버리는 너 쫓아가다가 넘어지고 집에 들어왔을 때, 차라리 뒈지지 그랬냐고 상처 난 곳이랑 얼굴이랑 베개로 계속 때렸던 거. 그 뒤에 서울 가는 버스 탔다가 급체해서 죽다 살아난 거. 난 아직도 버스 타기 전에 뭘 못 먹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와서 다 받아주느라 고생했다며, 미안하다며 안아주기도 했다.


거의 처음으로 온전하고 안전한 대화를 한 기분이었다. 우린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자기 생각이나 감정, 기준에 따라 판단하거나 끊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예전 같으면 도돌이표 같은 싸움이 반복됐을 주제인데 조금의 언쟁도 없이 대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그는 어느 때보다 활짝 웃었다. 웃는 얼굴이 조금 슬퍼 보였다.



상담실에서 배우던 날씨로 감정 표현하기



이전에는 남편의 행동에 실망하거나 화가 나거나 못마땅해서 늘 할 말이 많았다.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하니 말을 끊고 그게 아니라며 내 얘기를 했다. 내가 옳고 그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가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분노하면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 그로 인해 남편은 더 화가 났다.


하지만 끝나는 마당에 더 화날 것도 말할 것도 없었다. 그냥 전부 들어주었고 네 말이 맞다고 미안하다고 내가 부족했다고 그렇게 얘기가 이어졌다. 5년간 안 싸우고 싶어서, 잘 싸우고 싶어서 그렇게 상담받고 시간을 할애했는데, 사실 잘 싸우는 법은 정말 간단한 거였다.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게 해주는 것, 그것을 귀담아 잘 들어주는 것,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자신이 미숙했던 부분을 인정하는 것. 이게 전부였다.





대화가 끝나고, 설거지는 자기가 할 테니 출발하기 전까지 짐 정리를 마저 하라며 그가 나 대신 또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문득 그 뒷모습이 참 짠해 보였다. 난 여태껏 왜 이 모습을 보면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을까.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한 울분이 나의 시야를 가린 걸까? 저렇게 안쓰러운데, 너무 고맙고 미안한데. 왜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나는 그의 뒤로 다가가 (차마 꽉 끌어안지는 못하고) 등에 몸을 기댄 뒤 어깨를 토닥여 주면서 얘기했다.

"고생 많았어. 미안해. 여기서 혼자 설거지하면서 얼마나 속상했어. 알아주지 못해서, 알아봐 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남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분 좋냐. 이게 뭐라고!"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미안해서 나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설거지를 멈추고 구슬프게 흐느끼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함께 울었다. 그의 어깨를 계속 토닥여 주면서.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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