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예뻤던 사랑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by 온호류


2024년 4월 19일 금요일

차량 명의 변경을 위해 대전에 내려간 날 (남이 되기까지 D-12)



고속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이혼 서류를 내러 왔을 땐 2박 3일간 머물러서 여유가 있었는데, 이번엔 새벽에 바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라 시간이 촉박했다.


대전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집에 캐리어만 던져두고 동네 카페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을 만났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만남이었기에 (전)남편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는 게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간 있던 일을 풀어내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서울 올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아쉬움 가득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남편을 만나러 집으로 갔다.


전화와 카톡으로 느껴졌던 그의 싸늘한 말투에서 이미 예상이 되긴 했지만 한 달 만에 보는 남편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우린 서로를 '님아, 님아' 하며 불렀었는데, 나의 님은 이미 완벽한 남이 되어 있었다. 아니, 남보다도 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TalkMedia_1771935750.JPEG 이혼 전, 우리의 귀여웠던 대화



명의 변경을 위해 차량등록사업소로 가는 차 안에는 차디찬 적막만이 감돌았다. 밖에는 만개했던 벚꽃이 꽃잎을 휘날리며 지고 있었지만 차 안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겨울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한편으론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혼 서류를 제출한 지 한 달이나 지났으나 남이 되어가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전히 애틋한 봄과 체념한 겨울이 공존하고 있었다.




서류 업무를 마치고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가운 것을 넘어 적대적인 그의 태도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나 도서관에 좀 내려줄래? 반납할 책이 있어서."

"걸어가."

"어려운 부탁 아니잖아, 많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더 이상 니 부탁 들어주기 싫어."

"아, 진짜! 꼭 이렇게 치사하게 굴어야겠어?"


차로는 3분도 안 걸리는데 걸어가기엔 먼 거리였다. 2주 뒤 잡혀있는 법원 출석일이 마지막 대전 방문이 될 예정이라 대전에서의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했다. 가족같이 지내던 동네 카페 사장님도 한 번 더 보고 싶고, 집에 남아있는 내 짐들을 정리할 시간도 부족해서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인데, 그는 왜 이렇게 속 좁게 구는 건지 신경질이 났다.


'그래, 이런 사람이니까 이혼했지. 잘했다. 잘했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국 걸어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한 뒤 카페 사장님을 찾아뵀다. 사장님은 저번처럼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예뻐했던 우리 커플이 이혼한다는 사실이 아직 마음 아픈 듯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달달한 미숫가루와 함께 다정한 말들도 잔뜩 건네주셔서 남편 때문에 상했던 기분은 금세 풀어졌다.


사장님과는 반려견 경태를 입양하면서 스타벅스를 못 가게 된 순간부터 2년 간 거의 매주 봐온 사이였다. 경태 덕분에 친해져 가족여행을 두 번이나 같이 갔을 만큼 막역했기에 나 또한 앞으로 사장님을 볼 수 없음이 속상함을 넘어 절망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임신했을 때는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손수 만든 반찬을 싸주시고, 카페에 갈 때마다 비싼 과일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던 사장님의 친절은 오늘처럼 남편과의 불화와 다툼으로 여기저기 까진 마음을 치유해 주곤 했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생소해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정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사장님의 존재는 전쟁 같은 시간 속 나의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이 고마움은 두고두고 보답해야지!' 사장님과 한참을 얘기하며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집에 가니 남편이 카레를 하고 있었다. 그는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무심히 말했고 우린 마주 앉아 이 또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저녁을 함께했다. 저번에 왔을 땐 첫날엔 냉랭했어도 둘째 날 저녁엔 그가 해준 뭇국과 막걸리를 먹으며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었다. 그다음 날 법원에 가서도 사이좋게 마무리하고 서울에 올라왔었는데, 오늘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 마음 정리를 위해 일부러 차갑게 구는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이혼하자고 한 내가 미워지는 건지, 변해버린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던 나는 얘기 좀 하자고 했으나 그는 끝내 거부하고 일찍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고 고요한 거실을 둘러보니 한 달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우리의 결혼사진도, 대학원을 그만둔 기념으로 꾸며뒀던 공간도 그대로였다. 다 버리라고 했던 그의 말이 무색하게, 우리의 추억은 너무나도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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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7년 차에 실험실을 나오던 날, 남편이 서프라이즈로 보낸 거대한 꽃다발과 함께 온 그의 편지를 보고 나는 빈 강의실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 박사학위를 포기하겠다는 내 결정에 응원이 아닌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던 그의 마음을 아니까, 어떤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썼을지가 느껴지면서 그의 사랑이 내 마음을 울렸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젠 그만하고 싶다는 나와 박사학위는 꼭 받으라는 남편, 우리의 의견은 합쳐지지 못하고 계속 대립했다. 그러던 중,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교수님의 태도에 극도로 실망감을 느낀 내가 그 자리에서 그만두겠다고 내뱉어 버리는 바람에 내 멋대로 이 대립은 끝이 났다. 교수님 방을 나오는 순간 너무 홀가분하고 행복했다.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내 말에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던 친구들에게 그만뒀다고 얘기하자 그 용기가 멋지다는 말과 넌 뭐든 잘할 거라는 따뜻한 응원을 받았다. (우울증 증상은 교수님 방을 나옴과 동시에 바로 사라졌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그만두기로 했다고 얘기하니, 그는 크게 화를 내며 어떻게 그런 중대한 사항을 혼자 결정하냐며 비난의 말을 쏟아부었다. 나는 약을 먹을 만큼 힘들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네가 허락하지 않은 거 아니냐며, 내 한계였다고,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그의 기분을 풀어보려 노력했으나 소용없었다. 축하를 아끼지 않는 친구들과 격분하는 그가 대비되면서 섭섭한 마음이 커졌고, 그러면 안 되는데, 친구들처럼 그냥 응원해 줄 순 없냐는 말을 해버렸다. 남편과 친구들의 반응을 대놓고 비교한 거다.


남편은 그 말에 바로 폭발했다. 심한 말을 내뱉곤 식당에 나를 홀로 남겨두고 가버렸다.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그의 화를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금방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집에 없었다.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12시가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시누이에게 연락했더니 남편이 본가에 가 있다고 했다.


다음 날, 그와 연락이 닿자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계속되는 남편의 폭언에도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만 했다. 나와 반대 성향인 그가 이런 즉흥적인 결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얼마나 스트레스받는지 알면서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의 잘못이 분명했다. 나를 만나서 불행하다느니, 날 보기만 해도 짜증 난다느니 욕과 함께 아픈 말을 쏟아내던 그였지만 아직 결혼 2년 차라 그랬는지 나는 상처받기보단 그의 화를 풀기 위해 애썼다. 그는 사흘 만에 기분을 풀었고, 나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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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의실에서 그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나 대노했던 사람이 온 마음으로 응원하자고 마음먹기까지 많이도 힘겨웠을 그의 고통이, 그의 온전한 사랑이 느껴져서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화나면 욕을 하고 폭언을 하는 그이지만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는 걸 가슴에 사무치도록 일깨워준 이 편지와 꽃다발을 나는 소중히 보관했다. 대전으로 이사하면서 꽃다발은 버렸지만, 꽃다발을 감쌌던 리본과 카드는 고이 가져와 거실장 한쪽에 공간을 만들어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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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면 액체질소같이 차갑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인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거다. 하지만 -196도인 액체질소에 맨살이 닿으면 냉동 화상을 입는다. 그의 차가움에 익숙해지긴 했으나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린 내가 불쌍해졌다. '화만 안 나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좋은 남편이니까….'라는 생각으로 그를 화나게 하지 않는 것을 미션처럼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문득 나를 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거다. 냉기에 익숙해진다고 화상을 입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처음보다 덜 차갑게 느낄 뿐, 내 마음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어느새 동상에 걸린 것처럼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와있었다.


5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나는 그의 냉랭함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썼고, 그는 나의 배려 없는 행동을 인내하느라 애썼을 거다. 내 이기적인 선택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던 그이지만 금방 용서하고 감동적인 편지와 꽃다발을 보냈을 만큼 날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랑을 아니까 아프지만 감싸안으려 했던 나. 내가 그를 화나게 하지 않던지, 그가 화를 '잘' 내는 방법을 터득하던지, 우리 둘 중 하나라도 변했어야 이 문제가 해결됐을 텐데, 1년 넘게 받은 부부 상담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각자를 변화시키진 못했다. 그는 분노하느라 지쳤고, 나는 계속되는 고통에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사랑보단 서로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커져 버린 이 시점에서 애정 가득한 그의 편지를 보니 우리의 예뻤던 사랑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퍽 울고 싶어졌다. 이번엔 환희와 감동의 눈물이 아닌 서러움과 원망의 울음이었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단 걸 알지만, 이 카드를 보니 그냥 누구라도 탓하고 싶어졌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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