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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부부가 남이 되기까지 60일

by 온호류



그래서 다음 연재는 내 얘기를 해볼 생각이다.
전 남편과 나의 이야기가 아닌, 이혼하고 혼자가 된 인생을 즐기는 나의 이야기

두 번째 연재의 에필로그에서 '다음 연재는 전 남편과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내 얘기를 해볼 생각'이라고 대차게 선언했다. 이혼에 관한 두 번의 연재로 할 얘긴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에도 아니었다. 내 얘기를 쓰려 할수록 자꾸 못다 한 이야기가 치고 들어왔다.


그제서야 "이만하면 됐지" 하고 덮어둔 예전 일기를 들춰보았다. 절절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 뭉텅이가 자기를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부부상담일지>나 <이혼 후 가장 후회되는 5가지>처럼,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골라 연재해 왔다. 이제 유용한 이야기는 다 꺼내 쓴 거 같아서 이혼 후 나의 이야기를 쓰며, 이혼을 고민 중이거나 이혼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께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과거의 이야기가 글쓰기를 방해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훠이훠이 애써 떨쳐내며 전 남편과 이혼 이야기는 최대한 적지 않으려 했는데, 반드시 쓰이고 말겠다는 의지가 어찌나 강한지 나는 결국 져줄 수밖에 없었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공기방울을 아무리 중간에서 막아보려 해도 작은 방울 입자로 쪼개져 계속해서 떠오르듯, 정리되지 않은 감정 덩어리는 꺼내지 않으려 해도 어떻게든 비집고 나와 글로 쓰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순리인 듯했다.




못다 한 이야기를 이렇게나 쓰고 싶어 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믿으며 다시 한번 작년 이혼의 순간, 감정의 소용돌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려 한다.


당시 괜찮냐는 지인들 물음에 "오래 고민해 와서 그런지 정말 괜찮아"라며 웃으며 답했다. 정말 괜찮았고,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착각이었다. 많이 불안했고, 많이 아팠다. 죄책감과 아쉬움, 자기 합리화와 자기 비하, 속상함, 서러움, 원망, 미움, 사랑, 미안함. 오만가지 감정이 한 번에 몰려오는 혼란스럽기만 한 경험이었다.


2024년 3월 3일 이혼을 결정하고부터, 법적으로 남이 된 5월 1일까지 딱 60일이 걸렸다. '이혼 일기'라는 텍스트 파일에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참 많이도 썼는데, 쓸 때 말고는 거의 열어보지 않았다. 마치 봉인된 금단의 문서처럼.


이번 연재는 그 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다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서 그 한을 달래줘야 더 이상 다른 글쓰기를 방해하지 않을 거다. (나도 이혼 얘기 그만하고 싶다)


그래서 세 번째 연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글이라기보다 나를 돌보기 위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연재에서는 우리가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이혼 후 알게 된 나의 과오와 잘못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 썼고, 두 번째 연재는 이혼을 막아보려 노력하는 과정과 부부상담을 받으며 배운 것에 대해 썼다.

세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이혼을 결심하고 부부가 아닌 남이 되기까지 60일간의 여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담아볼 예정이다.


신혼집의 추억



나는 이혼 3부작을 통해 읽는 분들로 하여금 '간접 이혼'의 경험을 드리고 싶은 거 같다.

절대 내 얘기는 아닐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새 이혼의 문턱까지 와있던, 내가 느낀 그 어이없음과 어쩔 수 없음을 함께 공감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서로 많이 사랑했던 두 남녀의 사실적인 이혼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꼭 누구 한 명이 문제가 있어서, 한쪽만 잘못해서 이혼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는 듯하다. (물론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이혼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결혼은 불완전하고 서투른 남녀가 만나 서로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 서투름의 궁합이 너무 안 맞으면, 대화로 풀어가는 방법을 모른 채 결혼해 버리면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져 원치 않는 이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비극의 주인공으로써 여전히 타들어가는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나마 풀어내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 번째 연재를 끝낼 때쯤엔 내 안에 쓰이고 싶은 이야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길, 이혼에 대한 앙금을 남김없이 탈탈 털어냈길, 이혼 이야기가 3부작으로 마무리돼서 딱 올해까지만 이혼 얘기를 쓰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럼 마침내 그와 이혼을 결심했던 2024년 3월 3일, 60일의 여정 중 그 첫 번째 날로 돌아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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