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엉엉 소리 내 울며 정처 없이 걸었다. 가만 내버려둬도 심란한데 왜 나를 이리도 괴롭게 하나, (법적으론 아직 아니지만) 겨우 이혼 5일 차인 딸에게 어떻게 그러나, 아빠에 대한 온갖 원망과 미움, 서러움 등 구슬픈 감정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날 울렸다.
술기운 때문에 순간의 욱함을 참지 못했을 뿐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안다. 아빠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 미안해하실 거란 것도. 나의 (전)남편이 그랬듯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용서해 줘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화난다고 해선 안 될 언행을 휘둘러 마구 상처를 내고선 미안하다 그럼 다인가? 가까운 미래에 아빠가 할 뒷수습과 과거 남편이 해온 행동들이 겹쳐 보이며 분노가 일었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문제아도 아니었던 나는, 처음으로 가출 청소년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아빠가 나를 아프게 했으니 아빠도 좀 아팠으면, 죄책감에 잠 못 들었으면, 내 마음을 몰라주고 모진 소리를 하는 아빠가 미워서 벌주고 싶은 그 나쁜 마음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나쁜 마음은 이성적 사고와는 별개로 본능적으로 생겨난다. 당했으니 되갚는다는 정당방위이자 공격 본능 같은 걸 거다. 평소 같으면 이성적 사고의 손을 들어줬겠지만, 이 순간엔 나도 본능에 충실했다. 아빠를 아프게 하고 싶었다. 걱정 끼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소심하게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리곤 밤늦은 시간까지 키지 않았다.
다 울어서 울음이 멎을 때까지 걷다가 도착한 카페. 여쭤보니 애견 동반이 가능하다고 해서 경태와 함께 들어와 앉았다. 실컷 울고 나서 먹는 커피는 왜 그리 맛있는지. 뜨거운 아메리카노의 따스함과 고소한 커피 향이 나를 감싸고 있던 미움과 분노의 결계를 깨고 몸으로 스며들어왔다. 역부족이긴 했지만, 마음속 응어리도 조금은 녹여진 듯했다.
영문도 모르고 나를 따라 나온 경태는 아직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큰소리에 예민한 경태는 냄비와 양치 껌 박스가 바닥에 내동냉이 쳐지는 소리와 아빠의 고성에 겁을 먹곤 내 방 책상 아래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 경태를 보니 아빠가 더욱 미워졌다. 남편이 큰소리를 낼 때도 경태는 거실 구석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둘의 행동이 겹쳐 보이며 진절머리가 났다.
'감정 조절 못 하는 거, 언성 높이는 거, 폭력적인 거 전부 다 너무 싫어!'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아빠에게 늘 감사하고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아빠를 존경하진 않는다. 난 아빠를 보며 이상형이 아닌 비호감형을 구축했다. 언니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선 그런 적이 없지만 어릴 적 아빠가 밥상을 엎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담배를 비롯해 이렇게 욱하는 모습, 언성 높이는 것 등 아빠의 행동은 오래 묵은 혐오감으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다. 아마도 그 오래된 혐오 때문에 아빠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남편을 나는 끝내 사랑하지 못한 거 아닐까.
커피를 홀짝이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쓰이고 싶은 마음들이 금방이라도 손끝으로 쏟아져 나올 거 같았으나, 카페 갈 때 항상 들고 오는 노트북이 없으니 속에서만 맴돌았다. 꺼진 핸드폰을 켜긴 싫어서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멍때리다가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때 했던 생각 중 유일하게 강렬히 남아있는 한 문장이 있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건 가족이다.'
지난 화요일, 호주 사는 친한 언니를 만났다. 카톡으로 남편과 이혼하기로 하고 그다음 날이라 머리도 복잡하고 기분도 착잡하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언니는 좀 예외였다. 올해 다시 호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최대한 더 보고 싶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언니 역시 이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 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줄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호주에서 처음 언니를 만났을 때, 나는 언니 부부의 집에서 방 하나를 빌려 사는 입장이었다. (호주는 룸셰어가 흔하다) 겉으로는 사이좋은 부부인 줄 알았는데 언니와 친해지고 속 얘기를 들어보니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이듬해 둘은 이혼했고, 그로부터 몇 년 뒤 언니는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다.
언니의 전남편도 참 좋은 분이셨는데, 그때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좋은 사람 둘이 만나도, 외도 같은 불경한 사건이 없어도 둘이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할 수도 있다는 걸.
언니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역시나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언니. 해주는 조언들도 다 주옥같았다. 언니가 말했다.
"가혜야, 앞으로 널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가족일 거야."
이때만 해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는데, 3일 만에 언니가 한 얘기가 뭔지 정확하게 실감하게 됐다.
잠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보겠다.
내가 이혼 얘기를 꺼내면 지인들은 실제 내가 느낀 감정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단어 하나하나 조심히 골라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준다. 나의 선택을 평가하거나 탓하는 말은 당연히, 할 리가 없다. 그저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힘들었겠다고 토닥여준다.
하지만 가족은 아니다.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좀 더 참아봐라.”, 다들 그러고 산다.” 같은 책임지지도 못할 훈수를 두기도 하고, “네가 그러니까 이혼하지!”, “네가 잘했어야지!”라며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나를 탓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버린다. 그게 얼마나 마음을 긁는 말인지, 이미 곪아서 쓰라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아빠랑 싸우고 몇 주 뒤, 엄마랑 언니와도 한바탕 싸울 일이 생겼다. 당시엔 그저 그런 말을 하는 가족들에게 실망하고 속상하기만 했다. 가장 힘든 건 나인데 위로는 못 해줄망정 왜 나를 더 힘들게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웃집 불구경하듯 볼 수 없기 때문에,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아프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준비된 이별을 한 나와 달리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은 가족들은 그 나름대로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결혼이 가족 간의 결합이듯, 이혼도 가족의 결별이다.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배려 없는 처사였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있는 남편과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생이별해야 하는 가족들이 진짜 이혼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