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출근한 것을 확인하고 자정 넘어 집에 들어왔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어보니 아빠는 내가 뛰쳐나가고 금방 나를 찾아 따라나섰다고 했다. 새벽일을 하는 아빠는 점심 먹고 잘 준비를 해야 했는데, 꽤 오래 나를 찾아 헤매느라 얼마 못 자고 일을 나가셨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전혀 미안하지가 않았다.
뒤늦게 핸드폰을 켜 어제 아빠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내가 한창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 있을 때쯤에 온 문자. 이때 아빠는 밖을 헤매고 있었겠구나. 나한테 한 행동을 후회하면서, 내가 이 동네까지 걸어온 줄도 모르고 아파트 단지만 돌았겠구나.
어제 내가 했던 못된 생각 그대로 아빠는 (죄책감에 잠 못 든 건 아니었지만) 잠을 못 잤고, 미안한 마음에 괴로워하셨고, 걱정이 돼서 마음도 안 좋으셨을 거다. 원하던 대로 아빠도 아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전혀 통쾌하거나 유쾌하진 않았다. 그저 마음만 더 무거워졌을 뿐이다.
평소보다 많이 걸었더니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곳곳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거웠다. 뜨끈한 물로 긴 샤워를 하고 그렇게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 8시. 늦잠 잘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히 자고 나니 칼같이 눈이 떠졌다. 몸도 마음도 심히 고단했던 어제여서 못 일어날 줄 알았더니, 내 몇 없는 장점인 회복탄력성은 아직 건재한가 보다. 기분도 그렇고 컨디션도 꽤나 멀쩡했다.
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아빠는 내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말했다.
"가혜야 아빠가 어젠 미안했어. 기분 풀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아빠는 내 어깨를 '툭툭' 두 번 두드리고는 거실로 나갔다.
얼마 안 있어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엄마가 말했나 보다. 하긴, 참을 수 없는 입의 가벼움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엄마가 말 안 했을 리가 없다.
언니는 심각하지 않게 나의 안부를 물었지만, 걱정이 됐는지 저녁에 형부와 함께 와서 고기를 사줬다. 안 그래도 이혼 소식을 듣고 한 번 들리려 했었는데 겸사겸사 왔다고 했다.
우리 부부와 언니 부부는 넷이서 자주 어울리곤 했다.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 언니 부부는 연상연하 커플이라 형부가 우리보다 어렸지만 그래봤자 다들 한 두 살 차이라 공감대도 비슷하고 얘기도 잘 통했다. 마음이 꼭 맞는 오래된 친구들과 노는 것 같아서 함께하는 시간이 늘 즐거웠고, 특히나 (전)남편이 둘을 참 좋아했다.
고기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남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둘이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했다. 둘 다 그의 장점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 그의 다른 얼굴에 대해 얘기하자 살짝 놀란 듯한 기색도 보였다.
형부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처제, 처제를 탓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닌데, 우리 가족의 남자 3명 중 2명을 그렇게 머리끝까지 화나게 했다면 처제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돌아볼 필요도 있는 거 같아요."
다소 예민할 수도 있는 상황에 자칫 날카롭게 들릴 수도 있는 형부의 말이 전혀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평소 형부와 이런 심리적, 성찰적인 대화를 많이 나눠와서 그런지, 아니면 평소 형부가 날 좋게 생각한다는 것을 자주 표현해 주어서 그런지 나를 탓하는 말이 아닌 걱정해 주는 말처럼 들렸다. 형부의 말은 아빠와 남편에게 향해있는 원망의 시선을 나에게로 옮겨올 수 있도록 해줬다.
결과적으로, 이날 고기를 먹으며 나눈 대화로 나는 어렴풋이 만 알고 있던 내가 잘못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형부는 말했다.
"화를 화로만 보면 안 돼요. 제부의 경우 화를 냈지만 사실은 아픈 거였을 거예요. 상대방이 너무 화나서 부들부들하는데 그 화를 달래주지 않고 경멸하듯 보거나 공감해 주지 않으면, 아픈 데를 계속 공격하는 거랑 같아요. 아픈 데를 자꾸 찌르면 누구나 폭발할 수 있어요."
나는 '분노'라는 감정에 너무 박했다. 그가 불같이 화내는 것을 경멸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5가지 감정(기쁨, 슬픔, 까칠, 소심, 버럭)이 나오는 것은 이 모든 감정이 인간에게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일 거다. 하지만 나는 그중 버럭이를 유독 미워하고 싫어했다. 결정적으로, 감정적으로 화가 난 사람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그 화에 기름을 붓는 거나 다름없단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화가 없는 편이라 화가 많은 사람을 싫어하는 건지, 혹은 화가 많은 사람이 싫어서 내가 화가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에게 있어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는 것은 무식하고, 교양 없고, 미숙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마치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고성을 지르고 난동 부리는 아저씨 같은 이미지랄까.
예전에 SNS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경찰의 만류에도 계속 지하철 승강장에서 난동을 부리던 취객에게 한 청년이 다가가 그를 꼭 안아주자, 취객이 바로 난동을 멈추곤 슬피 흐느끼던 영상. 그 영상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청년분이 안아드리기 전까지는 그냥 길거리 취객이라 생각하고 인상 쓰고 봤는데 어쩌면 평범한 가장의 조금 힘들었던 하루라고 생각됨ㅠㅠ"
나 역시 취객을 인상 쓰고 보는 사람이었다. 저런 무례한 분노에 나의 공감을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저 청년처럼 아저씨를 안아 줄 수 없고, 그게 내 그릇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까지는 내 그릇 크기에 대해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형부의 얘길 듣고 나니 내 그릇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저 청년 같은 사람이었다면, 화가 난 남편을 그저 조용히 안아줄 수 있었다면, 우린 이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부부상담을 받으며 남편의 내면에 아버지에 대한 풀지 못한 분노가 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왜 그리 화를 잘 냈는지 그제서야 이해하게 됐지만,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사사건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에 화를 내는 통에 나의 불편한 심기와 증오가 그대로 전달 됐을 거다.
형부의 말처럼 난 그의 분노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가 화나서 하는 행동이 잘못됐다고만 생각했지, 그의 '화'가 '아픔'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화낼 때마다 '많이 화났구나'가 아니라 '많이 아팠구나'라고 생각했으면 우리의 싸움은 조금 달라졌을까?
형부는 이어서 말했다.
"꼭 욕을 해야만 나쁜 게 아니에요. 처제가 화내는 제부를 바라보는 그 표정이나 경멸의 눈초리가 제부에겐 욕보다 더 큰 모욕감을 줬을 수도 있어요."
형부의 그 말에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거 같았다. 갑자기 10년도 더 전에 만났던 전 남자친구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