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난지 일주일이 되던 2월의 마지막 날, 엄마가 퇴원하셨다. 눈길에 넘어져 어깨뼈가 부러지셨는데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다. 깁스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엄마의 수발을 들어주기 위해 나는 한 달간 부모님 집에서 지내기로 했고 한 달 치 짐을 싸 서울로 올라오는 길, 우리는 여느 때처럼 서로를 경멸하며 맹렬하게 싸웠다.
친정에 도착했을 때 (전) 남편은 씩씩거리는 상태였고 나도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왜 싸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뭐, 늘 그렇듯 사소한 거에서 시작됐을 거고, 그의 속에 쌓여있던 것들이 튀어나와 성질내고 비난을 하니 나는 그만 좀 하라고 했겠지. 서로의 서운한 마음을 들여다 봐주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억울한 것만 얘기해 대니 대화가 되지 않았겠지.
작년 2월, 1년 넘게 진행한 부부상담이 끝났다. 초반에는 마지막 상담 때 부둥켜안고 울던 여운이 남아서인지 사랑도 넘치고 연애 초로 돌아간 듯 사이도 알콩달콩 좋았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니 우린 또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용납되지 않는 서로의 싫은 점이 서로를 긁으며 자극했고 해소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앙금이 불쑥 튀어나와 심기를 건드렸다.
나는 마지막 상담을 마치고 4년간 만지작거리던 '이혼'이란 카드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확신은 생기는 게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부부상담을 하면서 그를 믿어보기로 한 것도 있을 거다.
이혼카드를 버리면서 구석진 곳에 숨겨뒀던 '임신'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남편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아이를 갖기 싫어서 엎어뒀던 카드다. 이렇게 못나게 싸우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줄 바엔 안 낳는 게 나을 거 같았고 이혼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니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남편의 문제는 나로부터 기인하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았고 이렇게 티격태격 다투며 사는 것도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인가 보다 받아들이게 됐다. 앞으로 배운 대로 실천해 나가면 괜찮아질 거란 믿음과 원래 완벽한 시작은 없으니 부족한 부모여도 아이를 키우며 성장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1년 사이에 두 번의 임신과 유산이 있었고, 그간 다시 또 지겹게 싸웠다. 상담받을 땐 사이가 좋았지만, 배운 것을 계속 상기시키며 노력하지 않으니 달라지지 않고 예전으로 돌아왔다. 마치 자기계발서를 아무리 읽어도 내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것과 똑같았다. 올바른 대화법을 배우고 우리의 문제가 뭔지 알았어도 아는 것과 실행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그는 쿵쾅거리며 짐을 옮겼다. 화가 나면 저렇게 과격하게 행동하는 게 여전히 적응 안 되고 부끄러웠다. 한 달 치 짐이다 보니 커다란 아이맥(애플 데스크톱) 박스, 아이맥을 놓을 작은 책상과 큰 캐리어 등 짐이 많았다. 책상이 무거워서 그는 책상을 캐리어 위에 올려 엘리베이터까지 옮겼고,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 있는 내 쪽으로 캐리어를 격하게 밀다가 책상이 내 발등으로 넘어졌다.
소리를 지르며 가까스로 피했지만 복숭아뼈가 제대로 맞았다. 너무 아팠다. 안 피했으면 발등뼈가 부러지거나 최소 엄지발톱은 빠졌을 거 같다. 남편은 그걸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른 짐을 가지러 휙 나가서는 짐을 가지고 들어와 닫힘 버튼을 눌렀다.
"다쳤잖아!"
"어쩌라고."
"……."
그래 이거였다. 그에겐 99가지 장점이 있지만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하나의 단점. 5년간 수없이 이혼을 고민하게 했던 단 하나의 참을 수 없는, 다름이 아닌 틀림.
이전에 연재했던 브런치북 [이혼 후 다시 보는 부부상담일지] 24화 <다른 줄 알았는데 틀렸다>에서 다름과 틀림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그의 다름이 나의 도덕성이나 가치관에 크게 위배되면서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때, 나를 슬프게 하거나 아프게 할 때 또는 그러한 다름을 갖고 있는 것 자체로 그가 싫어질 때, 그 다름은 맞춰갈 수 없는 다름, 즉 틀림에 가깝다."
그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나한테 하면 안 되는 행동도 많이 하고 모진 말도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쁜 사람인 적보다 사랑스럽고 다정한 좋은 남편인 적이 더 많았다.
평소 성실하게 직장을 다니며 가장으로서의 남다른 책임감을 보였고, 대학원 생활로 바쁜 나를 대신해 유튜브를 보며 요리를 배웠다. 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서 작은 소비와 마트 할인에 행복해하는, 검소하고 나밖에 모르는 아내바보이자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설거지는 내 몫이지만 내가 바쁘면 설거지도 마다 않고, 그렇게 싫다고 하던 강아지 키우는 것도 허락해 주고선 경태 산책도 대신 가주는 다정다감한 백 점짜리 남편이었다. 화났을 때만 빼면 말이다.
화가 났을 때 그의 행동은 '나와는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니 이해해야지' 하고 넘어가기엔 도를 지나쳤다. 아니, 용인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욕설과 가슴 깊숙이 상처를 남기는 폭언, 안하무인 같은 태도와 뒷일 생각 안 하는 부끄러운 행동. 화가 어느 정도 풀리고 나서도 자기를 화나게 한 내 잘못이니 욕먹어도 싸다느니, 미안하지 않다는 말까지.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통에 지킬 앤 하이드랑 사는 기분이었다. 언제 하이드로 변할지 모르는 남편은 종종 공포의 대상이 됐다.
"완벽한 사람이 어딨냐 다 참으며 사는 거지."
나도 이런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나 또한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부족한 점투성이인 것을 아니까.
하지만 부족한 점이 있는 것과 치명적인 '틀림'이 있는 것은 다르다. 이건 성격의 예민함이나 생활 패턴처럼 맞춰가고 양보를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지속적으로 아프게 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살수록 정도 쌓이지만, 상처도 함께 쌓인다. 상처를 내는 만큼 치유해 줄 무언가가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시간이 지난 후 남는 건 애증과 아물지 않은 흉터뿐이다.
누구는 '몸에 흉터 좀 남으면 어때'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나처럼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은 자꾸 내 몸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늘려가는 사람이 내 배우자라는 사실에 혼란이 오고 슬퍼지고 끝내 분개한다.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예수도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다.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도 그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다툰 적이 있다. 화가 나서 먼저 가버리는 그를 따라가다 크게 넘어졌고, 피를 흘리며 집에 왔는데 그는 나를 보며 꼴좋다고 했다. 배우자에게서 듣는 아픈 말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되어 이렇게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어떤 의미에선 물리적 폭력보다 언어폭력이 더 나쁜 거 아닐까 싶다. 맞아서 든 멍은 없어지면 그만인데 마음에 남은 흉터는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상처가 벌어지고 짓물이 나오듯 눈물이 터져 나오니 말이다.
"어쩌라고"라는 말을 들으니 무려 2년도 더 전에 있었던 그 일이 떠오르면서 그렇게 상담을 받고 애썼어도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엄마의 병문안을 온 순간에도 이렇게 자기 화를 못 참고 성질을 내는 걸 보니, 아무리 화가 나도 내가 다쳤는데 아직도 저런 말을 내뱉는 걸 보니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
나중에 내게 큰일이 나도, 아이가 다쳐도 저럴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마구 스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너무 미웠다. 꼴도 보기 싫었다.
"꺼져."
"……?"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지라고!!"
나는 그에게 5년의 결혼생활 통틀어 처음으로 꺼지라는 말을 했다. 그가 화났을 때 수도 없이 나에게 꺼지라고 했지만 나는 그에게 비슷한 소리조차 한 적이 없다. 아무리 화가 나도 부부사이에 그런 말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진심이었다. 이대로 관계가 끝나도 아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는 조금 충격받은 듯했다. 그리고 기분이 많이 상한 듯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나도 처음부터 똑같이 거울 치료를 시전했어야 했나,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듣는 게 얼마나 아픈 건지 알려줬어야 했나 싶었다.
그는 그렇게 나의 짐만 툭툭 밖으로 밀어내곤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남편은 어딨냐고 묻는다.
"아, 몰라."
"왜? 싸웠어?"
"……."
부모님에겐 그의 행동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없다. 가끔 싸운 다는 정도로만 알고 계신다. 남편이 부모님께는 참 잘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항상 나보단 그의 편에 섰다. 내가 대학원을 그만뒀을 때도 그에게 철부지 딸 때문에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평소 일도 하고 요리도 하는 것을 아니까 늘 너가 좀 도우라며 나를 타박하셨다. 남편을 예뻐했던 두 분이라 말하기 조심스러웠고, 괜히 걱정만 끼쳐드리는 거 같아서 안 한 것도 있다.
일단 무거운 가방을 소파에 내려놨는데 어라? 차 키가 나한테 있다. 스마트키여서 시동이 걸렸지만 키가 나한테 있는 줄 모르고 내려가 버린 거다. 나는 문득 그가 부모님을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다. 엄마 병문안을 왔는데 진짜 얼굴도 안 보고 갈 생각인 건지 아니면 내려갔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하고 남은 짐을 갖고 올라올 건지.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는 정말 그냥 대전으로 가버릴 생각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와 마주치지 않게 차에 가서 남은 짐을 가지고 나왔고, 그는 차 키가 없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나의 행방을 물었다. 내가 나갔다고 하자 그는 바로 다시 나갔다고 한다. 엄마에게 안부 인사도 없이 말이다. 그 사이에 나는 남은 짐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고 얼마 안 있어 그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 나에게 물었다.
"키 어딨어?"
"여기."
키를 건네받은 그는 그대로 쌩하니 가버렸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남편이 뭐래?"
"그냥 와서 너 어디 갔냐고 묻고, 너 나갔다니까 휙 가버리던데?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엄마한테 팔은 좀 어떠냐고, 아니면 안녕하셨냐고 인사 안 했어?"
"응, 아무 말 없던데?"
"……."
5초 정도 침묵이 흐르고 나는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쟤랑 이혼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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