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명한 무어인을 알고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이다. 원제는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이다. 베네치아의 작가가 쓴 단편 <데스데모나와 무어인>을 모티브로 1604년 발표된 작품이다. moore는 “어둡다”라는 의미로 그들이 북아프리카의 아랍인, 베르베르인, 흑인의 혼혈 민족이라서 피부색이 흑인만큼 짙었던 것 같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그리스를 점령하고 베니스까지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 1571년 스페인과 베니스 연합이 신성동맹을 맺고 레판토(레반트-지금의 레바논 지역)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무어인 오셀로가 여기서 활약했다. 그는 용맹한 사람이었다. 베네치아의 장군이 되고, 원로원 의원의 딸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까지 했으니 입지전적인 주인공이다. 여섯 살 때부터 세상과 싸우며 잔뼈가 굵었고 포로로 잡혀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웠고 그 무운을 인정받아 장군까지 된 것이다. 하지만 베니스 인들은 여전히 그를 무어라고 칭했고 끊임없이 인종차별을 당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실존 인물의 초상 무어인이지만 외교관이라 그런지 오셀로의 모델이라기엔 피부색이 흰편이다.
베네치아의 원로원 의원인 데스데모나의 아버지는 원래 그를 총애했는데 그건 잘 싸우는 군인일 때에만 해당된다. 이아고에게서 딸의 정사를 전해 듣자 그의 마법에 홀려 동침했다고 격분했다. 그렇지 않고는 '그 시커먼 가슴에 안길 리가 없다'는 것이다. 처형시켜야 한다고 길길이 뛰었지만 분을 참으며 물러나야 했다.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 소식에 오셀로가 다시 출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키프로스로 떠난 오셀로.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이아고의 작업이 시작되자 그의 내면에 있던 콤플렉스가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데스데모나가 “애초에 순리를 어기고 나 같은 사람을” 사랑했다는 걸 의심하고 “피부색이 검어서 날 버릴지도 모르지”라고 상상하게 된다. 숨어있던 열등감에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질투로 불타올랐다. 허점을 간파하고 약점을 자극하며 달콤한 말을 독약처럼 흘려 넣는 이아고는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아고는 가스 라이팅의 천재이자 어두운 내면을 불러내는 흑마술사요, 인간 심리의 지휘자라 할 수 있다. 약간 유치할 정도로 잘 넘어가긴 하지만 극 중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이아고의 조종을 받아 놀아난다. 인물들 사이에 그물을 치고 교묘하게 유인하고 증오를 격발 시킨다. 사실 오셀로의 주인공은 이아고가 아닐까.
애초에 데스데모나의 아버지를 찾아가 “따님과 무어 놈이 잔등이 둘이고 몸은 하나인 짐승 같은 짓을 하고 있다”라고 고자질하고, 오셀로에게는 순진한 얼굴로 자기 아버지를 속인 맹랑한 여자라고 데스데모나의 험담을 한다. 그는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며 먹이로 삼는 녹색 눈의 괴물이니 부디 질투를 조심하십시오”라는 충언을 하면서 질투심을 부채질하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다.
결국 이 가련한 남자는 아내를 목졸라 죽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후 애통해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이아고는? 오셀로는 수없이 만들어진 영화 속에서 이아고를 죽인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다르다. 부관 캐시오가 오셀로 대신 키프로스 총독에 임명되고 이아고는 이제 그의 처벌을 기다리는 걸로 극이 끝난다.
그에게는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이다. 캐시오가 만약 이아고의 천재적 조종 능력을 써먹기로 한다면 말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고, 권력과 욕망을 추구하는 건 죄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는 마키아 밸리의 시대였으니까.
뿐만 아니라 그의 범죄의 대상은 무어인이라는 것. 극에서 오셀로의 죽음은 하찮게 치부된다. 햄릿이나 리어왕의 주검 앞에 바치는 열렬한 헌사 같은 건 한 마디도 없다. 어쩌면 이아고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오셀로 스스로 자신이 왕족의 혈통이라는 걸 보면, 멸망한 왕조의 버려진 후손일지도 모른다. 바로 알 안달루시아의 이슬람 왕조 말이다.
안달루시아에서 알 안달루스로
이베리아 반도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영국령 지브롤터가 있다. 동서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품고 남쪽은 시에라 네바다, 시에라 모레라 산맥이 있는 산악지대로 그 너머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마주하며 북으로는 피레네 산맥이 프랑스와 맞닿아있다. 상상해보라. 대륙과 해양의 길목이자, 대륙과 대륙의 통로였고 지중해와 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출구였다.
헤라클레스의 양 기둥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고대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여서 영토확장과 왕위쟁탈,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이 멈추지 않았던 땅이다. 멀리는 기원전부터 가깝게는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졌다. 지브롤터라는 지명도 이슬람 제국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에서 중세 게르만 문화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며, 유럽을 지배한 이슬람 제국의 마지막 눈물을 간직하고 이 모든 유산들이 교배하고 녹아들어 독특한 개성을 뿜어내는 곳이다.
로마시대 히스파니아는 은광이 많아서 통용화폐로 사용될 정도로 재정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만큼 탄탄한 재정으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번영한 지역이다. 세네카와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를 배출하는데 로마의 5 현제 중 무려 2명이 이 곳 출신인 셈이다. 금, 은뿐 아니라 철광석도 풍부해서 톨레도의 검은 아직도 그 명성이 전해진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발레리안 검이 나오는데 지역을 추정컨대 톨레도의 검에서 나온 모티브라고 추측한다. 즉 발레리안 왕조의 무대는 이베리아 지역 정도로 볼 수 있다. 대너리스 남매가 도망친 곳은 지브롤터 해협 건너편 북아프리카인 것 같고.
결국 은광의 고갈은 로마의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5세기에 게르만인 고트족이 남하해서 다시 주인이 바뀌는데, 그들은 해협 너머 북아프리카를 넘나들기도 했지만 왕위를 둘러싼 분쟁이 극심했다. 그 틈을 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조 우마이야 칼리파가 이베리아에 발을 디딘다.
반달족의 땅 반달루시아를 알 안달루스라 바꾸고 코르도바를 제국의 수도로 정한다. 이들에게 축출된 기독교도들은 북쪽 끝 산악지대로 도망쳤다. 그들이 빌바오에 세운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후에 국토회복운동의 기반이 되어 줄기차게 전쟁을 벌인다. 1492년 이슬람을 완전히 몰아내고 스페인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말이다. 그만큼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길목이라는 이점이 어마어마한 곳이다.
안달루시아의 개
영화사에서 나름 한 획을 그은 아방가르드 영화의 제목이다. 스페인의 루이스 브뉴엘 감독이 만들었고 살바도르 달리가 참여했다. 오프닝 장면은 하드코어 마니아인 나도 살짝 오그라들게 할 정도로 유명하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다 잊어도 이 장면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5분짜리라 유튜브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1차 세계대전 후의 허무주의 속에서 작정하고 관객과 평단을 엿 먹이려고 만들었는데 아쉽게도 격찬을 받아서 브뉘엘은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스토리나 개연성은 전혀 없지만 어느 정도 맥락은 읽힌다. 가톨릭을 조롱하고 요즘 시각으로 보면 여성 혐오에 가까운 장면도 많다. 촬영 당시나 개봉 후의 후유증이 컸는지 남자 배우가 자살을 했을 정도다. 그래도 풍부한 상징과 이미지의 파격적인 결합, 기괴한 미장센은 매력적이다.
그런데 왜 안달루시아의 개일까? 여기서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데 로르카가 등장한다. 로르카는 섬세한 외모를 가진 스페인 국민 시인이다. 동성애자는 때려죽이고 성기를 잘라 죽이던 시절, 그는 프랑코 파시스트한테 붙잡혀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로르카는 달리와 사귀었는데(Little Ashes가 그들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에서 로르카가 보낸 연애편지를 암시하는, 조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로르카도 눈치챘는지 상처를 크게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개는 무슨 상관일까?
영화 속의 몽타주 기법 장면들
브뉘엘이나 달리 같은 부류의 예술가들이 가진 폭력성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들은 북부인 마드리드와 아라곤 출신이다. 그에 반해 로르카는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 출신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슬람의 영토였던 곳이다.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지역 차별이 존재하지 않을까. 스페인은 북쪽 꼭대기부터 700년에 걸쳐 이슬람을 몰아내며 남하한 셈이다. 안달루시아는 그 시간 동안 적이었고 그만큼 아랍의 피가 많이 흐르는 지역이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사이도 원수지간일 만큼 지역 갈등이 심한 스페인에서 안달루시아는 그보다 더한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예술이 독창적이고 파격적이어서 세상의 뒤통수를 쎄게 후려갈기는 위대함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 자신이 가진 모순과 한계 역시 세상의 부조리 못지않게 역겨운 부분이 있다. 예술을 하지 않았으면 뭐하고 살았을까 싶은 그런 부분 말이다.
악의적으로 해석해본다면, 세상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쏟아내기 위해 만든 이 영화에서 브뉘엘과 달리는 여러 가지로 친구 로르카를 조롱하는 추임새를 끼워 넣은 것이다. 낄낄거리며 즐거워하는 게 느껴질 정도다. 청순 무구하게 잔인한 느낌이랄까. 브뉘엘이야 골수 동성애 혐오자이니 그렇다 해도 사랑하던 사이인 달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 속의 특수 효과
찬란해서 한숨은 더 깊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전성기에 알 안달루스는 개방적, 관용적인 풍토 위에서 스페인과 이슬람 문화가 결합되어 예술, 문화, 학문의 중심지로 찬란한 유산을 남겼다. 그들은 고전 아랍어와 라틴어, 히브리어를 사용하며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다. 일상어로는 아랍어, 안달루시아어, 로망스어를 공용어로 썼다. 중세 이전에 인구 5만 명이 넘는 도시는 단 네 곳뿐이었는데 세비야와 코르도바가 해당된다. 1600여 개의 모스크와 8만 개의 상점, 13,000명의 직공이 일할 정도로 번영했다.
유대인과 기독교도가 무슬림들과 사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신분의 차이는 당연히 있지만 개종을 강제하지 않았다. 비무슬림은 법정에서 증언이 인정되지 않았고 결혼과 복장, 심지어 탈 것에서 차별을 두었다. 대신 이슬람의 지배를 수용하고 공납과 인두세를 내면 신앙의 자유와 자치, 안전을 보장받았다. 오히려 세금을 면하려고 (허위) 개종하는 사람들이 생겼는지 금지 백서가 나올 정도였다.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들 중에서도 점점 경제력을 갖추게 된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시기부터 중세 내내 서반구 문명의 주역은 단연코 이슬람이다. 동과 서를 잇는 위치에서 다양한 문물의 이동경로였고 유럽에서 야만족들의 불쏘시개가 되어 사라진 그리스, 로마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들과 페르시아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더 발전시켰고, 이슬람 문명으로 다시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이슬람의 지리, 천문, 의학, 수학 서적들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대학의 교재로 사용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자연과학은 발 붙일 곳이 없었고 심지어 학문 연구를 억압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이런 학문들을 하등의 쓸 데 없는 것으로 무시했다니 당시의 실용성이라는 개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10세기까지 그들이 소장한 책의 목록은 한없이 초라한 상태였다. 암흑기라고 말할 때의 중세는 이즈음 11세기까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지성이 거덜 난 시대, 예술적 감수성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대, 인생의 모험과 사랑은 돌멩이처럼 땅 속에 파묻힌 시대이다. 그냥 인간은 축사에 매어 있던 시대라고 하는 게 간단하겠다.
앞으로도 꽤 자주 등장할 이베리아 반도를 일단 떠나 이제 피레네 산맥을 넘어갈 것이다. 바로 그 축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