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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고 Dec 31. 2020

 불과 모래, 나트륨의 충돌

유리의 탄생은 사고처럼 일어났다?



  페니키아 인의 전설     


사막에 새벽이 왔다. 페니키아 인들은 밤새 추위를 쫓던 모닥불이 꺼진 자리에서 반짝이고 단단한 뭔가를 발견했다. 로마의 자연철학자 플리니는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유리 결정체일 거라고 말했다. 위대한 발견의 후일담이 그렇듯이 유레카의 순간은 아름답고 직관적이다.


붉은 실선으로 나타난 페니키아 인의 행로 @시퀀스  


페니키아는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지역의 해안이 본진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무려 기원전 4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문명이다.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해상무역의 주역이었다. 수천 년 전에 최초로 갤리선을 만들어 바다를 누비며 해상무역을 주름잡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잠자리는 사막과 황무지, 바다와 산속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거래물품 중에는 천연 암염이 있었다. 소금의 원료가 되는 고가의 귀하신 몸이었고 그들은 모닥불 주변에서 밤을 보내는 동안 이 암염 덩어리들을 가까운 주변에 쌓아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수십 명의 배를 채울 음식을 조리했다. 사막의 잠자리를 감싸준 모닥불의 열기에 천천히 암염이 녹으며 모래와 섞여 흘렀다. 불이 꺼져가는 동안 식으면서 굳어갔다.


다시 길 떠날 준비를 하던 페니키아 인들이 숯더미 속에서, 모래 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더 반짝거렸을 것이다. 그들이 이 단단하고 반짝거리는 덩어리가 불과 모래, 나트륨의 조합이었음을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없는 그 덩어리들을 버려두지 않았다. 대륙의 동서를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 남북으로 영토를 넓혀가던 페니키아 인들의 상업적 능력은 그들을 최초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인류와 함께 한 빛과 모래의 여행, 무려 5천 년의 시간에 걸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대장정에서 말이다.

사실 유리와 가장 비슷한 자연물질로 흑요석이 있다. 이 광석은 화산 분출 과정에서 자연 생성된다. 8천 년 전 화산 폭발로 처음 자연 발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인류가 만들어낸 합성품으로써 유리의 기원은 단연 페니키아 인의 지분이 가장 유력하다.  모래를 유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섭씨 1370도 이상의 고열이 필요하다. 과연 사막의 모닥불이 이런 고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지만 전설은 전설로 간직하고 나아가 보자.            


유리의 기원


유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17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었고 이집트 고왕국 시절인 B.C 3000년으로 추정하는 원형의 펜던트에 흔적이 남아있다. 울퉁불퉁한 표면, 탁한 색, 돌조각 같은 이 유물은 풍화되어 원래의 청색이 하얀 막에 가려져 있다. 터키석이나 라피스라줄리처럼 푸른색의 값비싼 천연보석과 비슷해서 대용품으로 쓰였을 것 같다. 하지만 돌구슬에 유리 성분의 유약을 칠한 것으로 아직 완전한 유리구슬은 아니다.      

파라오 가슴 장식품 이집트 타니스 세 싱크 2세 무덤 출토 @시퀀스


본격적인 유리제조공장을 가동하게 된 건 메소포타미아에서 B.C 2500년쯤 만들어진 풀무가 결정적이었다. 이전에는 용광로 불을 지필 때 인부들이 직접 불어 산소를 공급했다. 풀무를 이용하면 주변의 공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날숨에 비해 70배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산소함량이 많고 이산화탄소의 수증기 함량이 적어서 철의 녹는점까지 온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광물에서 철 추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풀무는 혁신적으로 공정을 개선하고 용광로는 커질 수 있었다. 그로부터 천 년이 지나서야 풀무는 이집트에 도착했다. 이집트 다우르는 가장 오래된 유리공장으로 현재까지도 생산이 이루어진다. 과연 3500년 전부터 지속된 이 문명의 증거가 어떻게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소다의 마법

최근에 달고나 커피가 유행하는 걸 봤다. 코로나 시대의 집콕 슬로푸드로 인기를 끌던데, 아주 오랜 옛날에 뽑기라는 간식에서 부활한 메뉴다. 달고나와 뽑기는 엄연히 다른데 예전에도 혼용해서 참 헷갈렸다.        

학교 앞 문방구 길바닥에서 작은 화로를 놓고 만들었다. 애들이 불 옆에 모여 앉아 침 삼키며 쳐다보던 최고의 간식이었다. 집에서 만들다가 손가락 끝이 익을 정도로 데고 주방을 뜨거운 설탕 범벅으로 난장판으로 만든 아이들이 꽤 많았다. 뽑기는 유리를 만드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모래 대신 설탕을 뜨거운 불에 녹여서 캐러멜화 될 때, 소다를 한 스푼 넣는다. 타이밍이 중요해서 재빨리 휘릭 저으면 순식간에 불투명한 노릇한 액상으로 변한다. 재빨리 기름칠한 스텐판에 쏟으면 걸쭉하게 흐르며 평평해진다. 식기 전에  별 모양 같은 틀로 찍는다. 크고 복잡한 모양 틀로 찍은 건 비싸다. 쉽게 바스러지고 입 안에 들어가면 솔솔 녹는다. 여기에 보너스가 하나 더 있다. 틀 모양 그대로 망치지 않고 가장자리를 떼내면 하나를 더 먹을 수 있는 데 성공하는 애들은 거의 못 볼 만큼 난이도가 높다. 어쨌든 소다라는 물질이 끼어들면서 놀라운 마법이 일어나는 점이 유리제조법과 비슷하다.      


쟈부렉 루카스 체코 모젤 글라스 팩토리 디자인 총괄 "유리가 투명해지려면 광학성, 소다, 석회석 같은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시퀀스


유리가 투명해지려면 광학성, 소다, 석회석 같은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이들을 녹이고 결합하는 작용을 거쳐 공정이 끝나면 이제 모양을 갖출 준비가 된, 아름답게 불타는 물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상태를 적당히 식혀 당기고, 자르고, 구부리고, 붙이는 다양한 공정을 거친다.  냉각과정까지 마치면 투명한 유리가 완성된다.

상온에서 고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냉각된 액체 상태이다. 부드럽게 점도가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고 할까. 판유리를 여러 장 겹쳐 놓을 때 사이사이에 종이를 끼워 넣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액체 성질 때문에 표면이 녹아 서로 달라붙기 때문이다.      


색의 탐험


장 마리 브라귀 국제스테인드글라스 박물관 교수 "무색의 유리 속에는 금속성분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유리에 색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시퀀스 
유리가 이집트와 중동에서 발견되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래는 그곳 어디에나 있다. 유일한 난점은 모래를 유리와 섞는 것이었는데, 이 합성 물질에 소금을 첨가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양은 충분했다.
모래와 일반 소금은 매우 잘 섞이고, 엷은 초록색 산물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컬러를 얻으려면 조제용 물질을 더한다. 예를 들어, 청색을 얻으려면 구리를 첨가하고 녹색이 필요하면 철을, 망간을 넣으면 자색을 얻는다. 다른 화합물들로 여러 가지 색상을 얻을 수 있다. 유리는 구리와 철의 시대에 등장했고, 매우 빠른 속도로 이집트인들은 청색 유리로 (유사) 터키 옥석을  제조할 수 있었다.


@시퀀스


유리에는 철과 같은 금속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불순물들이 유리의 색을 만드는 전이금속 역할을 한다. 또 굽기에 따라 투명도가 달라지고 산화작용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구리는 산화 정도에 따라 푸른색과 붉은색을 만들 수 있다. 로마인들은 금속의 입자 크기를 다르게 해서 새로운 색을 만들기도 했다. 마젠타가 그중의 하나이다.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바늘을 꿰듯이 오랜 시간과 실험을 거쳐서 얻은 성취들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젠타와 다른 건 세월 때문이다. @시퀀스
검투사가 양각된 로마시대 유물 @시퀀스 

화재현장에서도 유리는 부서진 조각들이 검게 그을린 채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열에 의해 형태가 파괴될지언정 나무나 종이처럼 재가 되지는 않는다. 이전 세대의 성취 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갔다. 그래서 유리는 인류가 최초로 만들어낸 최고의 합성품이라고 불린다.  


흥미로운 건 5천 년이 지난 지금, 첨단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고대의 전통방식 즉 입으로 불어서 만드는 유리제품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아마 이집트의 다우르 공장도 이와 비슷한 풍경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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