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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어머니

by 김프로

모든 사람들은 어머니들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듯하다. 내게도 어머니는 특별한 분이셨다. 나이가 들수록, 내 기억 속 어머니의 나이를 살게 되면서 그 기억은 더욱 특별해진다.


어머니는 충청도에서 꽤나 큰 농사를 짓던 윤 씨 집안의 4남 3녀의 장녀로 태어나셨다. 나름 풍족한 집안 덕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셔서 읽고 쓰시고 계산하시는 것에는 능숙하셨다(요즘 기준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 시골에서는 많은 여자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안일에만 소모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일 많은 농사꾼 집의 장녀로서 부지런하게 쉴 사이 없는 세월을 보내셨다. 농사일이 클수록 일도 많아진다. 남자들도 여자들도 논과 밭에서, 부엌에서 마당에서 개울가에서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온종일 수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소녀시절을 보내고 어머니는 서울로 시집을 오셨다. 당시 서울의 연약하고 가난한 지식인이었던 아버지는 겉은 그럴싸한 도시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생활력은 매우 부족한 분이셨다. 어머니는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하셨고 아궁이를 고치고 전기를 손보는 공사성 일까지 모두 직접 하셨다. 아버지는 성실한 분이었지만 정기적으로 병에 시달리셨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가사뿐 아니라 생계를 떠맡아 온갖 궂은일을 하셔야만 했다. 어머니는 강하셨지만 그 강함으로 매일 힘든 나날을 보내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혼자가 되셨다. 다행히 삼 남매가 그럭저럭 장성해서 더 이상 큰 수고를 할 필요는 없게 되셨지만 이미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뒤였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키울 때도 특별했지만 노년의 세월을 보내시던 때가 더 특별하셨다.


어머니가 연세가 많아지시고 병원을 자주 찾아야 될 무렵에 혼자 사시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하루는 곱게 단장하시고 외출을 하시더니 며칠 후에 고운 모습의 사진액자를 들고 오셨다. "영정 사진의 모습이 단정해야 보기 좋더라." 내가 놀라는 모습으로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사진을 건네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하루는 쇼핑백에 뭔가를 들고 오셨는데 삼베로 짠 수의였다. "좋은 물건 싸게 팔길래 언젠가는 쓸모 있을 듯 해서 사 왔다" 하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우연히 구매하신 것이 아닌 걸 모를 리 없었다.


어머니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노인성 희귀병으로 말년을 지내셨는데 그 병의 특징은 온몸의 뼈가 약해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약해진 척추 때문에 힘들어하시면서도 지팡이를 짚기는커녕 절대로 허리를 숙이고 다니시는 일이 없었다. 걷다가 힘들면 잠시 걸터앉아 쉬 다가 다시 허리를 펴고 걸음을 옮기셨다. 자존심도 강하시고 늘 당당하게 사시길 원하셨던 어머니. 어려웠던 세월의 힘인지, 천성이 그러신 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은 보기 드문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대단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존경심이 더 커질수록 그리움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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