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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Jul 02. 2018

종합재미농장

월간농터뷰 [6월호] 현장 스케치










6월 21일(목) 날씨 맑음, 하늘 푸름


어느 순간 계절이 바뀌었을까. 아침에 별다른 고민 없이 티셔츠 한 장 걸치고서 출근하기 시작했다. 다른 계절이었으면 5분 정도 더 했을 고민이 줄어서 좋은 요즘이다. 여름은 덥고 습해서 싫지만 가끔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조금 설레이는 마음으로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 6월호 취재의 주인공은 '종합재미농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는 부부이다. 나는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라는 책을 통해 이분들을 알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여행(농업세계일주)을 했다는 점과 농업과 환경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공감이 돼서 두 분의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을 다 읽고, 책의 제목을 되뇌었다. 나 역시 농업세계일주를 다녀와서 스스로 비슷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과연 내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 친구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을까? 


나는 여행의 끝에서 생업으로써의 농사가 아닌 라이프스타일로써의 농사를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텃밭을 가꾸고 직접 수확한 작물로 식탁을 차려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다면, 이 부부는 어떤 마음에서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일까? 그 점이 나는 가장 궁금하다.







원덕역에 도착했다. 약속 시각 20여 분을 남겨 놓고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질문지를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오늘 취재의 주인공인 '신범'씨가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신범씨의 차를 타고 두 분의 집에 도착했다. 어린 시절 자주 갔던 큰이모 집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지금은 이모가 돌아가셔서 그 시골집에 갈 순 없지만, 그곳의 풍경도 이곳만큼이나 푸른 나무들이 많고 공기가 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좋은 추억이 많은 곳이어서 그런지 그곳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차에서 내리니 여러 가지 모종들이 보인다. 몇 해 전에 텃밭 농사를 지었던 경험이 있기에 몇몇 낯익은 모종들이 눈에 띄었다.


7년 전, 통영에 있는 지황이 형네 뒷산 언덕에서 10평 남짓한 공간을 임대받아 텃밭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8~9가지 정도 작물을 길렀던 거로 기억하는데 지황이 형의 등쌀에 떠밀려 날마다 재배일지를 적곤 했다. 지황이 형도 나도 작물을 키우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과연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의문이 컸지만, 우리의 별다른 관리가 없음에도 작물들은 꿋꿋하게 잘 자라 주었고 풍성한 수확물을 안겨주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신범씨의 아내, '정화'씨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신범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정화씨가 얼음을 동동 띄운 매실차를 내오셨다. 시원하게 한 잔 쭉 들이키고나서 인터뷰를 어떤 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에 앞서서 농장을 구경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서 정면을 보니 밭이 보인다. 처음 밭을 보았을때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밭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어떤 것이 작물이고 잡초인지 분간하기 헷갈렸다. 그래서인지 부부의 밭 너머 옆집 주인의 잘 정돈 된 옥수수밭이 더욱더 도드라져 보였다.







멍하니 밭을 쳐다보고 있으니 신범씨가 먼저 말문을 떼었다. "요즘 토종 씨앗을 구해서 직접 파종을 하고 있어요. 씨앗이 잘 자라지 않아서 작물을 심어야 할 시기를 훌쩍 넘겼어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작물과 잡초가 공존하면 좋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잡초만 뽑고 있어요. 작물의 성장을 더디게 하지 않을 정도만요. 잡초가 길게 자라면 그것들을 베어 밭에 덮어주는데 멀칭 효과가 있더라고요." 신범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밭에 잡초가 많은 이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두 분과의 농장 투어는 계속 이어졌다. 밭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다양한 작물들이 심겨 있다. 한눈에 보이는 양배추, 대파, 고추를 제외하고도 대략 50가지 종류의 작물이 이곳에서 자란다고 한다. 







밭의 안쪽으로 가보니 조그마한 공간이 나왔다. 이곳에는 딸기, 호박, 가지가 심겨 있다. 노지에서 키우는 딸기라니... 한참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 여느 농장에서 볼법한 비닐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두둑에 군데군데 볏짚으로 덮어놓은 곳이 눈에 띈다. 이 또한 자연 농법의 한 방법일 것이다.







옥상에 올라오니 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풍경을 보다가 두 분께 사진을 부탁했다. 보통 사진을 찍을 때는 하나둘셋 외치기 마련이지만, 난 일부러 숫자를 세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최근 몇 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구령에 맞추어 찍은 인위적인 모습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뷰파인더 너머로 두 분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담으려 집중했다.







집으로 들어와서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두 분이 함께 다녀온 여행기와 종합재미농장의 농사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이번에는 질문을 더 많이 준비했다. 두 분이 다녀오신 특별한 여행이 궁금해서였다.


순조롭게 절반 정도 인터뷰를 마칠 무렵 정화씨가 부엌에서 점심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집안 가득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고,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허기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부엌에 있는 기다란 테이블에 오늘의 점심 반찬들이 보인다. 된장국, 황태채 무침, 총각김치 등 군침 도는 반찬들이 많다. 뷔페식으로 먹을 만큼만 조금씩 푸고 다시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곧이어 김치전을 가져다주셨는데 특이하게도 김치전 안에 밥알이 같이 구워진 듯 보였다. 한 입 먹으니 짭조름한 맛이 입안 가득 전해져 온다. 반찬과 국 모두 맛있어서 배불리 먹다 보니 다시 처음 먹었던 양만큼 푸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일이 잦은 요즘, '아, 역시 밥은 함께 먹을 때가 꿀맛이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간다.







배부르게 점심을 마치고 나니 신범씨께서 사진첩 하나를 꺼내주신다. 사진첩 속에는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찍었던 사진과 종합재미농장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의 사진이 담겨 있다. 작년에는 사진 속 사람들을 초대해서 특별한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서울로 돌아가기 전 꼭 사진 한 장을 같이 찍자고 부탁하셨다.







신범씨가 A4용지 하나를 꺼내 보여주신다. 도면 같기도 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농장 전체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정말 밭에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심겨 있을 줄이야. 이런 걸 두고서 농장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걸까. 보지도 듣지도 못한 작물들의 이름이 꽤 많이 적혀 있다.


이번에는 작은 수첩 하나를 펼쳐서 유심히 들여다보시더니 내게 넘겨주신다. 수첩에는 작물을 심고 어떤 작업을 했는지가 날짜별로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분명 이러한 기록들이 더욱더 멋진 농부로 성장시켜주리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다.







어느새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인터뷰하는 동안 부부의 모습에서 시골살이의 소소한 재미와 농사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엿볼 수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신두 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그 어느 때보다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아서 평소보다 나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두 분의 부탁으로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밭으로 나왔다. 신범씨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타이머를 맞추고 있었다. 훗날 사진전에 초대돼서 오늘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6월에 내리쬔 따뜻한 햇볕과 온기가 한동안 기억날 것 같다. 이제 돌아가서 두 분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는 일만 남았다.





다음편에서는 [6월호]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편이 연재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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