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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Jul 23. 2024

복숭아 두드러기와 용기 낼 힘

도움을 청할 용기.



나는 복숭아를 참 좋아한다. 물복파인 나는 빨갛고 노랗게 잘 익은 복숭아 과육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터지는 과즙과 달콤한 그 맛과 달큼하고 꽃향기 같기도 한 그 복숭아 내음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복숭아 털에 두드러기가 있다. 어릴 적부터 복숭아를 잘못 씻어 털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온몸에 울긋불긋 두드러기가 나곤 했다. 이걸 잘 아는 이유는 아마 하도 먹었기 때문이다. 두드러기의 원인은 미리 알아두는 게 좋고(두드러기가 심하게 나면 일단 병원을 가서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아야 한다고 한다. 여행이라도 가서 갑자기 난다고 생각해 봐라. 골 아프다.) 해당 원인을 피하는 것 외엔 크게 방지법은 없다. - 사실 맞는 얘기인 게 코로나도 마스크 쓰고 병원균을 피하면 된다-



한 박스를 넘치도록 만 원대에 샀다. 사야만 했다. 로컬푸드 만세!


그렇다고 복숭아를 피하지는 않는다. 올해도 복숭아를 한 박스나 사서 두고두고 먹고 있다. (나는 제철과일 킬러다.) 장마 전에 샀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그때는 너무 이른 것이었고, 장맛비 때문에 물 먹은 복숭아도 그 향기 때문에 나름 먹을 만하다. (거짓말이다. 환불하고 싶다고 고래고래 난리를 쳤다.)


혼자 살 때는 어쩔 수 없이 손가락 끝으로 집어 그 무른 복숭아 껍데기가 뽀득뽀득해져서 털 한 톨 남지 않을 때까지 바득바득 닦아 껍데기도 떼 가며 먹었다. (유난이라고 생각해도, 두드러기가 나는 것보다는 낫다.) 결혼한 뒤에는 복숭아 닦기는 남편의 몫으로 밀어두었지만, 얼마 전 혼자 있는데 유난히 복숭아가 당겨 큰 결심을 하고 벅벅 닦아 먹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는 인간의 5대 욕구 가운데 1단계를 생리적 욕구라고 칭했다. 1인 이유가 뭐겠는가, 참기 힘들어서 그렇다. 돌려 말했지만 복숭아를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 것이다.) 그렇게 이틀 째 열심히 복숭아를 섭취 중인데, 이 글을 쓰는 내내 얼굴 쪽이 살살 간지럽다. (복숭아) 털이라도 붙은 것인가. 





빽빽하게 잔뜩 뒤덮은 솜털이 우악스럽기 그지없다. 한 톨이라도 들어가면 나는 하루종일 몸 구석구석이 부어오르는 데다 그걸 벅벅 긁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복숭아 털은 내게만 위협적인 존재다. 우리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못한다. 대신 누구는 꽃가루가, 누구는 개나 고양이 털에 알레르기가 있다.


복숭아 털 말고도 세상 살면서 무서운 많았고, 여전히 많다. 이직일 때가 있었고, 취업해서 정규직 전환에 목숨을 때가 그랬다. 인정받는 직원이자, 단독이며 특종을 팍팍 내는 기자이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미움받지 않는)


그러니까 나에게만 일이 몰리는 것 같아도 조금 참고 쓴소리 안 하고 넘어가고, 누군가 알아줄 때까지 가만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부조리한 일들을 겪으며 거의 일 년을 참고, 참다가 이야기했을 때,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는 (더 윗선에 말할까 봐 나를 살살 달래던) 당시 국장의 말이 생각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꾹꾹 눌러야 했던 일도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릴 수 있었고, (여러 큰 난관이 있었지만) 세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것에 비하면 복숭아 털은 사실 정말 하찮은 것이다. 또 참지 않아도 된다. 닿았더라도 얼른 씻어내 버리면 그만이다. 나를 싫어하지도 않는, 그저 조금 위협적인 것뿐이다. 내가 눈 딱 감고 잘 헤쳐나가기만 하면 되는. 그도 저도 아니라면 내가 약하다거나 힘들다고 말할 용기만 있다면, 세상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 남편이 내 복숭아 셔틀이 된 것처럼.











올여름 복숭아를 뽀득뽀득 닦은 뒤 가장 편하게 먹는 방법을 개발하였는데, 브런치 작가에 등단한 기념으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잘 익은 물복 쉽게 먹는 나의 방법을 공유하겠다.


1. 흐르는 물에 잘 씻는다.

2. 과도로 복숭아를 4 등분한다.

3. 반을 쥐고 비튼다.

4. 나머지 반을 떼어낸다.


이해하기 쉽게 영상을 첨부하겠다. 선물이다.

복숭아 파괴 영상




그러면 아래와 같은 (파괴적인) 비주얼의 맛있고 간편한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 잘 씻었다면 안에 있는 과육만 잘 빼내 먹으면 된다. (껍데기는 가라.) 모쪼록 나와 같이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있거나, 복숭아를 쌓아두고 먹는 분께 도움이 되길 바란다.

혹시 저 예술적인 그릇의 출처가 궁금하신 분도 있겠다. 우리 여왕님의 작품이다. 판매처가 마땅치 않은 질그릇 계의 신진 작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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