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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걷기, 규칙 있게 게으르기

by 동그란도나츠



최근 들어 점점 느슨해지는 일과가 있는데, 강아지와 아침 산책하는 시간이다. 원래 오전 7시나 해 뜰 무렵에 하루 2번, 한 번에 못 해도 30분씩은 했던 것인데, 몸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졸음이 쏟아지면서 어느 날에는 10시에도 일어나고, 11시에도 일어나며 그렇게 되었다. 그럼에도 강아지는 불평 없이 '그런가 보다'하며 산책 가자는 내 말을 그렇게나 반겨주고, 나가서는 '끙-'하며 엉덩이에 힘을 준다.

바쁘게 걷지 않는다. 멀리 가려 애쓰지 않는다. 이레 전부터 아파트 앞 화단에 노란 꽃망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산수유가 그득하게 나뭇가지를 차지하고 앉았다. 미세먼지 가득한 누런 공기 속에서도 밝은 노란색은 그 만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생기 있게 빛났다.

사흘 전부터는 목련 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어제 한 그루에 꽃이 피어나 탐스럽더니, 오늘 산책에서는 두 그루가 제 꽃을 피워냈다. 내가 눈도 못 뜨고 있을 사이, 부지런히 내린 비를 맞아 처져 있었지만 이제 새로 피워낸 그 꽃은 향기를 내뿜어냈다. (목련 향기를 참으로 좋아한다.)


규칙 있는 게으름

대단지는 아니고 소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아파트 내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강아지를 데리고 안전하게 산책하기가 꽤 괜찮다. 나처럼 좀 더 늦게 나오면 다행인지 대문자 I성향의 강아지에 맞춰 단독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단지를 빙 둘러 걸으면 1 천보를 완성할 수 있다.

공원은 좀 걷고 싶을 때 선택하는 코스다.(이마저도 강아지의 협조가 없으면 할 수 없다.) 공원을 둘러 트래킹 코스가 되어 있고, 앉을 수 있는 벤치와 할아버지들이 애용하는 운동기구가 놓여있고, 코딱지만 한 공원에 글쎄 정자가 3개나 된다. 두 개의 공원이 붙어있는 꼴을 취하고 있는데, 이 공원 중 하나는 요즘 유행하는 황톳길까지 야무지게 만들어놓았다. (겨울 동안에는 지푸라기를 덮어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날이 풀리고 어느 날 가보니 붉은 황톳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을 한 바퀴 휙 둘러오면, 2천 보를 채울 수 있다.

제대로 마음먹은 날이라면 선택하는 코스가 있다. 이걸 선택하는 날은 뭔가 새로운 다짐을 했거나 모자를 제대로 갖춰 썼거나, 강아지 진을 좀 빼놔야 할 경우에 선택한다. 우리 집에서 바로 내려가는 천변도로다. 물론 조금 길을 둘러 내려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한데, 갈대가 우거진 천변을 걸을 수 있다는 점- 마치 한강뷰 아파트의 장점을 조금 옮겨온 느낌마저 든다. (가성비다.) 아직 겨울만을 지내보았으나, 집 앞 천에는 황새와 청둥오리가 산다. 얼지 않는 이 천에서 먹이가 얼마나 풍부한 건지, 절대 이 자리를 뜨지 않고 산다. 이들을 보며 걸음을 옮기자면, 집에 와서 3천 보가 훌쩍 넘어 있다.

이 길의 단점이라 하면,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똥 봉투를 안 챙겨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강아지가 몇 걸음 걷고 남의 똥 냄새 맡는 광경을 구경하는 일이 잦다는 거다. 몇십 봉에 천 원짜리가 아까워 똥을 그대로 두고 가다니, 인성이 참으로 꼴불견이다.

​주말은 특별하게 산으로 산으로


주말에 가장 좋은 것은 아무래도 산행이었다. 크게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최근 소요산이며, 설악산이며 이곳저곳을 누볐다.

그 결과, 어느 산에 건 초입은 생각보다 걸을 만하다는 것과 임신부라고 해서 체력이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악산에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라는데, 내가 간 곳은 울산바위 코스였고, 울산바위 코스가 아닌 의상대 방향을 택했더라면 난이도를 좀 더 하향하였을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산 이야기를 하자니, 남녘에 화마가 사그라들지 않는 암울한 상황이 떠오른다. 부디 적은 비라도 진화에 도움이 되기를.



+) 최근 블로그에 에세이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하루 전날 쓴 글(https://m.blog.naver.com/kwakdhwa/223811443018)를 조금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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