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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엔 중꺾마 : 중요한 건 꺾는 마음

by 동그란도나츠 Mar 21. 2025




몇 년째 지치지도 않고 자라는 장미허브 한 화분이 있다. 일반 화원에서 들여오는 작은 포트 크기는 아니고, 들려고 하면 두 팔과 허리힘까지 필요한 무게의 묵직한 옹기 재질의 화분이다. 기억하기로는 부모님 댁에 원래 큰 로즈메리 화분으로 있던 것을 선물 받았는데, 남편이 2주간 물 주는 것을 깜빡해 화분 째로 말린 이후에 작은 장미허브를 삽목 해놨던 게 자가번식하여 커진 것이다. 


원래 장미허브라는 종 자체가 물만 주면 웃자라고 바람과 빛만 있어도 쭉쭉 뻗어 나는 녀석이다. 삽목을 시도할 때부터 외목대 수형으로 키우는 것은 일찍이 포기했고, 축 늘어뜨려 키우자는 다짐을 한 터라 이리저리 자라던, 저들끼리 줄기를 꼬아가며 자라던, 그러다가 머리를 해가 나는 방향으로 쳐들던 신경 않고 그저 겉흙이 마르면 물 주기만을 철칙으로 삼고 키워내 왔다.(이것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니고, 아마 물을 흠뻑 적시도록 주는 것이 제대로 키우는 방법일 것이다.) 게다가 순 따기조차 아까워 끝에 시든 것만 조금 떼어내고 말다 보니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말라비틀어진 잎만 털어내는 정도였다.) 더욱 제멋대로 길이만 길어지고 볼품없는 화분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물이 이것이다.그 결과물이 이것이다.



제대로 된 정원사라면 아마 이미 여러 차례 가위질을 했을 것이지만, 저렇게 자라난 세월이 한순간의 가위질로 꺾여나가는 것이 너무도 아까운 게 자타공인 야매 식집사만 가질 수 있는 마인드가 아니겠나. 잘라낼까 치면, 나름의 향기를 내는 허브들이 고통에 몸부림칠 것 같고, (삽목이라는) 선택을 받지 못한 녀석들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자니 상상만 해도 절절한 죄책감이다.


그럼에도 오늘 가위를 들고만 것은, 옆에서 새순을 내는 장미와 수국 잎사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가오는 봄을 맞아 따뜻한 기운이 돌자마자 잎사귀를 틔워내는 녀석들도 있는데, 장미허브라고 봄에 새순을 틔우고 싶지 않으랴 하는 ENFP의 엉뚱한 상상 덕분이다. 장미허브 가지치기, 순 따기 등 여러 동영상을 섭렵한 뒤에야 (모두가 외목대만 키우는 세상이라는 것을, 풍성하게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가지치기해야 하는지 관련 영상 개수가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찌할지 방향성이 잡혔다.


중꺾마. 가지치기에서 '중요한 건 꺾는 마음'이다. 그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왔다면, 이렇게 한 번 웃자란 마음들을 아니, 가지들을 꺾어줘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제한사항은 단순하다. 튼튼한 기둥은 남겨두고 그 외 흙에 너무 가까운 가지들은 잘라낼 것, 이리저리 꼬인 덩굴은 잘라낼 것, 화분 아래로 늘어지는 녀석들도 정리할 것.


브런치 글 이미지 2



마음먹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을 들였지만 정작 실행하는 데에는 10분 남짓 걸린 듯하다. 과감한 가위질 끝에 기둥 역할을 하는 줄기들만 살아남았다. 제 힘으로 빳빳이 고개를 들고 서 있다. 남아있는 가지마다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곁가지가 늘어져있지 않으니 축축 처지지 않고 튼튼해 보인다.


아, 얼마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인생에 곁가지가 너무 많으면 정신만 산만하고, 중요한 집중할 수가 없다. 인생에도, 식물에도 중꺾마가 필요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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