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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 먹다 가족력 없이 임당 재검받은 썰

가족력 없는 30대, 당뇨의 무서움 눈앞에서 보기까지

by 동그란도나츠 Feb 15. 2025



얼마 전 임신 24주에 진입했다. 24주가 되면 산부인과 정기 검진에서 할 일이 정말 많아지는데 그중 하나가 정밀 초음파, 그리고 공포의 임당 검사다. 임당이란, 임신성 당뇨의 줄임말인데 당뇨가 그전에 걸린 적 없는 사람이더라도 임신을 계기로 당뇨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임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일반 당뇨 초기처럼 식단 조절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심하면 인슐린을 배에 놔가며 임신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또 보면 임당 검사 전날에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통과했다, 케이크를 먹었다 하는 후기가 난무한다. 마치 영웅담 같지 않은가. 당뇨 검사를 앞두고도 초연한 마음으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었다니 말이다.


이런 무지성 식사법에 반한 나는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로 했다. 최근 (20주가 넘은 이후부터) 늘어난 식탐과 좁아진 위장 탓 등으로 배가 완전히 부를 때까지 잘 먹고 잘 자고 있는 나도 건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전날 남편이 먹자 한 케밥 반 개와(소스까지 잘 뿌려서) 아무도 안 시켰더니 내가 따로 집어온 사이다까지 밤 열 시에 야무지게 때려 넣고는, 내일 임당인데 이래도 되나? 반신반의하며 잠이 들었다.


임당 검사를 받으려면 (내가 다니는 병원은) 8시간의 공복을 요구한다. 그리고 50g짜리 시약을 마시고 딱 한 시간째에 채혈을 다.


다음 날 아침, 9시 임당 검사가 예약되어 있는데 일어났는데 배가 하나도 안 고팠다. (공복이 아니란 뜻인 거 같다.) 물도 마시면 안 되는데 진료 순서나 이런 것들이 늦어질 상황을 고려해 조금 늦게 먹고 오라 했다. 8시 10분, 해열제 맛이 나는 오렌지맛 포도당을 흔들어 마시고, 병원에 정시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도착했다. 꼭 한 시간째에 채혈해야 한대서 이십여 분을 기다려 채혈을 하고, 정밀 초음파를 받았다. (정밀 초음파 얘기는 여기서 생략하도록 한다. 초음파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만 누워서 배를 까고 있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다기 때문이다.)



위험성을 철저히 무시 수 있던 데에는 가족력이 가장 큰 몫을 했다. 우리 집은 다행스럽게도 양가에 당뇨 유전자가 없다. 배가 나온 우리 외삼촌들도 당뇨 문제만은 잘 피해 가는 걸 보면 확실하다.


하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방심하고 있던 내게 그날 오후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병원이었다. 정상보다 많이 높으니 재검이 필요하단다. 무사통과를 예측했던 나는 잠시 황당하였다. 부랴부랴 재검 약속을 사흘 뒤로 잡고, 난 뒤 원인 파악을 해봤지만 사후 약방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잠시나마 클린 한 식단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당뇨의 위험성이 눈앞에 다가온 이를 처음 보는 엄마께서도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세일할 때 두 통이나 쟁여놨던 양배추를 무자비하게 잘라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양배추 샐러드를 만들어주겠노라 하시는가 하면, 식초에 찐 양배추를 끼얹는 등 별의별 수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결국 물에 씻어 먹었다.)


나도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다. 샐러드만 주야장천 밀어 넣는 대신 요새 유행하는 오트밀 빵을 만들어먹고, 양배추를 곁들인 식단을 유지하는 거로 스스로 타협을 보았다. 그 좋아하는 딸기도 줄이고 말이다.


전날 밤, 왜 이리 딸기 두 알이 눈앞에 아른거리든지. 소다스트림으로 강제로 1.5l 물을 만들어 마시고서야 그 식욕은 가라앉았다.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을 텐데, 나는 다이어트하는 사람처럼 이런 생각만 하며 잠이 들었다.


재검 당일이 가장 고통이다. 일어나 마른 목을 축일 수도 없고, 마실 시약도 없다. 병원에 일찍 가서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이런 고생이 필요 없게도 나보다 20분 늦게, 그러니까 정시쯤 맞춰 도착한 사람이 접수를 빨리 끝내버리고 나보다 먼저 채혈실로 뛰어가버려, 결국 매 정시 15분마다 채혈을 받았다. 나갈 때 그 사람의 눈빛이란. 아주 얄미웠다.)


임당 재검은 공복 채혈을 한 번 하고, 1시간, 2시간, 3시간 뒤 이렇게 총 네 번의 채혈을 해야 하는 아주 번거로운 일정이다. 짐도 있어 꼼짝없이 병원에 있어야 하고, 어차피 뭘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으니까 카페에 들렀다 오는 것도 그저 고통의 총량만 늘리는 일이라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겪어보니 그랬다. 재검 환자는 심지어 환자들보다 진료를 늦게 봐줘서(이건 병원이 잘못했지 않나, 진료실 앞 대기 의자에서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따지니 채혈하고 바로 진료를 보게 해 줬다. '어차피 네 시간 계실 거니까...' 하며 말끝을 흐린 것으로 봐서는 따지지 않았더라면 모든 환자 진료가 끝난 후에나 나를 봐주려 했던 심산이었던 게다. 게다가 진료는 형식적이었지만 돈은 내야 했다.)


뭔 병원이 환자들 휴대폰 충전 하나 못 하게 콘센트를 안 만들어놨는지, (휴대폰이 70% 정도만 충전돼 있었다.) 갑자기 생긴 일감이 있어 노트북을 잘 충전해 와서 망정이지 정말 아무것도 없이(심지어 이 병원은 잡지도 없다) 쌩으로 4시간을 홀랑 버릴 뻔했다.


그렇게 피곤했던 재검이 끝나고 점심은 한 끼 소국밥을 말아먹은 뒤 걸음을 재촉했다. 기차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친정에 오는 길, 이런저런 사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제대로 도착했다. 내려오는 길, 역에 도착하자 임당 통과 문자도 받았고 말이다. (임당이면 전화를, 아니면 문자를 준다더니 사람들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도착하고 나는 자축의 의미로 먹고 싶던 칼국수 집에 가 일인분씩 때려 넣었고, 집에 와서는 디저트 폭식을 했다. (그렇다고 단 걸 때려 넣은 것은 아니고..)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에 제크 크래커와 딸기 반 박스 정도. 그리고 다음날 아침은 거의 스킵했으나, 점심은 비빔밥, 저녁엔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었더니만 이틀 전보다 2kg가 쪘다. 세상에. 임당이 문제가 아니라 고무줄 같은 내 몸무게가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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