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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은 엄마와 지하철, 그리고 죄책감

by 동그란도나츠 Feb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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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 외곽에 거주하게 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나 보던 '경기도민'이 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1호선 임산부석을 차지하고 앉을 시간이 생긴다. 지하철 예술인 집합소라 불리는 만큼 다양한 인간상을 보게 되는데,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아이를 들쳐 안고 탄 한 젊은 엄마 얘기를 쓰려고 한다.


내가 그를 눈치챈 건 지하철에서 급한 업무 하나를 마쳐놓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나와 월계역에 다다랐다는 방송을 들었을 무렵이었다. 책 오른쪽 끝 모서리에서 웬 청바지와 달랑거리는 아기 다리가 하나 보였다. 이게 웬 노약자람! 젊은 엄마는 건너편 문에 기대어 서 있었는데, 아이를 품에 안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우, 비켜줘야 하나. 나는 갈등했다. 엊그제부터 배가 뭉쳐와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나는 27주 차 임신부다.) 아, 또 그럼 안 되는데. 그가 서 있는 옆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부부는 아니었다.) 앉아있었고, 주변엔 온통 눈 감은 아저씨들뿐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비켜줄 사람은 그의 어려운 처지를 발견한 나뿐인 것 같았다. 지하철 앱을 켜보니 서울역까지 남은 시간은 33분. 그 정도라면 만약 서서 가는 한이 있더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일어나 말을 걸려던 차에, 다음 역에서 내리려는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다행인데, 머쓱하다.)


팔이 아파 딸을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있던 그는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마, 자리 하나 양보 않는 사람들에 지쳤을 수도 있고-이건 내 생각이다- 곧 내릴 역을 생각하면서 마지막 힘을 내고 있었을 수도 있고, 소아과까지 남은 거리를 계산하고 있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내릴 만한 사람이 다 내리고 난 뒤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아직까지 쪼그려 앉아 있는 그의 어깨를 툭툭 쳐 앉으라 하고서야 그는 아기를 또다시 안은 채 좌석을 차지하여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 나는 차를 끌 예정이니까 오지 않을 수 있지만) 많은 젊은 엄마들이 겪고 있을 일이다. 운 좋게 기차 시작역 부근에서부터 타고 오는 나야 지금은 임산부석에 앉으면 되지만, 그나마도 뱃속의 아기가 나오고 나면 없어질 배려다. 그러니까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타면서 어려움을 겪는 건 개인의 책임이고 몫이 된다는 거다.


아이를 적게 낳는 건 온전히 환경의 탓이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어려움은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들, 아기가 울면 시끄럽다고만 생각하는 어른들, 사회 도처에 있는 노키즈존, '이젠 아니라'라고 하지만 여전히 눈치 보고 쓸 수밖에 없는 육아휴직(우리 남편은 승진이 걸려, 육아휴직을 쓰지 않을 작정이다), 임신부터 육아까지 적어도 2년은 내다보아야 하는 기나긴 세월과 커리어 공백. 그리고 요즘 아이들에게 엄마의 손길, 아빠의 손길이 없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며 가스라이팅하는 언론의 육아 다큐멘터리.

 

나도 안다고, 알아! 하지만, 엄마의 커리어는 대체 왜 안중에도 없을까?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딩크의 타당성에 대해서 주장하고 실천해 오다가, 최근 갑작스럽게 임신이 되어 당황하였지만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생명존중사상과 낳아야지 어쩌겠어하는 마음으로 임신 27주 차에 다다랐다.) 아이를 안고 탄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왜 이야기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지적질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대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하는 건가? 모두에게 육아가 제1의 대원칙이 아니라는 것을, 대체 언제쯤 말해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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