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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축제 찾아가자 1만 2천보

�뽈뽈대는 만삭 임신부 중랑 장미축제에서 꽃태교�

by 동그란도나츠




늘 그렇듯 이번 한 주도 뽈뽈대고 많이도 돌아다녔다. 2주 전 네이버 홈 화면에 뜬 중랑 장미축제를 토요일 일정에 적어둔 것이 시작이었다.



최근 가계부를 쓰네 뭐네 하면서 셀프로 나대면서 집에 꽃을 들이지 않았고 (몇 주에 한 번씩 꽃을 사기는 했었다.) 지난해 장미 키우는 데에 이미 온갖 정이 털린 터라 또 다른 장미 화분을 들이는 것은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던 터라 이렇게 한 번에 많은 꽃을 볼 기회를 놓치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게 너무 많이 걸어야 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또한, 임신 38주에 들어선 이상 적어도 한 달 뒤부터는 대한민국이든 전 세계 어느 축제라도 갈 수 없는 몸이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차를 타고 가도 되었지만,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여를 여행해서 태릉입구역에 내렸다. (태릉 입구에서 내리기를 아주 잘 했다.)



만삭의 몸을 고려해 우리는 원래부터 지하철을 타고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 주에 남편이 갑자기 차 창문을 고장 내왔고(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부숴먹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 주에 갑자기 비가 왔으며, 비 예보가 계속되는 데다 중력을 받은 창문이 슬슬 열리는 통에 토요일에 고치기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차를 고치고 돌아오는 길에 역이 있었다!



그리고 7분 뒤에 서울 가는 지하철이 도착하기로 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상 집에 다녀오는 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날 오후 늦게야 비가 온다고 한 데다가 당장 지하철을 잡아타고 갈 수 있다는 데 안 갈 것이 아닌 이상 안 탈것은 또 아니었다.




긴 여정이었던 만큼 남편은 꽤나 긴장해 있었다. 거리도 거리인데, 갑자기 아프면 어쩌지? 하는 질문과 서울까지 가는 길에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임산부석이 비어있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질문이 차를 타기 전까지 꼬리를 물었다. 다행히 우리가 탄 차에 임산부석은 비어 있었고, 어르신들이 "아이고 임산부석이 주인을 찾았네!" 하며 큰 소리로 반겼다. (감사하게도 나 혼자 탈 때에는 들어본 적 없는 환호다. 다른 좌석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다른 임산부가 탄 이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가 꽤나 오랜 시간 사람들의 큰 비난을 들었다. 이 또한 혼자 탔을 때는 들어본 적 없는 비난 수위였다만, 감사하다.)



다행히 우리는 임산부석마다 세이프 하며 축제장에 이르를 수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 사둔 커피 쿠폰을 써서 시원한 음료도 들고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건 생명수였다.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시거나 음료 사 마실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 다들 미리 알았는지 역 입구의 커피 프랜차이즈가 아주 북적였다. 이날 여기서 생수 장사를 했어야 하는 건데.)



축제를 간 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 경기도 북부인의 흐트러진 날씨 감각과 다르게 서울에는 장미가 만개했다. 정말 내 얼굴만 한 장미도 많았다. 그저 장미 나무 한 그루당 10송이 피면 많겠다 싶었는데, 정말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말이 적당할 정도였다. 이렇게 큰 장미가 존재했다고? 하며 임신으로 불어난 몸무게와 얼굴살에 맞지 않게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후후)





막달에 접어들고, 일도 쉬면서 사실 히키코모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마음 불편하게 있다가는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매일 하루 두 번은 산책을 하려고 했다. 각 3~4천보씩 하루 적어도 8천보를 완성하는 게 목표였다. 최근에 비가 하도 계속 내려서 쉽지는 않았다. 하루는 오전 산책을 쉬려다가 아니, 우산 쓰고 가면 되지 않나 하면서 우산쓰고 우비 입고 나가기도 했다. 덕분에 산책 성공률은 90%가 넘는다! (강아지 산책을 나갈 때보다 걸음을 더 많이 걷는다) 또 하루 세 끼는 제대로 챙겨먹으려고 하는 등 일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다 산전 우울증 방지를 목적으로 한 계획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꽤나 이런 일상 속의 계획을 세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40주가 꽉 찰 때까지 집-공원-병원-집 하는 일상을 원하지는 않았다. 또 내가 극외향성의 사람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바깥 공기를 하루라도 맡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주말에 한다는 축제를 굳이 걸어서 가는 원동력이 됐다. 또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으면 나만의 정신세계에 갇히게 될지 모른다.



이웃 동네에서 하는 축제를 가보는 것, 막달이라고 해서 나의 활동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를 '임신부'가 아닌 '나'로 살아있게 하는 일련의 행동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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