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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쳐버린 나의 초여름 일상

by 동그란도나츠



47일 전 나는 아기를 낳았다. 무려 3박 4일간의 진통 끝에 얻은 귀중한 내 새끼다. 새벽한 한 시간, 한 시간 반마다 나를 깨워도 밉지가 않고 그저 말을 못해 우는 게 안쓰러운 내 새끼. 하루종일 하는 일은 먹고 자고 놀고 울고 싸고 하는 것뿐인 내 새끼. 딩크인 내게도 이렇게 열심히 한 사람을 키워낼 자질이 있던가 하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을 얻었다.(이미 나는 고슴도치맘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얻은 대가로 평온했던 온연한 일상을 잃었다. 젖을 물리는 나는 거의 24시간 아기와 붙어있어야 하고, 아기를 맡기고 병원 진료라도 나갈라치면 아기가 갑자기 깨어 배고프다며 울고 있지는 않을까 덜컥 겁부터 나고 만다. 딱 한 번 남편 대신 내가 빵을 사러 나갔고, 출산 전엔 매일 하루에 서너번은 들락거리던 공원을 딱 한 번 가 보았다.




나는 많은 이들이 겪는 지독한 폭염을 놓치고 있었고, 어느때보다 일찍 찾아온 여름을 놓치고 있었다.



여름은 내가 없이도 물을 불렸다가, 바람을 몰아왔다가, 햇볕을 쨍쨍 내리쬐었다. 매일 5천보는 걷던 내가 5백 보에 만족하고 있었을 때 밖은 더위와 생명의 움직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꼭 나와 보아야지했던 장미가 공원 화단에 그득그득하게 피었고, 새끼 손톱만하던 벚나무 이파리는 이미 넓직해져있었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의 빛을 바라다 보았다. 노을빛이 잠깐 머물렀다 떠났다. 아기의 입만 바라보던 내 눈이 시큰시큰하다.




어제는 계란말이를 해보았다. 부러 생각해보니, 출산 이후 거의 처음 차린 집밥이다. 그간 한달이 넘도록 남이 해준 밥만 입에 퍼넣었다. 40여일 전에는 일상이던 것이 괜히 부자연스럽다.



오늘 약속이 있다는 남편이 없는 사이 요리를 해야할 일이 생겼다. 오이미역냉국도 해먹고 싶었지만 손이 너무 간다. 냉장실 속 미역국을 데울까했지만 이건 2인분이라 남편과 내일 먹는게 시간을 절약해줄 것이다. 이런 계산으로 또 계란말이를 부쳐보았다. 이번엔 나만을 위한 것이다. 케찹을 마음대로 모양내어 뿌려보았다. 희한하게도 모양새가 난다.



젓가락만 챙기고, 밥은 데운 그릇에 그대로 식탁에 올렸다. 계란말이 옆에는 김치를 그냥 한 그릇에 퍼담았다. 그릇마다 다른 반찬을 담던 때도 있옸는데, 지금의 내게는 큰 사치다. 나만을 위해 내가 요리한 음식을 입에 퍼넣는다. 곤히 잠든 아기를 안고서 깨울까봐 웃어른과의 술자리마냥 고개를 돌려 음식을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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