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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Apr 17. 2024

엄마

  요즘 부쩍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많이 한다. 워낙 많은 병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 그러려니 하는데 요즘은 더 마음이 많이 쓰인다.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301호 할머니가 얼마 전 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후로 엄마는 확실히 기운도 떨어지고 힘이 없어졌다. 하루 세끼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갖다 주시던 301호 할머니. 입맛이 까다로운 엄마는 맛있게 먹겠다고 하고는 반은 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친하고 아픈 곳 하나 없던 301호 할머니가 말기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엄마가 화분에 식물이 죽으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사람도 죽는 세상인데 식물이고 뭐고 안 죽겠냐고. 나는 그 말이 참 싫었다. 내가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보며 너무 불쌍하다고 해도 엄마는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의 죽음이 가장 크다는 식으로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엄마가 견딜 수 없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면 속이 상했다. 차라리 가엽다,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 말했으면 좋겠는데 이번에 301호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엄마는 그저 누구나 죽는다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자신을 달래며 슬픔을 감추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다. 나도 이제 엄마에게서 분리되어야 한다. 난 엄마와 너무 많이 동일시되어 있다. 하루에 꼭 한 번 통화를 하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그 기분에 동화된다. 아빠의 죽음과 연달은 언니의 죽음 속에서 엄마마저 잃을까 너무 두려웠던 삼십 대의 나는 매일매일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도 죽을지 모른다는 압박이 날 견딜 수 없게 했다. 하루 종일 엄마를 재미있게 해 주려고 온갖 허튼 농담을 하고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집에 오면 정말 신발 벗는 순간부터 거의 기절할 듯 피곤해서 쓰러져 자곤 했다. 그렇게 되고 싶던 동화일러스트 작가의 꿈도 일 년을 미루고 미루다 겨우 시작했을 때 하루 만에 울며 학원을 나왔다. 엄마의 전화 한 통에 그냥 나는 무너져 버렸다. 엄마는 잘 배우라고 전화했을 뿐인데 난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쓸쓸했기 때문이다.


 요즘 현장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그래도 아침에 운전하며 꼭 엄마와 통화를 하려고 한다. 오늘 아침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좋지 않아서 왜 그러냐고 하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현장에서 일할 건 많은데 솔직히 엄마의 기운 없는 목소리를 들으니 걱정보다는 짜증이 났다. 나까지 기운이 없어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출근하는 내게 힘내라고 하지 않을까. 내가 일이 없어 돈을 못 벌 때는 돈을 못 벌어 그렇게 걱정을 하더니 이제 일이 많아지니 자기의 통증에 더 예민해지는 걸까.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싶지만 기운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나랑 이렇게 통화해 놓고 다른 언니들이랑은 쾌활하게 통화하는 걸 꽤 자주 봤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가장 편하다고 하고 그래서 내게 가장 민낯을 보이는 거겠지만 나는 계속 그걸 받아주기가 힘들다.


 언니들이랑 있는 단톡에 좀 전에 엄마가 몸이 넘 안 좋아서 내일 MRI를 찍기로 했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엄마는 협착증으로 수술을 다섯 번을 했다. 그런데 다른 운동이나 재활치료를 거부해서 이제 몸에 한계가 온 듯하다. 그런데 또 내일 혼자 열 시에 가서 MRI를 찍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인네를 생각하니 마음이 영 안 좋다. 내일은 목공이라 내가 자릴 비우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일이 바빠지니 엄마네 갈 시간도 없고 사실 엄마랑 같이 사는 언니는 그 시간에 레슨이 있어 같이 가질 못할 텐데 이래저래 마음이 쓰인다. 301호 할머니의 공백이 더욱 느껴지는 오늘이다.


 통증이 너무 심해 엄마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얼마나 아프면 그럴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이런 내가 너무 괴롭다. 돈 벌러 다니며 내가 엄마를 너무 등한시한 건 아닐까. 이러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 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질문이 날 괴롭힌다. 그 질문의 화살촉은 항상 날 향해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엄마의 죽음을.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나 두렵다.


 주말엔 자격증 반을 등록해 놔서 수업을 하루종일 들어야 하고 이번주엔 특히나 주말에 실측이 잡혀 있어서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데 다음 주말에 가야지 했던 아빠가 그전 주에 죽어버렸을 때의 충격과 두려움이 다시 한번 날 엄습한다.


 차라리 언니들처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난 아직도 엄마의 존재에 섞여 있는 액체상태의 번데기 같다.


 엄마,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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