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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y 25. 2024

대기업 하청으로 일한다는 것.3

새로운 매니저를 만나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이를 갈았다. 이번 일까지 하고 나면 절대 뒤도 보지 않고 너희를 떠나리라. 다시는 얽히지 말자. 지긋지긋한 대기업의 횡포! 너희에겐 복수도 아깝다. 멍청이들을 상대하느니 나에게 에너지를 쓰자.


 그러나 막상 공사가 끝나고 As만 남고 나니 가정경제라는 녀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말한다. “단돈 백만 원이라도 벌어와야 할 것 아냐, 이 여편네야!”옆에서 카드값이 얄밉게 거든다. “낄낄… 쓸 때는 좋았지?’ 배달의민족이 달려와서 말린다. ”왜 그러세요!! 내 소중한 천생연분님께!! “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행동에는 결과와 책임이 따른다는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오라클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던 차에 당장 그 주 금요일에 시작해야 하는 공사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암요, 가능하죠. 가능하고 말고요.


 집에서 좀 멀죠? 괜찮습니다. 어디든 바퀴 있는 차가 못 가겠습니까. 하지만 이 것만은 포기 못하지.

 “매니저님은 혹시 누구신가요?”

 “새로 오신 분입니다. 연락처 드리겠습니다.”


 새로운 매니저다. 이름을 보니 여자분이시다. 오옹. 이번엔 또 어떤 일이 날 기다리려나. 걱정 반, 근심 반으로 통화를 해보니 일단은 사람이다. 그것도 어린 사람. -그 전 매니저들은 솔직하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는.- 공사 시작도 바로 이틀 남았고 원래 현장 미팅을 한 번은 진행해야 해서 언제 즘 현장에서 뵐 수 있는지 내일 시간이 되시는지 물었다. 생각 못한 하소연이 쏟아진다.


 “저 내일은 용인 실측 가야 해요.. 오늘은 강일동 다녀왔어요.. 집이 일산인데…”


 “어머, 너무 힘드셨겠어요. 멀리 다니면 힘든데…”


 나도 모르게 위로해주고 말았다. 그래서 내일 나는 현장에 가 볼 건데 본인은 못 오겠다는 뜻 같다. 일단 현장 벽에 다 써놨다고 하시니 알았다고 하고는 현장 가서 모르는 건 여쭤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현장에 가려는데 톡이 왔다. 그 매니저였다.


 “실장님, 오늘 현장 언제 도착하세요?”


 나는 시간이 돼서 현장에 오려는 줄 알고 “네 시즘 도착합니다.”라고 보냈다. 답톡은 정말 생각 못한 내용이었다.


 “저 너무 회사 있기 싫어서 실장님이랑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고 나왔거든요, 지금 용인 실측 끝났는데 비밀로 해주세요!! 저 너무 양아치죠?”


 화가 나기는커녕 귀엽다는 생각도 들고 해맑다는 생각도 들고 황당하기 그지없다고나 할까.


 “우린 현장에서 만난 겁니다. 염려 마세요. “


 나도 공범이 되었다… 다음날이 철거인데 암튼 그럭저럭 현장은 파악했고 저 매니저는 나를 너무 의지 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아무 생각이 없는 거겠지.


 철거는 마무리 됐고 자재를 시키기 위해 기존방식으로 진행하면 되는지 물어보니 다시 슬픈 대답이 온다.


 “저 입사한 지 3주밖에 안 됐는데 계약이 너무 빨리 되어버려서 하나도 몰라요 ㅠㅠ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난감함이 느껴졌다. 알겠다고 하고 현장에서 그래도 전기나 목공 전에 한번 만나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어보니 ‘그럼요! 우리 만나야죠!’라는 씩씩한 대답. 월요일 오전에 만나기로 하고 시간을 정했다. 다시 톡이 왔다.


 “저 그날 회사 안 들리고 실장님 바로 만나러 간다고 해서 아침 열 시에 현장미팅이라고 했어요!! 저 양아치죠?^^”


 그 정도면 현장직의 장점을 잘 활용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맨 처음 매니저는 한 달을 본사출근을 안 하고 있다던데…


 이번 공사는 또 어떤 자국을 남기려나. 매니저들로 인해 지금 나는 사람에 대해 완전 고슴도치 모드인데. 이 매니저는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려나. 일단 최대한 방어막을 둘러싸고는 있는데 툭툭 어린 학생 같은 해맑음이 내 방어막을 건든다. 뭔가 귀엽기도 하고… 그동안 매니저들 특유의 수직으로 찍어 누르려는 텃세와 하인 부리듯 무시하는 하대랑은 또 다른 양상이다.


 아직 덜 겪어봐서 모르겠지만 이번 현장이 무사히 끝나길 고사라도 지내고 싶다. 끝난 공사들의 AS도 얼른 처리해 줘야 하고 아직 정산받지 못해 허덕이는 상황도 날 지치게 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돈 달라고 돈!! 하청업체는 오늘도 서럽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데 악어가 입을 벌릴 듯 벌릴 듯하면서 입을 안 벌리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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