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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Jul 22. 2024

불안

바깥 창문을 튼튼하게!! 샤시 광고 아님.

현대인은 늘 불안하다. 나도 불안증 약을 먹고 있으니 할 말이 없지만. 불안이란 인간의 시작부터 즉, 탄생부터 생존을 위해 기본적으로 탑재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멀리서 보이는 어렴풋한 형체가 나의 아군일지 적군일지를 늘 구별하고 판단해야 하는 생존의 기로에서 늘 긍정을 선택한 이는 이미 그 상대방에 의해 목덜미가 물려 죽던가, 상대방의 흉기에 의해 죽던가 죽을 확률이 훨씬 높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늘 불안하고 불안을 근거로 상황을 판단하게끔 생존해 왔다.


어두운 밤. 11시를 향해가는 이 시간. 밖에 바람이 많이 부는지 방의 나무로 된 창이 흔들리며 유리창과 함께 덜컹덜컹 잦은 마찰음을 낸다. -왜 저 창만 샤시를 안 바꾼 건지 정말 궁금하지만 세입자니까 그려려니 한다- 어린 나의 고양이가 불안한 눈으로 잠시 날 쳐다본다.  이 친구의 소개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난 저것이 바람으로 인해 창이 흔들리는 소리임을 안다. 저 소리가 날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저 소리의 정체가 뭔지 알고 시끄럽긴 하지만 나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정 저 소리가 성가시면 바깥 샤시문을 꼭 닫으면 해결될 거란 것도 알기 때문이다. 원인- 상황(현재)-해결. 원인과 상황에 대한 정보가 있고 내가 제어할 수 있는 해결법이 있다. 그래서 나의 작은 친구가 잠시 불안한 눈으로 날 바라볼 때 같이 불안에 휩쓸릴 필요 없이 바로 장난감을 흔들어 놀아줄 수 있다. 이 고양이에게 이제 이 소리는 뭔지는 모르지만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고양이는 다시 장난감을 잡기 위해 집중하고 이내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여기가 괴물이 점령한 도시에 사는 영화의 한 장면 속이라면 어땠을까. 저 창문이 떨리는 소리가 괴물이 지나가는 소리라면? 난 덜덜 떨면서 고양이에게 괜찮다고 울면서 억지로 말하며 안정시켰을 것이다. 그것은 불안보다 공포에 가까운 감정일 테지만 내가 괴물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불안은 존재했을 것이다. 괴물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저 작은 친구에게도 나의 불안은 몇 배로 증가되어 전달되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여유 있게 돌아다니면서 쥐돌이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현대인은 잡아먹힐 걱정은 선인류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다른 의미의 존재들에게 잡아먹히고 잠식당할까 늘 불안하다. 무의미에 잠식당할까. 무가치에 잠식당할까. 무능력에 잠식당할까. 무시에 잠식당할까.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 - 나는 괜찮게 살고 있는 걸까. 이로 인한 마음의 흔들림은 그저 지금 저 창문 밖의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창문 같은 소음일 뿐이다. 이것이 장마철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의한 바람 때문인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살아가며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 때문에 우린 그런 소음 속에 늘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바깥창문을 닫으면 조용해진다는 것을 아는 이상 그 소음은 날 더 이상 불안하게 하지 못한다. 그 소음은 괴물이 아니다. 나의 세상은 괴물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므로. 괜한 상상력을

키워 있지도 않은 존재에 떨 필요는 없다. 단지 그 바깥창문을 튼튼하게 관리하는 것이 자신을 불안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순간 내 안의 바람은 멈출 테고 더 이상 창문은 소음을 내지 못한다. 내 세상은 안전하다. 나의 작은 고양이도 어느새 바닥에 내려가 방울을 건들며 놀고 있다. 티라이트는 예쁜 향과 빛을 내며 가만히 흔들리고 있다. 그저 평화로울 뿐이다.


바람이 지나가고 날이 좋아지면 다시 바깥 창을 열고 환기도 시키고 햇빛도 받자. 하지만 오늘같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바깥 창을 닫고 그저 자신의 내면을 안정시켜 줄 필요가 있다. 오늘 하루 종일 현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기간 내에 공사가 잘 마무리될지 불안해졌다.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 포물선을 그리며 고점을 향했고 가장 상단을 치더니 우울이란 녀석이 쿵하고 떨어졌다. 내 마음은 상처받았다. 스스로의 불안과 우울함에. 과거의 실패와 역시 넌 별 거 아니야라는 조소 섞인 자괴감이 날 땅 속에 처박았다. 진작에 내가 바깥 창을 닫았더라면 저 창 밖의 바람과 비가 내 공간을 어지럽히는 걸 막았을 텐데. 난 혼자 우울이란 괴물을 만들어 내 잡아먹히고 있었다.


우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우리의 공간을, 마음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나의 작은 고양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의무와 다르지 않다. 나의 내면도 나 스스로에겐 작고 여린 고양이와 다름없다. 바깥 창을 더 튼튼하게 하자. 그리고 소음이 너무 심해지면, 그래서 비가 올 것 같으면 창을 잘 닫자. 그리고 나의 작은 고양이의 발바닥 핑크젤리를 만지며 골골송을 들으며 행복해지자. 모두 그래서 불안이란 녀석 때문에 확 고꾸라져서 힘들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의 깨달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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