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상대적 동물이라 했던가. 결국엔 그렇다. 옆에 누가 어쩌고 저쩌고에 흔들릴 수밖에. 그러나 절대적 행복으로 충만할 때가 있으니 이는 내게 명절 때이다.
결혼했을 때 내게 명절이란 끔찍 그 자체였다. 명절 전날에는 전남편의 눈치를 보며 친정 제사에 쓸 음식을 하러 갔고 오후 늦게부터는 다음날 차려야 할 아침상을 준비해야 했다. 시댁에 시어머니가 같이 살지 않았으므로 내가 다 준비해야 했다.
아침 다섯 시도 안 되어서 일어나서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시댁에 가서 추도예배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 -물론 내가- 후다닥 포천 큰 집으로 가야 했다. 가서도 내가 애가 없고 어린 이유로 상을 차리고 치우고 커피까지 내 몫이었다. 그 사이 그들은 가끔 얻어걸리는 옛날이야깃거리를 하나씩 집어 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무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지겨움은 뼈가 아리도록 몰려왔지만 핸드폰을 볼 수도 없었다. 버릇없는 며느리 소리 듣기 싫어서 그저 하하하 웃으며 그들의 알지도 못하는 사촌의 이야기에 방청객처럼 호응해 주고 있었다.
겨우 큰집에서의 일과가 끝나는 듯싶으면 이제 그 동네 순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모르는 그들의 친척들. 웃으며 인사하고 앉아서 또 시간은 가고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저녁에는 오는 길에 시누이네 모여서 저녁을 먹었다. 거기서는 내가 밥을 차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미 엄마랑 언니들은 언제 오냐고 성화였다. 나도 가고 싶다고. 미치겠다고.
겨우 빠져나와 친정에 가면 시간은 밤 9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얼굴만 보고 다시 집에 오기 바쁘다. 엄마의 서운한 얼굴이 역력하다. 언니들도 말은 없지만 영 마음이 좋진 않은 듯하다. 집에 오는 길에는 드디어 이렇게 끝났다. 아무 생각도 더 하기 싫은 백지상태가 된다.
이혼 후 가장 행복한 건 명절이다. 명절이 기다려진다. 이번 추석엔 먹고 싶은 호박전을 잔뜩 해 먹었다. 부치면서 다 집어먹어서 남은 결과물은 초라했지만 그래도 셋째 언니랑 니캉내캉하면서 즐거웠다. 너무나 그립던 친척들도 만났다. 반갑고 마음이 푸근해서 그리 좋을 수 없었다. 명절은 가족과 함께. 정말 좋은 말이다. 작은 사소한 말에도 다들 까르르 웃음을 쏟아낸다. 빛난다. 웃음들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엄마의 탕국이 좋다. 맛있다. 무나물조림도 좋고 갈비찜도 맛있게 되었다. 특히 이번엔 물김치를 정말 맛있게 담근 엄마에게 특급칭찬을 해드렸다. 엄마는 잘 팔린 김치를 보며 비어 가는 김치통을 내심 흐뭇하게 바라본다.
명절은 이래야지.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수가 즐거운 것은 명절이 아니다. 다들 즐거워야 한다. 그러려면 자의가 필요하고 모임이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 이번에도 명절 증후군으로 괴로워하는 지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상대적 행복감에 빠진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치사하고 더러워도 이혼하지 말고 살걸 그랬나 했던 생각을 멀리 발로 차버린 지 오래다. 이혼하길 정말 잘했다. 오랜만에 본 친척이 나보고 밝아졌다고 한다. 살도 쪘다고 한다. 기분 좋다. 다시 고등학교 때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이혼 후 나는 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철없는 모습일지 몰라도 그래도 좋은 나로 변하고 있어서 좋다.
명절에 자기 자리에서 고군분투한 다들 스스로를 칭찬하고 위로하자. 나에게 줄 선물 앞으로 달려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