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성실하게 살면 바보되기 쉬운 세상이라 하지 않았던가. 적당히 잔꾀도 부리고, 살짝은 덜 성실하게 살아줘야 피해는 안 보는 세상이라 했는데...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마상에나! 이 세상 속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바보가 되어 아주 아주 성실하게 살고 있었더랜다. 바보가 되면 아무도 찾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두 분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를 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거다.
그러니까 성실하게 살면, 바보가 아니라, 복을 받는다. 성실하게 일해온 시간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만한 댓가를 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실로 복이 아닌가. 요즘 말로 바보는 맞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 받고, 좋은 기회를 제공 받는' 바보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성실하게 밭을 가꾸고 일을 하며 살아왔다. 밭을 가꾼다는 것은 큰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 노동은 하루 아침에 할 수 있는 양이 아니고, 매일 매일 부지런히 반복해야 한다. 큰 돌을 골라내야 하고, 잡초를 뽑아야 하고, 밑거름을 줘야 하고, 흙 뒤집기도 해야 하며,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수분 보충도 해줘야 한다. 이렇게 번거로운 노동을 두 분께서 매일 매일 잘 일궈온 덕에 밭은 농작물이 자라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되었다. 멀리서도 이 밭의 진가가 소문이 났나, 아주 좋은 값에 사겠다고 줄 선 사람들이 한 가득이다.
또한 할아버지께서는 출근하는 직장이 있다. 80이 넘은 나이. 보청기를 낄 만큼 좋지 않은 귀. 여러모로 직장을 다니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할아버지와 계속해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사장님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는 지각 한 번 조퇴 한 번 없었다고 한다. 벌써 10년 째. 목수 일을 그만 두고, 큰 건물의 경비원으로 일하시며 직장인 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으신다. 우리 할머니 볼살이 날이 갈수록 똥똥해지는 이유다.
나는 성실하게 살아보기로 한다.
그러나 누군가 말한다. 적당히 잔꾀도 부리고, 살짝은 불성실하게 살아줘야 사는 게 재미지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너무 성실한 사람은 뭔가 안쓰러워.' 내가 뭐라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느낌을 가졌었다.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하고. 생각해보면, 나는 성실하게 사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안쓰러워 했었다. 왜 저렇게 힘들게 사시지, 왜 저렇게 열심히 사시지, 하고. 그런데 살아보니 그들이 맞다는 걸 그들의 삶이 증명한다. 성실하게 살면 바보되기 쉬운 세상,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기꺼이 바보가 된다.
잘 살면 좋으니까. 그래서 나도 성실하게 살기로 한다. '너는 너무 열심히 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에게 느꼈던 안쓰러움을 버리고자 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가 가꾼 밭을 원하는 사람들이, 나와 계속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나도 성실하게 살아서 복 한번 받아보고 싶기에. 누가 뭐라하든지 간에 성실하게 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