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아빠와의 카톡에서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 같은 딸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제 멋대로에, 기분파에, 박쥐처럼 이리저리 이직하는 딸이라... 좋게 말하면 원하는 거 다 하는 사람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뚝심 없는 사람이다.
제 멋대로고 뚝심 없는 딸을 키우는 엄마와 아빠는 어떤 생각으로 나를 바라볼까? 궁금하지만 물어보기에는 타이밍이 애매하다. 낮에 물어보면, 우리 딸 왜 저래? 할 것만 같고 저녁에 물어보면, 우리 딸 많이 힘들지?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물어보기에 아주 적합한 타이밍이 있다. 바로 새벽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밤에도(아니 밤까지) 일하는 편집자이고, 우리 아빠는 밤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대화는 가끔 새벽에 일어난다.
새벽 한 시쯤, '밥 먹었나' 무심하게 톡이 온다. 그럼 나는 '먹었다 아부지는' 하고 답장한다. 그다음은 먼저 아빠에게 '뭐하나'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일한다'라고 답이 온다. 새벽까지 일하는 딸과 아부지. 얼굴도 닮았는데 하는 일까지 닮는다. 아빠는 평생을 그렇게 일해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성실함이 모여 지금의 그들이 되었고, 나는 그들을 보며 배운다. 나의 부모처럼만 살자. 그런 생각이 요즘엔 부쩍 든다.
아빠와 나의 톡은 새벽에 이루어져 꽤나 비밀스러운 얘기를 주고받을 때가 많다. 할아버지의 땅 얘기, 엄마와 또 왜 싸웠는지, 나에게 주식하라고 몰래 준 돈의 행방 등등 갖가지 궁금한 것들을 서로 아주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며 얘기한다. 이때가 바로 타이밍. 나는 묻는다.
아빠, 나 같은 딸 키우기 너무 힘들지 않아?
예상한다. 분명 '힘들지 기지배야' 혹은 '힘들지,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봐라'라는 답변이 올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인생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정말로 예상외의 답변이 와서 나는 정말 아빠가 보낸 것이 맞나, 하고 다시 봤다.
'잘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해'
이 톡을 보고 편집실에서 얼마나 입을 삐쭉댔는지 아빠는 알까. 사실 매일매일이 힘들고 지치는데, 아빠 눈에는 잘하고 있다니 커다란 파도가 단숨에 잠잠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랬구나, 나 잘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아빠의 직업상 집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빠는 매일 말한다. 눈 감았다 떠보니 너희들이 이렇게 커 있었어, 하고. 오빠와 내가 큰 문제없이 학창 시절을 보낸 공을 모두 엄마에게 돌린다. 하지만 갓난아기부터 성인 때까지 엄마의 공으로 무럭무럭 컸다면, 성인이 된 나를 성장하게 하는 건 아빠의 공이 크다.
부모가 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 같다. 사람을 태어나게 하고, 키우고, 지켜보고, 상처 받고, 사랑받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일 텐데. 스스로 하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분노가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부모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인내하는 사람인 것만 같다. 내가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그런 인내를 알 수 없겠지? 내가 부모가 되고 나면 그런 인내를 가질 수 있을까? 인내의 밤이다. 무거워진 엉덩이를 인내하며 편집하고 있는 나와, 서른이 다 되어 가는 딸내미의 투정을 받아주는 아빠의 인내. 나도 후에 자식들에게 저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나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잘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해' 하며 힙한 이모티콘을 보내는 엄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