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를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저녁 뉴스의 내용을 하나하나 보고 있노라면 요즘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뉴스 꼭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청년들이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어째 더욱 심해지는 느낌이다.
‘청년 실업률 사상 최고치 경신, 바늘구멍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청춘들, 2030 세대 10명 중 7명이 N 포 세대’따위의 타이틀을 앞세워 취준생 또는 공시생들의 한숨 섞인 인터뷰가 이어지고, 뒤이어 누구나 몇 번은 들었을 법한 내용의 리포트와 함께 2분 남짓의 짤막한 뉴스는 끝을 맺는다. 사실 내 또래 청춘들의 이야기라 관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무신경한 표정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화면만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의 죄스러움이 잠깐 머리를 스친다. 나에게 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게 아닌데 이토록 무디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해 보지만, 이내 이런 것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기 때문일 거라고 간단히 생각을 정리해 버리고는 다시 리모컨을 든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보다가 멈춘 다른 채널, 역시 젊은 층을 주 타깃으로 하는 강연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강연자는 수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청각 장애인으로 보였고, 옆의 수화 통역사가 그 내용을 말로 옮겨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강연은 진행되고 있었다. 청각 장애인으로서 힘들었던 삶에 대한 고백이 이어졌고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의 모습도 간간이 카메라에 잡혔다.
강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소감을 듣는 순서가 진행되던 중 관객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강연자 분의 굳은 의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늘 힘들어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저분에 비하면 그동안 저의 의지가 한참 모자랐음을 느꼈구요. 인생의 롤 모델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소 틀에 박힌 느낌의 이 소감, 나는 얼마간 잊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찾은 것처럼 일종의 반가움마저 느꼈다. 나면서부터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했던 나를 만날 때면, 친구들·선생님들을 비롯한 지인들이 나에게 종종 하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도 텔레비전 속 강연자처럼 누군가의 ‘롤 모델’ 이곤 했던 때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 두 분은 자식인 내가 보아도 참 알뜰하신 분들이다. 자린고비처럼 무조건 아끼자는 주의는 아니셨지만 필요 없는 물건 하나 허투루 사시는 법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유독 자식들 공부하는 돈, 특히나 내가 볼 책 사는 돈 하나만큼은 아끼지 않으셨는데, 아마도 밖을 자주 못 나가는 아들 녀석에게 대신 마음의 큰 곳간 하나를 지어 주고 싶어서였을 게다. 아무튼 이런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나는 집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책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당시 내 방 책꽂이에는 위인전이나 자서전 같은 종류의 책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특히나 나는 ‘신체는 불만족, 그러나 인생은 대만족’이라는 카피로 큰 화제가 되었던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유독 좋아했었다.
「오체불만족」의 작가 오토다케 히로타다. 여담이지만, 작가 오토다케는 최근 수 명의 여성과 불륜을 저질러 세간의 도덕적 지탄과 부러움(?)을 동시에 받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 보니 「오체(五體)불만족」이 아니라 '오처(五妻)불만족'이었다!!)
당시 이 책은 팔다리 없이 태어난 한 학생의 학교생활을 비교적 밝은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그려 내어 큰 인기를 누렸었는데, 아마도 나는 어린 마음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 나의 본보기쯤 되었던 셈인데, 사실 이 책은 꽤 오랜 시간 나를 편협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책이 잘못 씌어졌다기보다 당시의 내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에서 ‘화제의 인물’이자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단지 불편한 몸으로 학교생활을 한다는 자체로 화제였고, 주변인들은 나를 ‘의지의 한국인’또는 ‘훌륭한 본보기’로 추켜세웠다. 나 역시 당시는 그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나도 「오체불만족」의 작가처럼 불편한 몸이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말들이 불편하게 들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순전한 나의 착각이었음을 차츰 알아갔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드문해진 어느 늦은 오후, 말끔한 양복 차림에 파란 바탕의 체크무늬 베레모를 눌러 쓴 중년의 신사 한 분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내 앞에 선다. 신분증을 확인하기 전이지만 대강 어림잡아 보아도 50세는 넘어 보이는 그는,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필요한 서류 목록을 적은 쪽지를 나에게 건넨다. 그리고는 잠깐의 어색한 공백을 애써 메워 보려는 듯 사무실 이곳저곳을 살피지만 특별한 의도를 가진 응시는 아니다.
그러다 내 자리 뒤쪽에 놓인 휠체어에 순간 시선이 머문다. 이전까지 이리저리 목적 없이 바쁘게 움직이던 눈동자는 꽤 오래도록 정지한 상태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눈인사만 나누느라 자세히 보지 않았던 앞의 젊은 청년의 모습을 다시 한번 찬찬하게 살핀다. 혹시 내가 알아차릴까 조심스럽게, 나 역시 그 시선을 느끼지만 그분이 행여나 어색해할까 짐짓 모른 체한다.
이윽고 둘의 눈이 마주친다. 그는 흠칫 놀라 급히 시선을 피하지만 이내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래도 젊은 총각이 대단하네. 요즘 같은 때 이런 데서 일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본 좀 받아야겠어. 멀쩡한 사람보다 훨씬 나아. 얼마나 좋은 본보기야.”
처음 듣는 말이 아니건만 들을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나는 어디선가 달려오는 민망함을 조금이라도 빨리 지워 버리고자 얼른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는 출력되어 나온 서류 뭉치를 재빨리 집어 들며 화제를 돌려 버리고 만다. 어딘가 모르게 부끄럽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들켜서가 아니다. 나를 향한 칭찬의 표현인 줄은 당연히 알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본보기, 롤 모델이 될 만하다는 그 말, 특히나 건강한 사람보다 낫다는 그 말을 듣기가 부끄럽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어딘가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힘겨워하고 있을 누군가가 나보다 나약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진 핸디캡으로 인한 어려움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 장애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적이 없어 나의 힘듦에 대해 내가 온전히 인지를 못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과정 자체가 본래부터 가진 어려움 때문인 것이지 그 사람이 단지 나라서, 내가 장애를 가졌기 때문은 아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간혹 내가 정말 감당하지 못하는, 그럼에도 나의 의지력 하나로 그동안 그려져 왔던 것들의 이면에는 내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수많은 어려움들에 대신 맞서 준 주위 분들의 역할이 정말 컸다. 그것들이 불쑥불쑥 갑자기 튀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던 순간순간, 내가 순전히 내 의지 덕분이라고 착각했던 것들에는 사실 이런 사정이 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칭찬을 받을 만큼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런 대단한 의지를 가져야 할 만큼 힘들지도 않다. 오히려 언제부턴가 나에게 자연스레 생겨버린 이미지와 달리 나는 속된 말로‘농땡이’에 가깝다. 사실 의지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내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에 약간의 의지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나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의 나처럼 내가 불편하다는 것에만 매몰되어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일 듯하다. 세상에는 장애 외에도 저마다의 갖가지 이유로 힘겨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의 청년들이 특히 그러하다.
청춘 토크 콘서트, 청춘 멘토, 청년 캠프, 청년 창업……. ‘청년’또는‘청춘’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유행처럼 번졌던 게 또 언제였던가 싶다. 그야말로 ‘청춘시대’가 아닐 수 없다.
분주한 아침 신문을 펼쳐 들고 헤드라인만을 빠르게 훑어 내려가던 누군가는 “요즘 애들은 뭐가 그렇게 힘들다는 건지 원.”하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객석에 앉아 성공한 사업가의 이야기를 듣던 누군가는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며 자기비하에 빠질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노력하면 다 잘 될 거야”라는 식의 말이나 어떠한 해결책을 줄 자신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청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것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가 만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도 힘들 수 있음을 알고 그것에 대해 공감할 줄 아는 것,
굳이 나를 무엇이라 이름 지어야 한다면, 굳이 내가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면, '공감의 롤 모델'쯤이라 해 두는 것이 맞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