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각별했던 여행이 글이 된 사연
잘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일평생 나를 괴롭힌 일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 두 개의 중학교가 연합한 규모가 큰 만화 동호회에 들었다. 난 당시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만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니까. 함께 가입한 친구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그녀가 연습장에 연필로 슥슥 그린 습작 노트를 전교생들이 돌려볼 정도였다. 만화를 그리는데 필요한 스크린톤도 사고, 형형 색색 붓도 사보고 베레모만 사지 않았을 뿐 만화가가 될 만발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쉽게 그려지던 형상들이 4컷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재능이란 건 말이다. 실제로 재능이 있는 사람 옆에 잠깐 있어보면 재빨리 깨닫게 된다. 어린 나이에도 꽤 현실적이었던 나는 친구를 보며 재능이 없음을 알고 만화가를 포기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다. 폭발적인 가창력보다도 진중한 음색으로 좌중을 침묵시키는 인디가수들처럼 느낌 있게 말이다. 중학교 때는 자우림의 <낙화>가 인기였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중2병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이들이라면 모두 한 번은 처연함을 뽐내며 내지른 노래다. 당시 노랫말을 지어 부르고 쇼맨쉽도 뛰어난 김윤아를 동경했다. 친구들과 그럭저럭 음정은 맞춰 불러서 녹음한 데모테이프를 보내고 동네 가요제에 나갔다. 가요제 현장에서 느낀 건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재빨리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더 재능 있는 꿈나무에게 양보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무명의 디자이너들이 매회 옷을 제작해 런웨이에 올리는 경연 프로였던 프로젝트 런웨이를 보며 디자이너들을 동경했다. 금속 공장이나 식품 가게에서도 옷의 소재를 찾아야 하는 극한 미션에서도 쿠뛰르를 해내는 그들에게 감탄했다. 수차례 디자이너로 분해 옷을 만들어내는 꿈을 꿨다. 한 번은 꿈속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냈던 대로 구상한 옷의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머릿속에는 그 청사진이 가득한데 그림부터 잘 풀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깨닫게 됐다. 무형의 생각을 시각화하고, 청각화하는데는 손도 목청도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나마 생각한 바대로 실현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글이었다. 더 이상 취업을 유예하기 어렵게 나이가 차버린 나는 진로를 정해야 했다. 고민하던 차에 떠올린 기억은 열세살의 어느 평범한 오후였다. 학급에서 모두가 하려 하지 않았던 신문사 역할을 자청해 맡게 된 후로 매주 급우들에게 반의 이모저모와 특집 기사를 만들어 전하는 데 재미가 붙은 나였다. 유난히 햇살이 가득 내리쬐어 교실 커튼 사이로 식판을 비추던 점심시간. 얼른 먹고 뛰놀기 위해 급히 수저를 뜨던 내게 지나가던 담임선생님이 건넨 한마디 때문이었다.
“너는 커서 언론인이 되렴”
어떤 대답도 바라지 않고 건넨 선생님의 한 톤 정제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언론인이 뭔지도 몰랐던 난 어리둥절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무언가가 돼볼까 하다가 유독 그 어린날 오후의 햇살을 떠올렸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이 언론학부를 이중전공으로 정하게 되었다. 전공 필수였던 기사 작문 수업에서 매주 글을 썼다. 교수는 일간지 은퇴를 앞둔 현직 기자였다. 머릿속에 밍밍하게 맴돌며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생각이 알싸한 문장이 되어있고, 어느새 묵직한 덩어리로 문단이 되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교수님은 첫 수업에 내 글을 동급생들 앞에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내 안에 있던 무형의 무언가가 현현한 물질로 남을 수 있다는 유효함을 느꼈을 때가.
그 뒤로 내 인생은 다시 흘러가지는 대로 흘러갔다. 글쓰기도 내 밥벌이의 수레바퀴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걸 보면 재능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온전히 내 의지대로 한 일은 소소한 습작들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할 일은 짧다면 짧은 여행기를 글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그러나 영구한 기록물로 남기는 것이다. 여행지는 아이슬란드다. 태초의 지구 같았고, 또는 태양계의 또 다른 행성처럼 아득하게 기이했던 그곳에 대해 적으려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메인은 풍경에 관한 찬사가 아니다. 소설처럼 다이내믹한 사건과 기승전결이 담겨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여행기에는 일생 동안 본 적 없던 으리으리한 풍경 앞에서 왜곡 없이 온몸으로 환희의 리액션을 내뿜던 친구들과의 돈독해진 우정을 그릴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각별했다. 소속도 나이도 달랐지만 오로지 문학이라는 매개 하나로 만났다. 같은 책을 소재로 세상과 인생살이를, 자연스레 감춰졌던 내면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서로에게 깊이 공감했고 때로는 반박하기도 하며 슬며시 사이를 좁혔다. 매달 한 번을 모이던 모임이 열두 달이 되었고, 해를 넘어가며 쌓인 책만큼 서로의 독서 취향뿐만 아니라 음악 취향, 세계관, 가치관을 공유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평소 단체 모임에는 선뜻 나서지 않는 내가 놀랍게도 이 독서모임만큼은 잦은 즉석 번개를 제안했다. 그리하여 자칭&타칭 얻게된 별명 번개여신. 제안하면 또 모여주는 맛에. 모이면 또 무조건 즐거워지는 맛에.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암묵적인 믿음이 쌓여갔던 걸까. 작년 말 무심코 단톡 방에 던진 여행지에 한 명이 흔쾌히 동조했다. 그러다 어느새 이 여행은 셋이 되어있었다. 여행에 둘은 간혹 따분하고 넷은 두 편으로 갈라지는데 반해 셋은 완벽한 숫자다. 이제 함께 떠나는 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우연히 그러나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운명처럼
나는 이렇게 열흘 가까운 시간이 가져다준 친구들과의 찬란한 날들을 글로 남겨야만 한다.
첫째, 기억을 휘발시키지 않기 위해서.
둘째, 날 것의 자연 앞에 술렁였던 감정들에게 반짝반짝 윤이 나는 옻칠을 하기 위해서.
어쩌면 어떤 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가장 의미 있는 행위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