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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Dec 02. 2019

3. 100곳의 회사에 지원하기

< 제 4 장 >  성취 그 짜릿함

“58…. 59…. 60개.”


엑셀 시트에 60번이라고 썼다. 그동안 지원한 회사가 60개가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면접까지 갔던 회사들이 있었지만 전부 탈락했다. 포기하고 싶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고민도 됐다. 마침 취업한 선배가 100군데의 기업에 지원서를 넣고 합격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정말 되는 건가.’ 의문이 들긴 했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100번까지는 꾸준히 해보기로 했다.


70개쯤 지원했을 때 최종면접까지 간 회사가 생겼다. 농심의 인사교육 포지션이었다. ‘나한테 맞는 회사는 따로 있다던데, 이 기업이 그 기업인가?’ 너무 떨렸다. 이번 면접만 합격하면 더는 지원과 탈락을 반복하지 않아도 됐다. 채용홈페이지에 아이디를 입력하고 진행상태를 확인했다. 서류 합격, 1차 면접 합격, 2차 면접 합격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취업이 게임이라면 퀘스트를 하나씩 깨는 기분이었다. 다음 단계로 이동할 때마다 쾌감도 들었다. 다음 주면 취준생 신분을 벗어날지도 모른다.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 면접 스터디에 합류했다. 1차 면접부터 같이 준비한 지원자 중에 3명이 최종면접까지 남았다. 우리는 지방에 있는 농심 공장까지 함께 갔다. 견학도 하고, 우연히 만난 직원분에게 간단히 공장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지원자들과 다를 수 있을까?’ 차별점만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최종면접에서 나의 열정을 보일 수 있을 터였다. 


면접 날 아침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몸이 축축 처졌고 옷도, 머리도, 화장도 마음에 안 들었다. 여기저기 손을 보느라 시간도 소비했다. 빨리 가야 했다. 농심은 관악구에 본사가 있어서 우리 집과도 상당히 가까웠다. 이런 좋은 조건의 회사가 또 어디 있을까. 강남이나 시청, 여의도를 가지 않아도 되고,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출퇴근이 가능하다. 문 앞부터 회사까지 20분이면 가는 곳이다. 그런데 면접시간 30분 전에 집에서 나왔다. 


아슬하게 면접장에 들어갔다. 왜 일찍 나가지 않았을까. 그날따라 버스도 늦게 왔고 면접은 보러 가기 싫었다.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안내자분들에게도 밝게 인사하지 못했다. 이게 다 면접 평가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응하지 못했다. 홀린 기분으로 면접장에 들어갔다. 



                       (출처: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70420/83955464/1)



자신감이 없었다. ‘설마 최종면접까지 가겠어?’ 했는데 정말 왔다. ‘내가 이런 회사에 들어와도 될까? 아직 많이 부족한 건 아닐까? 적응하기 어렵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들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스펙이 훨씬 좋아 보였다. 내가 했던 노력과 열정들이 남들과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무의식은 그대로 표출됐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에도, 들어가서도 자신 없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모두 같은 선에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면접은 대화다. 자연스럽게 내 경험, 성취, 포부, 생각을 표현하는 자리다.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한번 위축된 마음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다른 지원자들의 말솜씨와 기싸움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에 ‘저 정도는 되어야 합격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떨어졌다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펑펑 울었다. 왜 그랬을까 싶었다. 1차 때부터 면접 스터디도 하고, 기업분석도 끝냈고, 공장까지 다녀오지 않았던가.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다. 며칠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한 행동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의 모든 행동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다시 번호를 매겼다. 70개를 넘어 80개가 됐고, 기업의 수는 90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성이 돌아오니 면접을 준비하면서 잘못했던 것들을 복기할 수 있었다. 교육업무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것이다. 인사부서 내에서도 여러 업무가 있다. 그중 교육업무에 대해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다시 직무분석을 했다. 채용과 평가, 조직관리를 하고 싶다는 결론이 나왔다. 직무 자체가 나와 맞지 않았으니 교육포지션에 들어갔다면 오래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세부적으로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거부감이 생겼던 게 아닐까. 언제나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촉을 세우기로 했다. 이성보다 몸의 반응이 더 빨랐다. 회사의 이름만 보고 입사했다면 결국 또 후회했을 것이다. 


지원한 기업의 수가 90개가 넘었을 때, 한 회사를 만났다. 미국계 포워딩 회사였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회사였다. 회사는 광흥창역 있었고 나는 광흥창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면접을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모든 면접은 경험이 되니 일단 가보기로 했다. 


6호선 상수역 다음역이 광흥창역이었다. 건물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10층으로 올라갔다. 내부로 들어가니 사무실 공간이 매우 좁았다.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렸다. 직원분이 사장실로 안내를 해 주었다. 1차 면접이 곧 마지막 면접인 사장님 면접이었다.


사장님은 중년의 나이로 보였고 키는 작았다. 하지만 전혀 작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중저음이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이력서를 훑어보시며 하나하나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셨다. 이미 면접을 계속 봐왔던 터라 떨리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대화의 흐름을 탔다. 


대답할 때 한 가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STAR 기법이었다. 어떤 일이 발생한 상황(Situation)을 말하고, 그 상황에서 어떤 업무(Task)를 얘기하고, 행동한 것(Action)은 무엇이었는지, 결과적(Result)으로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말하는 방법이었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질문을 받으면 간단하게 결론부터 얘기했다.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이유도 덧붙였다. 사장님께서 질문했던 부분은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어 온 것들이었다. 입사 후에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보셨을 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최종면접에서 탈락한 후 매일 같이 생각한 질문이었다. 


면접장을 나올 때 느낌이 있다. ‘통했다’라는 느낌. 이 회사가 그랬다. 사장님과의 대화가 잘 통했다. 면접이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해온 경험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격식이 없지도 않게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말로 풀어내야 한다. 면접관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질문에서 유추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장 많이 검증하려고 하는 부분을 보면 어떤 것을 중요시하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면접에서는 그게 보였다. 


며칠 후 담당자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합격을 축하한다고, 언제부터 근무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조금 고민했지만 사장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이란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100개의 기업을 채우기 직전, 나는 인사담당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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