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서 Dec 09. 2019

2.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제 5 장 > 투 잡 한번 해 볼까?

"그럼 뭐부터 해야 해?"

"일단 동네 부동산부터 가보자. 괜찮은 자리가 있어야 할 텐데." 


나은이와 나는 월급쟁이다. 평일에는 서로 만나기가 힘드니 저녁마다 손품을 팔며 카톡으로 회의를 했다. 주말 낮에는 샤로수길에 있는 부동산이란 부동산은 다 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동산 문을 못 열어서 서로 떠넘겼다. “네가 물어봐.”라고 하며 시키기도 했다. 부동산 사장님과의 대화는 왜 이리 어색한지.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도 몰라서 사장님의 이야기만 2시간씩 듣다가 나오기도 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경험치가 쌓인다. 몇 번 방문하고나니 어떤 것을 확인해야할지 감이 잡혔다. 건물 주인은 어떤 분인지, 권리금은 협의할 수 있는지, 공사 기간은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권리금이라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좋은 자리에 있는 상가는 평수가 작아도 권리금이 7천만 원에서 1억이 넘어가곤 했다.


"여기 너무 비싸다. 인테리어 공사비까지 생각하면 택도 없겠어…."

"중심 거리는 포기하자, 조금 안쪽이나 뒤쪽도 괜찮지 않을까?"


몇 주를 돌아다니자, 마음에 드는 곳이 생겼다. 샤로수길의 끝자락에 큰길을 한 번 건너면 있는 상가였다. 실평수 20평, 보증금 3,000에 월세 300만 원, 권리금은 없었다. 권리금이 없다니! 바로 뒤엔 큰 교회도 있고, 내부 수리를 해서 깔끔하고 밝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얘들아, 근데 여기를 샤로수길이라고 볼 수 있나? 길을 한 번 건너버려서 상권이 뚝 끊긴 느낌인데?"

"차도 많이 다니고, 버스정류장도 상가 조금 아래쪽에 있고, 신호등도 바로 앞에 있기는 한데…. 그러게 그렇긴 하네…."

"그리고 월세가 너무 비싸. 300만 원이면 3,000원짜리 커피를 얼마나 팔아야 하는 거야, 천 개? 그럼 하루에 최소 33잔이야. 월세만."


입지와 가격이 문제였다. 위치가 마음에 들면 권리금이나 월세가 비쌌고, 가격이 마음에 들면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퇴근 후 서점에서 책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카페를 차린 이야기, 창업한 이야기의 책은 잡히는 대로 읽고, 받아 적고, 피곤해서 졸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그 때 두 가지를 배웠다.


먼저 유동인구 중요성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주말과 평일을 나누어서 마음에드는 상가가 잘 보이는 곳에 앉는다. 그리고는 어떤 연령대가 지나가는지 종이와 펜을 들고 체크를 한다. 다음은 상가 주인을 직접 만나서 최대한 월세를 깎아보는 것이다. 둘 다 지금 상황에 바로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는 유동인구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회사가 바쁜 시기였기 때문에 휴가도 낼 수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대학생인 동생이 떠올랐다. 동생에게 용돈을 주면서 말했다. 상가가 잘 보이는 곳 근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남녀 비율과 대략적인 나이대를 체크해보라고 말이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은 유용한 정보를 보내주었다.


"누나, 여기 근처에 차랑 버스는 많이 다니는데, 평일에 지나다니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어. 그리고 버스 정류장이 아래 쪽에 있어서 가게로 다시 올라오는 사람도 없고."

"그래? 알았어, 고마워. 내가 주말에도 가볼게."


동생 말이 맞았다. 지나가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주말은 편차가 심했다. 교회가 끝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긴 했지만, 교회를 등지고 서 있는 건물이라 사람들의 눈에 띄진 않았다. 첫 번째 조사가 끝나자 확실히 이 자리에 300만 원의 월세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품을 팔아보니 장단점이 보였다. 부동산 사장님께는 상가 주인과 월세 협의가 가능한지 문의해달라고 요청했다. 며칠 후 안된다고 연락이 왔다. 건물 주인인 할머니가 가격을 절대 낮출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겠다고 약속을 잡아 달라고 했다. 주인 할머니는 1층에는 상가, 2층부터는 전부 원룸인 건물의  탑층에 살고 계셨다. 


"와…. 이런 건물의 건물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나도 몰라. 몇억이 있어야 하는지…."


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쳤다. 이렇게 건물주와 얘기를 하고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책에서 배운 대로 컨셉을 잡았다. 돈은 없지만,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욕이 넘치는 젊은이 컨셉이었다. 협의가 잘 돼야 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가게를 오픈할 계획이었다. 기회는 단 한 번이다. 


“할머니, 저희가 카페를 차리려고 해요. 빵을 디저트로 팔고,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카페를 만들거에요. 평일에도 늦게까지 영업할 거니까 원룸 사는 분들도 귀가할 때 가게에 불 켜진거 보고 안심하고 올 수 있을 거에요. 저희가 예쁜 가게를 만들게요. 한 번만 기회를 주시겠어요?” 


준비한 선물도 드리고, 할머니의 손도 잡으며 설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무모한 방법이긴 했다. 어떻게든 10만 원이라도 월세를 깎아보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젓기만 하셨다. 터덜터덜 돌아가며 잘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부동산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이구…. 할머니가 못 깎겠다고 하시네요. 고생 많았을 텐데, 아쉽네요…."

"아…. 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좌절...또 좌절... 




의욕 넘치는 청년 컨셉은 실패했다. 처음으로 마음에 든 상가를 떠나보내야 했다. 아쉬웠다. 유동인구가 많진 않았어도 나름 괜찮은 위치의 상가였는데. 월세가 너무 비싸니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안될 곳이었다며 서로 위로했다. 나는 그 뒤로도 몇 번을 그 상가를 다시 보고 오기도 했다. 한 번 마음에 둔 것을 잊는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시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1단계로 돌아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부동산마다 방문해서 현장 조사를 했다. 한 달이 지나도 조건이 맞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더 없나 봐. 너무 늦었다, 집에 갈까?"

"아, 이쯤에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어? 저 부동산 우리 가본 적 있었나?"


부자 부동산. 이름부터 벌써 부자가 될 것 같은 부동산이 골목 사이에 숨어 있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간판에 불이 켜져 있었다. 우리는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 근처에 상가 나온 거 있나요?"

"네, 안녕하세요. 혹시 무슨 업종이세요?"

"카페요."


사장님은 장부를 뒤적였다. 혼잣말도 중얼거리더니, 마침 나온 물건이 있다며 보여주겠다고 했다. 위치를 불어보니 손을 들어 밖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바로 맞은편이었다. 어머, 이렇게 가까울 줄이야. 


가게는 미용실이었다. 메인 골목에서 한 골목 뒤에 있는 곳이다. 주차장 겸 골목이 있는 코너에 있어서 외부 좌석을 몇 개 두어도 될 것 같았다. 부동산 사장님은 주인아주머니와 협의하고 가능하면 좌석도 놓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가게였다. 바로 아래에 큰 마트가 있고 골목 위쪽에는 원룸이 많았다. 밤에도 사람들이 마트를 가기 위해 오가는 곳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도 사람이 많았으니, 낮에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예상이 됐다.


"얘들아, 여기다! 우리 조건에 딱 맞아."

"우리 여기로 할까?"

"흠…. 외벽은 손을 못 대기는 하겠지만, 간판을 작게 달아서 살리면 괜찮을 것 같아. 오히려 메인보다 조용한 곳에 있어서 쉬었다가 가기도 편할 것 같고."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평수는 예상보다 조금 작았다. 하지만 보증금, 권리금, 월세가 예산 안에 들어왔다. 다음 날 한 번 더 현장을 방문하고 계약했다. 도장을 찍을 땐 얼마나 떨리던지...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서툴렀다. 나중에 보니 화장실이 건물 뒤로 돌아가야 있었다. ‘밤에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게 무섭지는 않은지 직접 가봤어야 했는데…. 주인아주머니께 조명이라도 달아달라고 할걸.’이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리를 놓으려고 했던 주차장이 경사가 있었다. 테이블을 놓으면 기울어서 음료를 놓을 수가 없다는 걸 후에 알게 됐다. 


우린 서툴렀고 확인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최상의 물건을 찾았고 계약했다. 더 늦었다면 권리금이 올랐거나 고민하는 사이 다른 사람이 계약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에 발품을 팔고 현장을 돌아보면서 나름의 우선순위가 만들어졌다. 입지(유동인구), 권리금, 월세, 외부공간 활용도였다.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도 빠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부동산을 전수조사하니 각 부동산에서 장부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직접 손품 팔고 발품 팔며 돌아다니니 기회가 왔다.


도장만 찍으면 끝일 줄 알았다. 열쇠를 받을 때까지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란 것을 안 것은 한 달 후의 일이었다. 미용실 아주머니는 마지막까지 밀린 공과금을 내지 않으셨다. 원상복구 비용을 계약금에서 빼달라고 하기도 하고, LED 등의 철거비가 아깝다며 철거하지 않을 테니 그냥 쓰라고도 했다. 협상이 되지 않는 분이었다. 그 와중에 중간에서 중재해야 할 주인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두 분이 크게 싸운 적이 있었던 거다. 두 분의 감정싸움이 우리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었다.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약속한 영업종료일이 다가왔고, 실내 인테리어 공사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미용실 아주머니가 연락이 끊긴 것이다. 열쇠를 받지도 못했다. 폐업신고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얘들아,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공사 들어갈 수 있는 건가?"

"연서아 네가 미용실 아주머니랑 통화 좀 해봐, 너하고는 연락이 된다며."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연락에는 답장도 없는데, 나에게만 문자로 연락을 했다. 인테리어 공사일정이 내 말 한마디에 바뀔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아주머니의 감정을 건드릴까 조심스러웠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경청’이었다.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두 시간 동안 미용실 아주머니와 통화하며 주인아주머니와의 모든 갈등 이야기를 들었다. “아~ 네~, 정말요? 어머 세상에.” 나는 모든 종류의 리액션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 주까지 철거 진행, 업장 종료 신청 및 열쇠 양도까지. 계약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다시 통화 내용만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후부터는 원활하게 명도 처리가 진행됐다. 마지막 잔금을 치르고 열쇠를 받았을 때의 그 기쁨은 말로 할 수가 없다. 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모든 절차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절차가 잘 진행이 되고 있는지, 이상은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소통해야 한다. 결국, 사람 간의 거래이므로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 가게는 공사에 들어갔다.

작가의 이전글 1. 친구의 대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