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문장들

첫 번째 조각

by 시골쥐의 풀방구리

글은 항상 빚이었고, 글쓰기는 고단하기 짝이 없는 노동이었다.

순진했던 시절, 장학금은 공부를 잘했다고 주는 상인 줄로만 알고 수혜 사실을 마냥 자랑스러워했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와서 보니 이 장학금은 향후 내가 써내야 할 글에 대한 선수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망충하게도 박사과정에 접어들 때까지 장학금의 진짜 의미를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갚을 수 없는 큰 글빚에 매여 허덕이는 빚쟁이가 되어버렸다.

논문 진도를 묻는 지도교수의 메일은 빚 독촉과도 같았고, 지도교수와 면담일은 빚 변제일과도 같았다.

딱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매번 어떻게든 한 글자 한 글자 수명을 깎아 써내리는 쪽글로 일수마냥 갚아나가는 글빚쟁이의 삶을 살았다.


장학금만 글빚이 아니었다.

온종일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린 딸의 보채는 손짓이, 품에 파고들어 떨어지기 싫어하는 몸짓이, 머나먼 타국에 나가 공부하는 자녀들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부모의 늙어가는 얼굴이, 나보다 먼저 학위를 마치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는 남편의 등이 이자로 붙어 글빚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이 빚을 다 갚을 날이 오기는 할 것인지, 글빚을 갚아봤자 한몫을 제대로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한 독한 의심과 불안감은 어둑해질 때마다 나를 찾아왔고, 하얗게 새내던 밤은 머리 위에 하얗게 내려앉았다.



그렇게 글은 내게 고통이었다.

간신히 글빚에서 벗어난 후에도, 글은 내게 수치였다. 자랑스러울 줄 알았던 나의 글은 모자라고, 불만족스러웠다.

수년 동안 새끼라며 품에 안고 고통스럽게 키웠건만, 결국 나는 내 글을 빚 대신 던져주곤 매정히 도망쳐 나왔다.

로체스터가 다락방에 미쳐버린 아내를 가두고 마치 없는 양 지냈던 것처럼 나는 내 글을 그렇게 외면했다.

어쩌다 논문 주제가 무엇이었냐고 질문을 받아도 진심으로 기억나지 않아 당황하며 대답을 얼버무렸을 정도로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버렸다.

글만 지워진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글을 쓰며 빚을 갚던 나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가끔 다락방에 갇힌 미친년이 울부짖는 날도 있었지만, 그것은 황야의 거센 바람이 내는 소리라며 잊고 지냈다.



그랬던 내가 다시 글을 쓰겠다고 나섰으니 참 얄궂은 일이다.

하지만 산책이라지 않은가.

짐을 지고 갈 필요도, 변제일도, 독촉도 의무도, 나를 증명할 필요도 없는 산책과도 같은 글쓰기가 있다고 하니 그 길은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하면 걸어볼 법할지도 모른다.

부디 이 산책길이 소소한 기쁨으로 반짝거렸으면 좋겠다.


딸과 함께 바다에 가면 우리는 항상 바다 유리를 찾아 모으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이만한 보물도 없다며 이 작은 유리 조각들을 찾고 또 찾아 모으고 씻어서 색에 따라 늘어놓곤 사진을 찍어 보관해 둔다.

어쩌면 글빚을 갚겠다며 고통스럽게 산산이 부서졌던 내가 구르고 굴러 비록 반짝임을 잃고 약간 탁해졌을지라도 그 불투명함이 매력적인 작은 바다 유리가 되어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산책은 그 바다 유리들을 찾아 깨끗이 씻어 말려 하나하나가 가진 빛과 색을 보고 기뻐하며 모아 두고 즐거워하는 그런 산책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