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23 칠레, 산티아고
우유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는 라파즈를 거쳐 마침내 고산지대를 탈출하는 날을 맞았다. 2주간의 기나긴 사투였다. 엄마의 기침은 계속되었고, 아빠의 불면도 여전했다.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고산지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라파즈 공항, 해발 4,100m. 작은 공항에는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가 유일한 식당이었다. 남은 볼리비아 돈을 탈탈 털어 샌드위치 하나를 사자, 가족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사람이 몇인데 콩 한쪽 나눠 먹는 것도 아니고!" 잠시 변명을 하자면 30cm짜리 긴 샌드위치였고, 부모님 두 분만 드시라고 산거였다. 남편과 나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기로 합의를 하고 샌드위치 하나만 산 것이건만.....
나는 결국 달러를 깨서 인원수대로 샌드위치를 사야 했다. 그러고서도 두고두고 '자린고비 가이드'라 놀림받았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안데스 산맥을 보며 다짐했다.
즐거웠지만 힘들었고, 다신 만나지 말자, 고산지대!
<마침내, 천국>
산티아고는 천국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달랐다. 해발 540m. 공기가 폐부 깊숙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환전을 하러 나서는 길, 남편과 나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걷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어!" 걸어도 걸어도 숨이 차지 않고 몸이 가벼웠다. 지난 2주간 우리를 짓누르던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우리는 곧장 한인 타운의 유명 중국집 '다리원'으로 향했다. 해물짬뽕, 쟁반짜장, 탕수육. 고산병 때문에 늘 더부룩했던 속이 거짓말처럼 편안했다. 소화 걱정 없이 마음껏 음식을 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행복할 줄이야. 정말이지 천국이었다.
<체리와 블루베리와 소고기의 밤>
해방감에 취한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한인 마트 '아씨마트'에 들러 쌀과 어묵을 사고, 청과시장으로 향했다. 칠레에 왔으면 체리와 블루베리를 먹어야 한다! 봉지 가득 담아도 한국 돈으로 몇천 원밖에 하지 않았다.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처럼 행복했다.
숙소는 고층 아파트였다. 해가 지는 창밖 풍경을 배경으로 아빠는 소고기를 구웠다. 남아공 소와는 또 다른 부드러운 맛. 청과상에서 사온 체리와 블루베리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블루베리를 한 움큼 집어 입안 가득 우물거렸다. 가스불 위에서는 엄마의 어묵탕이 보글보글... 이토록 호화로운 순간이라니.
우리 가족은 남미에서 가장 좋았던 도시로 주저 없이 산티아고를 꼽는다. 고통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해방의 기쁨은 몇 배나 더 달콤했다. 부모님은 고산을 줄이고 산티아고 일정을 늘렸어야 했다며 못내 아쉬워하셨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쉽게도 산티아고에서의 시간은 짧았다. 내일 하루 시내를 둘러보면, 우리는 다시 아르헨티나로 떠나야 한다. 아쉬워서 더 좋았던 천국, 산티아고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