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1. 우유니, 볼리비아
드디어 우유니 데이투어의 날이 밝았다. 쏟아질 듯한 별을 보게 해달라고 그리 애타게 기도했건만, 하늘에는 구름만 잔뜩 꼈다. 영락없이 인천 영종도행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여기까지 왔는데 안 나가볼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기차들로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풍기는 ‘기차 무덤’을 스윽 둘러보고, 오늘의 본 무대인 소금사막으로 향했다.
<드디어 소금사막! 하지만 영종도를 곁들인>
우유니 소금사막은 과연 그 이름에 걸맞게 사방이 다 하얀 소금이었다. 구역에 따라 물이 말라 소금을 밟고 다닐 수 있는 지역도 있었고, 논처럼 소금물이 찰랑이는 곳도 있었다. 찰박거리는 소금물을 가르며 차를 달리는 경험은 신선했다. 먼저 가이드 아저씨가 우리를 물 없는 마른 사막으로 이끌었다. 원근감을 이용한 트릭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자, 저기 가서 서세요."
가이드가 주섬주섬 프링글스 통과 공룡 피규어를 꺼내 놓았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했다. 결과는 대성공. 프링글스 통에 갇혀 공룡에게 위협받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한두 번 해보시더니 "나머지는 너희끼리 찍으라"며 자리를 뜨셨다.
가이드 아저씨는 다양한 연출을 지시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해발 3,500m에서 딸아이를 안고 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공룡에게서 도망치는 연기를 마친 나는 GG를 쳤다.
남편과 꼬마쥐는 끝까지 남아 공룡과 용감하게 싸웠다.
나는 남편의 고산증이 도질까 살짝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괜찮을까 남편.. 여기 쿠스코보다 지대가 더 높은 곳인데...
<물 찬 우유니 사막으로 출발>
"분명 블로그에서 본 사진들은 이렇지 않았는데…"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사진은 확실히 찍혀본 사람이 잘 나오는 모양이다. 평소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는 우리 가족의 결과물들은 어설펐다. 가이드 아저씨는 친절하게 여러 포즈를 제안했지만, 우리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물 찬 곳으로 가고 싶어요."
왜 사진을 더 찍지 않는지 의아해하는 가이드를 뒤로하고, 우리는 드디어 물이 가득한 소금사막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사이 구름은 더 짙어졌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감동보다는 익숙함에 가까웠다. 아, 나 이 풍경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영종도. 먹구름 낀 우유니는 나름 장엄한 맛이 있다고 누가 그랬는가. 나는 다른 멋있음을 보고 싶었단 말이다.
본래 물이 찬 우유니에서는 거울처럼 물에 비치는 반영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는 곳인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날이 흐리니 반영도 잘 안 보인다. 슬프다.
<꼬마 기차와 황금빛 위로>
그런데 실망한 어른들과 달리, 딸아이는 이곳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발밑에서 찰박거리는 소금물이 신기했고, 가이드가 늘어놓은 알록달록한 의자들이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녀석은 의자들을 일렬로 늘어놓고는 기차라며 소리쳤다. 할아버지와 엄마를 손님으로 태우고, 자기는 기관사가 되어 한참을 놀았다. 번거롭고 귀찮은 기차였지만, 아이가 행복하니 그걸로 되었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우유니 사막이 황금색으로 물들며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구름이 여전히 걷히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불만이 없을 정도로 황홀한 풍경이다.
천지사방이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그때, 지평선에 걸린 해가 잠시 얼굴을 드러냈다. 기회는 이때다!
"여보, 나 찍어줘! 손에서 해가 에네르기파처럼 쏘아져 나가면 돼요!"
결과물은 처참했다. 에네르기파는커녕, 포즈가 어설픈 애와 사진 못 찍는 남편의 콜라보만 남았다. 게다가 동화 속 한 장면을 기대하며 딸아이를 돌려준 사진은 아동학대 신고감처럼 나왔다.
.. 꼬마쥐가 무슨 헌 인형짝마냥 휘둘리고 있지만 보이는 것과 사실은 다릅니다 재판장님.
꼬마쥐가 해달래서 저는 고산증의 위협을 무릅쓰고 온 힘을 다해 놀아주고 있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래, 우리 가족이 사진을 잘 안 찍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약은 약사에게, 사진은 사진작가에게>
그렇게 웃픈 사진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을 때, '짬타이거' 오작가를 만났다. 그는 다른 팀을 인솔해 촬영을 나온 참이었다.
고맙게도 오작가가 짬을 내어 우리 가족사진 몇 장을 찍어주었다. 날이 워낙 흐려서 큰 기대를 안 했었는데 며칠 후 받아 본 결과물은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찍은 '대환장파티' 사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사진은 이 글의 끝에 붙이겠다. 정말이지 프로는 역시 다르다. 오작가 덕분에 우리의 추억은 영종도행을 면했다.
어느덧, 소금사막을 가득 채웠던 황금빛이 분홍색으로 변해가며 해도 져버렸다.
우리는 이제 구름이 걷혀 별을 보기를 바라며 스타라이트 투어를 기다릴지, 아니면 시내로 돌아갈지 결정해야 한다.
두껍게 깔린 구름을 보아하니 오늘은 영 틀린 듯싶어 아쉽지만 여기서 우유니 사막과 안녕하기로 한다.
숙소로 돌아온 딸아이는 얼굴에 팩을 붙이고 15분 만에 잠이 들었다. 이 방법, 아주 좋은데?
흐린 세월이 지나고 나면, 좋았던 기억만 남는다고 했던가. 풍경을 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눈에 담는 것이지만, 좋은 사진 한두 장이 흐릿해진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려주기도 한다. 여행할 당시에는 사진 찍는 게 그렇게 귀찮았는데, 두고두고 가족의 기쁨이 되어주고 있다. 7년이 지나, 여행기를 다시 쓰고 있는 2026년 지금에도 사진들을 보니 그 시간들이 그립고 감사하다.
내일 우유니를 떠나 라파즈를 거쳐 내일 모레 칠레 산티아고로 이동한다.
드디어 길고도 긴 고산지대 여행이 끝을 향하고 있다.
모두 큰 탈 없이 건강해서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