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로콜리 Apr 25. 2023

이웃집 70대 부부의 점심 초대에 다녀왔습니다

일요일 늦은 오후,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초인종이 울린다는 건 이웃일 확률이 높다.  

이어폰을 꽂고 있던 남편은 종소리를 못 들었고, 초인종 반응엔 내가 먼저 알아챘지만 순간 내 몰골이 신경 쓰였다. 일요일엔 그저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기에, 씻지도 않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보다 몰골이 조금은 더 괜찮아 보이는 남편을 현관문으로 내보내버렸다. 그리고 남편이 대충 이웃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곧네 나를 부른다. "캘린더 들고, 현관으로 좀 나와봐!"  나는 엉클어진 머리를 감출 수 있는 후드재킷을 걸쳐 입고 재빠르게 현관으로 나갔다. 이웃, 에스더가 서 있었다. 


어떤 음식 좋아해요? 알레르기 있어요?


에스더는 우리 집에서 천천히 걸어도 1분 거리에 사는 이웃이다. 작년엔 그 집 밭에서 나온 감자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우리 집이 집수리를 시작하는데, 그 과정이나 금액 같은 내역을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점심 먹으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일주일 뒤, 우리는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본인 부부는 채식을 먹는데 혹시 우리 부부는 괜찮은지, 그리고 내가 음식알레르기가 있는지 이어 물어왔다. 나는 특정 음식 알레르기는 없으나 기름이 많이 들어간 것은 피하는 편이라 "라끌렛(스위스치즈: 지방이 많이 들어간 편)만 아니면 괜찮아요. 전반적으로 기름이 적은 음식을 먹는 편이에요"라고 이야기했다가 곧 내 후회했다. 왜냐면 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에스더의 구체적이고 폭풍 같은 질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 올리브 오일은 섞어도 괜찮은지?

- 코코넛 우유는 괜찮은지?

- 너트(Nuts) 종류는 괜찮은지?

- 치즈는 섞어도 괜찮은지?


상세히 물어봐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초대받는 입장인데 내가 너무 깐깐하게 구는 것 같아 미안함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세하게 물어봐주는 게 스위스 사람들이긴 하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Heavy 한 음식보다는 가벼운 음식을 먹어요"라고 한 줄로 끝나버려야겠다고 하나 배웠다. 


스위스 부부에게서 인도 음식이라니 



일주일 뒤, 우리는 약속했던 12시, 여기에 예의적으로 5분 정도 늦게 일부러 도착을 했다. 우리 집에서 도보로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이기에 집에서 신던 슬리퍼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엔 함께 먹을 레몬쿠키를 구워서 초인종을 눌렀다. 집에 들어가니 굉장히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내 코를 자극시킨다. 그리고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오늘 메뉴가... 스위스 음식은 아니구먼 (흐뭇)" 


샐러드를 시작으로 점심은 시작되었다. 샐러드 안엔 노란 민들레 꽃이 들어있었고, 곁들어 뿌릴 것으로 꿀에 절인 깨가 굉장히 많았던 것이 나에겐 새로웠다. 아주 오래전, 전에 나와 함께 여행했던 60대 여행자분이 어릴 적, 민들레로 김치도 만들어 먹고, 산에 갈 때 민들레 잎을 따서 샐러드에 넣어 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은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근데, 꽃(민들레) 무슨 맛일까? 순간 궁금하여 한입 먹어봤는데, 샐러드 소스 맛이 강해 민들레 고유의 맛은 느낄 수가 없었다. 



샐러드를 끝나고 본식이 온다. 미리 요리한 음식들이 오븐에서 주르륵 나온다. 밥이 나오더니 카레 2개, 야채 요리까지 이어서 줄줄 나온다. 도대체 이 요리들은 언제부터 요리한 것인가... 아침 7시부터 한 건가... 세상에나 음식 냄새가 너무나도 좋다. 그리고 맛은 더 좋다! 배가 불러서 더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집에 싸 가고 싶을 정도의 마음으로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영어로 바꿔줄까?


점심을 먹으며 에스더네 부부가 궁금해했던, 집수리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거의 2달 전부터 남편과 집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적으로 했던지라 같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녹음본 틀어놓듯이 이야기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집도, 이웠네 집도 단독주택이다 보니 이런 수리가 시작되면 동네에 xx이네 집이 집수리 들어간대~와 같은 이야기가 퍼지나 보다. 다들 수리를 하려는 계획이 있는지 견적은 얼마나 받고,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등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하는 것이다. 


이번 집수리 경우,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게다가 기술적인 설명을 덧붙여 (남편의 잘 아는 분야) 남편이 에스더네 부부에게 설명해 주는 거 기에 표준독일어 아닌, 스위스 독일어로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부분인데 내가 참여를 해서 우리는 모두 표준 독일어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일반 대화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기술단어들이 포함되어 있고, 대화 자체가 사실 쉬운 편은 아니라 듣는 것만 해도 상당한 에너지가 나에겐 필요했다. 그래서 그날은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날이었다. 한데 처음에 오자마자 내가 말이 굉장히 많다가 주제가 바뀐 이후, 조용해진 나를 보니 내가 대화에 참여를 하고 싶은데, 독일어가 안 돼 참여를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나 보다. 


"걱정돼서 물어보는 건데, 힘들면 우리가 영어로 대화를 바꿔도 괜찮아." 라고 물어봐 주더라.

하지만 집수리 내용은 영어로 하나 한국어로 하나..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냥 독일어로 해도 괜찮다고 했다. 나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내 독일어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모르니 으레 이런것들을 물어보곤 하는데, 나에겐 자주 있는 일이라 크게 감정적으로 동요되진 않는다. 


이후, 집수리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우리의 대화 주제가 광범위하게 퍼진다. 그분들이 직업이나 젊었을 시절, 공부하셨던 분야 이야기를 들으니 뭔지 대학시절 교수님에게 강의를 듣는 기분같은 기분이 지속된다. 게다가 그분들이 인도에서 사신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아시아 사람이라 아시아 쪽으로 테마를 돌리신 진 모르겠지만 자꾸 아시아 경제 상황에 대해 (중국, 인도의 빈부격차 그리고 아시아국가의 경제성장률 상황 등등) 이야기를 하시기에 나는 한 동안 입을 열지 않고 듣기에만 집중했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깊게 빠지는 주제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헌데 내가 인도 경제 사정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남편도 나도 그냥 "그렇구나..."모드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더라.  하지만 내가 내가 너무 말을 안 하니 걱정이 되셨는지, 자꾸 영어로 바꿔줄까 여쭤보시길래 내가 한마디 했다. 


"두 분이 한국어로 이야기하셨더라도, 저는 똑같았을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잘 알아들으셨으리라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도대체 왜 먼저 연락을 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