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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키 Nov 30. 2017

모든것은 1.5kg의 털뭉치에서부터-

보리와의 만남. 언젠가 너로 인해 울게 될 것을 알지만. 

고백하건데 난 정말이지 강아지에 관심이 없었다. 


    "고양이가 도도하고 우아해서 좋아~"라며 강아지와 고양이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고양이를 고르던 나. 개라고 해봤자 삽살개, 진돗개, 푸들, 차우차우 정도로 흔하지 않은 견종 밖에 몰랐다. 그도 그럴게 주변에 동물을 반려하는 친구나 가정이 없었거니와 궁금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고작 1년 반 전의 일이다.



굳이 왜?


    그래서 남자친구가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시큰둥했다. "굳이 왜?"라고 되물었지만 그 짧은 질문에는 지금 잘 살고있는데 '왜 굳이' 몇 십 만원의 분양비와 접종비, 앞으로 들 병원비, 사료비, 간식비등의 부담을 짊어지려고 하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개 없이도 잘만 살았고 심지어 가족도 반대한다는데 왜 굳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견종을 고르고 모색을고르고 어디서 어떻게 얼마에 분양 받을지 고민할 때에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느꼈는지 남자친구도 이미 포메라니안(하루, )을 반려하던 사촌동생과 주로 상의했다. 가끔씩 "이게 크림 푸들이고 이게 초코 푸들인데 뭐가 더 예쁠까?"라고했을 때 속으로 '푸들이 뭐가 예쁘다는거야?'라며 "털이 밝은게 사진이 예쁘게 나올 것 같아"라고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결국 내가 제일 별로라고 했던 어두운 모색의 푸들을 데려왔다)


    하지만 이름 짓는건 그래도 이왕 짓는거좀 잘 지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군밤], [깐밤], [말랭이], [홍시], [단감] 등을 제안했다. 왜 죄다 먹을거리였는지는 모르겠다. 배가 고팠나?

    하지만 안그래도 입양을 반대하시는 남자친구부모님이 절대권력을 행사하시어 ‘보리’라고 이미 이름을 지으셨다. 그 강아지는 지금까지도 ‘보리’라는가장 흔하고 촌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종종 강아지 이름을 말할 때 제가 지은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저 그거보다는 센스 있는 사람이에요-“ 라고.)




1.5kg의 생명체의 사랑스러움


    보리를 만난건 남자친구가 분양을 받고서 이것저것 접종을 마치고 드디어 2016년 6월 5일. 집 앞으로 찾아온 남자친구의 차 문을 열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건 내 팔뚝보다 짧은 갈색 털뭉치. 그 작은 털뭉치는 나를 보고는 나에게 오겠다며 남자친구 손에서 발버둥을 쳤는데, 사실 이 때의 기억은 남자친구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 당시의 난 이미 문을 열면서 넋이 나가버렸고 남아있는 기억은 그저 너무 사랑스럽다는 감정 뿐이였으니.


    차에 타서 앉자 남자친구는 보리를 내 무릎 위에 내려줬고 보리는 열심히 내 냄새를 맡고, 손을 핥고(사실 이 때는 좀 더럽다고 느껴졌다)기뻐하며 내 두 다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한참동안 날 추종하다가(!) 다리 위에서 잠들었다. 



        난 이전까지 강아지를 이렇게 가까이서 접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안아본 적도 없고 다리 위에서 강아지를 재우는건 더더욱 처음이다. 1.5kg라는 텍스트상의 숫자는 너무 작았는데 다리에서 느껴지는 무게는 훨씬 무거웠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게 그대로 느껴졌고 뜨끈뜨끈한 체온이 느껴졌다. 


    남자친구를 향해 ‘너무 귀엽잖아!!!!!’라며 입모양만 뻐끔거리며 어찌해야 할 줄도 모른채 손을 휘젓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든 이 순간의 넘치는 감동을 남겨두고 싶었다. 차 뒷자리에 DSLR 카메라가 있었지만 보리가 혹시라도 깰까 움직이지도 못하고 겨우 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에 보리는 결국 깼다




얼마나 힘을 줘서 들어야 할지 몰라 조심스러웠고,

안아드는 자세를 찾지 못해 꽤오래 버벅였다.

계속 멈췄다 걸었다 하는게 그냥 걷는것보다 훨씬 체력소모가 크다는걸 깨달았다.

생각보다 내가 걷는 길이 위험하고 지저분하다는걸 느꼈다.



    순식간에 보리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려왔고 도무지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리는 내 삶으로 들어왔고,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 없는 농반진반 이유가 되었지만 가끔은 무섭기도 하다. 이렇게 사랑하는 너를(남자친구 말고 보리를) 어떤 이유로 더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 상실감을 그때의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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