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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키 Jan 08. 2024

이상형요? 지덕체 고루 갖춘 사람요.

20대 연애를 정산해보자

최근 개인 작업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20대에 연애를 거의 쉬지 않았다는 것. 나도 몰랐는데 계산해 보니 10년 중 7년 반을 세 사람과 연애하며 보냈더라.


최근 다시 나에게 집중하는 시기를 가지며 이전의 관계들을 돌아보고 있다. 난 어떤 사람을 만났더라? 어떤 사람을 좋아했더라? 기억을 살펴본 결과,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4년을 만난 그들은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



7년 반을 함께한 그들의 공통점 


1. 재미

그들은 모두 재미있고 티키타카가 잘 됐다. 가치관도 비슷하고 대화도 잘 통했다. 모든 것에 동일한 의견을 가지진 않았지만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적어도 "넌 왜그래?"라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관계를 위해 재미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게끔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비슷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여러모로 재미는 연인 관계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이다. 



2. 영리함(지식이든 지혜든)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그들은 모두 영리했다. 지식이 많은 이도 있었고, 지혜로운 사람도 있었고, 때로는 지혜와 지식 모두 겸비한 사람도 있었다. 다만 그 지식과 지혜의 분야가 나와 완전히 동일한 분야는 아니었는데, 최근 읽은 책에 따르면 그 이유가 '자기평가 유지 이론'과 관계있는 것 같다. 


'자기평가 유지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영역에서 가까운 사람이 자신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이면 큰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이 잘되길 바라면서도 (내가 잘하고 싶은 분야에서) 나보다 더 잘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나는 내가 왜 힘들까, 마크 R. 리어리, R193p)


생각해보면 같은 분야의 사람을 만나면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 배우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을 법 한데 그러고 싶지 않은걸 보면 나는 자기평가 유지 이론이 많이 적용되는 사람인 것 같다. 이런 마음을 좀 내려놓을 수 있다면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하지만 역시 연인 관계에서는 서로 뇌를 빼고 쉴 수 있는 관계가 되길 바라기 때문에 굳이 내가 공부해야 하는 영역에 몸담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진 않다. 공과 사를 구분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3. 연상 

그렇다. 그들은 모두 연상이었다. 아마 우리집 배경에 의한 영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울지 않는 캔디처럼 독립적으로 살다보니 애인에게만큼은 의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다는 걸 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마음의 방이 넓은 사람을 찾게 됐고, 그들은 십중팔구 연상이었다. (물론 주변에 연하와 동갑 남성들이 모두 철딱서니 없는 애였던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


근데 이렇게 연상들을 만나다보니 이젠 좀 나이대를 나와 얼추 비슷하게 맞추고 싶어진다. 서른 가까이 나이를 먹었으면 그렇게 애같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고(최근 내 편견을 깨주는 분들을 많이 봤다), 내가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상대방의 부족함을 좀 더 수용할 수 있게된 것도 있을 것이다.




"이상형이 뭐야?"


최근 주변에서 소개팅을 시켜주기 위해 물어보는 질문이다. 이전엔 주로 위 세 가지를 이야기 했는데 요즘은 짧고 깔끔하게 "지덕체를 갖춘 사람"이라고 말한다. 해석에 여지가 있겠지만 내 뜻은 이렇다.


지 : 지혜로운 사람. 지식이 많은 것도 좋지만, 지식만 많은 사람은 영 안맞더라.

덕 : 인성은 필수! 타인과 선의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

체 :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못생겨도 되고 살쪄도 되지만 건강에는 이상없을 정도로는 자기관리 해야 함.


이렇게 말하면 대체로 "눈 높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느정도 동의하긴 하지만 주변을 둘러봤을 때 세상에 없는 사람을 찾는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말하는 '지덕체를 갖춘 사람'이 어떻게 전달되는걸까? 내가 의도한대로 전달된게 맞나 싶다. 혹시 공유 피지컬에 서울대를 졸업하고 매달 봉사활동을 가는 사람을 상상하는걸까? 자기 몫의 벌이는 하면서 관심있는 공익단체 한두 곳에 정기 기부하고 자기계발에 노력하는 사람 정도면 되는데 말이지.


이상형이라고 말은 하지만 이상형은 내가 기대하는 조건을 100% 갖춘 궁극적인 모습이다. 현실에 그런게 가능하겠냐. 60%, 70%만 돼도 훌륭하다. 중요한건 이 기준을 가지고 '정말 아닌 사람'을 구별할 수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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