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참 아이러니한 존재다.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타인의 존재,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꼭 필요하다. 좋든 싫든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직간접적으로 타인과 얽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연결은 누군가가 땀 흘려 생산한 음식이나 옷 혹은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매우 느슨한 것에서부터 신체적, 정신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부분들을 제공해 주는 필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정도의 차이일 뿐 사람은 타인과의 얽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최근은 아니고 이러한 추세는 2010년대에 들어 유독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벽이 생기고 친밀감을 쌓지 못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사람들끼리 서로 잘 지내는 집단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집단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직장에서 같은 부서에 있고, 같은 공간을 사용하면서 매일 얼굴을 보는 환경인데도 애써 거리를 두고, 함께 밥 먹는 것조차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사이가 안 좋거나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 사실 밥 먹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나 간단한 스몰토크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생존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다. 죽을 때까지 볼 사이가 아니라면 골치 아프게 인간관계 맺지 않고, 가족이나 연인 같은 가까운 소수하고만 잘 지내면 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타인과 느슨하고 편안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어떤 능력의 부재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건 생각보다 가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 능력이란 무엇일까? 별로 거창한 능력이 아니다. 그저 '사회적 수준에서' 타인과 교류하고 관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수준의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들로 인해 이러한 능력이 흐릿해지고 위기에 처하고 있다. 사회적 수준에서 교류한다는 것은 연애나 베프처럼 일대일로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굳이 순서를 이야기하자면, 특정한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 먼저 발달하고, 사회적으로 느슨한 관계를 맺는 능력은 그 이후에 발달한다. 처음부터 사회적 관계가 가능한 사람은 없다. 아주 어릴 적에는 보통 엄마나 아빠 혹은 제일 좋아하는 어른과 깊이 관계하고 더 붙어있으려고 한다. 그러다 자라면서 그 사람 외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보다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나의 체감으로는, 대략 2010년 이후부터 사람들끼리 서로를 불편해하는 경향이 생겨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점차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어떤 공동체에서는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색한 사람과 우연히 같은 길을 가거나,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상황에서 애써 그 상황을 피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잠시의 그 서먹함과 어색함을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에도 나와 친하지 않은, 낯선 타인이 주는 불편한 공기를 마주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만큼 가볍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단순한 인간적 관계조차 감당하기 버겁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왜 타인이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아마 사회학 분야에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과도한 경쟁 사회, 성과 위주의 교육, 어린 시절 부모의 방임으로 인한 대인관계적 미숙함, 혼자가 더 편한 개인의 성향 등등.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바로 개인의 '파편화' 혹은 '홀로 됨'이 보다 쉬워진 사회 환경에 있다. 대략 2010년 이전부터 스마트폰이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기존 휴대전화와 섞이면서 사용되다가 2010년도 중반 즈음부터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사용하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과 더 어색함을 느끼고, 대화 나누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일들이 심해지게 된 때였다. 그 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스마트폰이 홀로 됨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스마트폰은 다른 사람의 존재가 없이도 무언가와 함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나아가 내가 선호하고 불편해하지 않는 콘텐츠들만 선택하여 함께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다른 인간과의 관계는 전적으로 통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콘텐츠는 다르다. 홀로 있어도 아쉽지 않게 해 주고, 홀로 있지만 즐겁게 해 주며, 그 홀로 됨을 부추겨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타인과 교류하려면 감각을 열어야 한다. 눈과 귀를 내가 원하는 것에만 일방적으로 집중하는 것과 달리, 미묘하게 변화하는 타인의 반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능력이 마비될수록 다른 사람은 더욱 불편한 존재가 된다. 가끔 혼자 있고 싶은 것은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홀로 된 상태가 더 익숙하고, 주변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남과 같이 있어도 자기만의 세상에 있는 것과 같다. 몇 년 전 어떤 방송에서 연애를 포기하고 비혼으로 살겠다고 이야기하는 20대 남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 모두 혼자 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 세상에는 재미있는 콘텐츠와 즐길 거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들었다. 세상의 재미있는 것들이 관계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감각을 즐겁게 해주는 볼거리와 인간관계는 질적으로 같지 않으며, 서로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은 물리적 생존뿐 아니라 심리적인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했다. 요즈음에는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가 '사람한테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해 보면 이 말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고 기이한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경험으로 인해 마음을 여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사람한테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사람에게 의존하고 싶어 한다. 그들도 의존할 능력이 있으며, 반대로 누군가의 의존을 받아줄 능력이 있다. 의존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인간의 중요한 사회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결함 있는 사람이다. 결국, 사람이 불편한 사람들도 이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장애물에 의해서 가려졌을 뿐이다. 과거의 상처이든 혼자됨을 부추기는 환경이든 간에 이제 그것을 걷어내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