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에 봄이의 돌을 맞아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직후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스튜디오가 한동안 문을 닫아 수정 작업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사진을 찍은 지 거의 석 달만에야 가족사진 액자를 받을 수 있었다.
현관 중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벽에 우리 부부의 웨딩 사진과 사랑이의 돌 때 찍은 세 식구의 가족사진이걸려있다. 그 옆으로 새 가족사진을 걸었다. 지난 일 년 내내 가족사진 속에 봄이가 없어서 괜히 마음이 좀 그랬는데, 봄이까지 나온 사진을 걸어두니 이제야 진짜 우리가 네 식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 전,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나의 가족에게 당시에도 삼십만 원이 훌쩍 넘던 가족사진 촬영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이벤트였다. 가족사진은 그저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벽에나 걸려있는 것으로 여기던때였다. 그러다 내가 취업을 하여경제적으로 자립을 하면서 문득 우리 집에도 가족사진이한 장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나, 동생 이렇게 평생을 함께 산 우리 다섯 명이 모두 함께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이 없다는 것이 좀 슬펐기 때문이었다.
직장생활을 한 지 꼭 일 년쯤 되던 겨울날, 엄마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신 때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딸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무척이나 흐뭇해하며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말씀드려보라고 하셨다. 사진 찍는 일에 익숙지 않은 할아버지께서도 내 뜻을 들으시고는 언제 손녀가 이렇게 컸나 싶은 대견한 마음이 드셨는지 흔쾌히 동의해주셨다.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아해 주셨다.
이른 아침부터 할머니는 곱게 한복을 입으시고, 할아버지는 가장 깨끗한 정장을 꺼내 입으셨다. 중절모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함께 엄마 친구분이 운영하시는 집 근처 사진관으로 갔다. 처음 가족사진을 찍는 우리와 꽤 잘 어울리는,스튜디오가 아닌, 사진관이었다.
우리 다섯 명은 사진사분이 정해준 대로 앉고 서서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과 포즈를 취했다. 요즘 스타일은 자연스럽게 찍는 게 대세이지만, 고작 10년 전쯤인 그때만 해도 가족사진의 정석이라 불리는 포즈와 각도가 있었다. 물론 그때에도 자연스럽게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찍는 경우도 있었지만, 우린 70대 후반이신 할아버지, 할머니 연세를 생각해서 최대한 정석대로 찍었다.
얼마 후 집에 도착한 가족사진 액자는 우리 집 벽에 걸기에 너무나 컸다. 엄마 친구분께서 우리를 위한다고 사진관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액자로 맞춰주신 건지, 아니면 우리 집이 너무나 작은 건지, 액자를 걸자 한쪽 벽면의 삼분의 일이 다 차 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그 사진을 참 좋아하셨다. 그 사진이 할아버지와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이었다.
2년 전, 한 해의 마지막 날에 할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고, 당시에 나는 둘째의 만삭 때라 할아버지 가시는 길 어디도 배웅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별할 줄 알았더라면 할아버지와 함께 더 많은 가족사진을 찍을 걸. 늘 후회는 한 걸음 늦다.
그래도 한 장의 가족사진이 남아 있어서, 친정집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큰 그 사진이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친정에 갈 때마다 그 사진을 보며 할아버지를, 또 어색했지만 할아버지 어깨에 처음으로 손을 올려 보았던 그날을 추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결혼 5년 차,
어쩌다 보니 지난 5년 동안 매년 이벤트가 있었고 덕분에 우리 집에는 다섯 개의 가족사진이 생겼다.
전혀 다른 세계를 살던 남자와 여자가 평생을 함께 할 가족이 되었음을 공표했던 결혼식 사진,
뱃속에 첫째를 품고 이제는 둘이 아닌 셋이 되었음을 기념했던 만삭 사진,
건강하게 태어나 잘 자란 첫째의 돌을 기념하며 세 식구가 함께 찍은 첫 번째 가족사진,
둘째를 뱃속에 품고 이제는 둘도, 셋도 아닌 넷이 되었음을 기록한 만삭 사진,
둘째의 돌을 맞아 우리 네 식구가 모두 함께 찍은 두 번째 가족사진까지.
결과물은 다 만족스러웠지만 그 사진들을 찍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진 찍는 것을 어색해하는 신랑과의 웨딩촬영은 사실상 나의 원맨쇼에 가까웠고, 첫째의 만삭촬영은 셀프로 해본다고 덤볐다가 준비하는데 진이 다 빠져 정작 사진은 몇 장 남기지도 못했다. 첫째의 돌맞이 가족사진은 아이의 컨디션을 맞추느라 예약을 몇 번이나 새로 잡았는지, 본 촬영 때도 아이 기분을 좋게 하려고 갖은 애교를 다 부렸다. 둘째 만삭 촬영은 무료촬영 이벤트가 있어서 준비 없이 갔는데 무거운 몸으로 세상 신나게 뛰어다니는 20개월 첫째를 붙잡고 찍느라 혼이 나갔었다. 마지막 가족사진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둘째를 웃게 하려고 나와 신랑, 첫째까지 고군분투했었다.
하지만 참 신기한 것은 인화된 사진 속 우리들은 하나같이 행복하고 따뜻한 미소를 품고 있다는것이다. 물론 사진을 찍어주신 분이 포착을 잘하신 것이겠지만, 사진 속 우리를 보면 힘든 일도 잠시 잊게 되고 덩달아 미소 짓게 된다.
다섯 장의 다른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을 보고 있으면 매년 다른 모습의 가족이 되어 가면서 서로에게 서로를 기대고 맞추며 살아온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쉽지 않은 날들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감사한 날들이다.
앞으로 최소한 아이들의 결혼 전까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매년 연말에는 시간을 내어 가족사진을 찍어보려 한다. 그 사진들에는 한해 한해 지날수록 두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길 것이고, 나와 신랑이 한 살 두 살 세월을 입어가는 모습이 빠짐없이 남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우리의 세월이 차곡차곡 채워진 사진들을 보며, 우리의 시간들이 한순간도 그냥 지나간 것이 아니었음을 아이들과 함께 추억하고 싶다. 또 그렇게 매년 달라질 가족사진을 통해 아이들에게 저희들의 시간이 쌓여가는모습과 엄마 아빠의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