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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21. 2024

일 년 간의 월간지 연재를 끝내고.

4박 5일간의 가족 여행을 다녀오니, 공군에서 보낸 택배 박스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여기서 공군은 '육군, 해군, 공군'할 때 그 공군이 맞다. 공군과의 인연은 재작년말(2022년 11월쯤)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런치에서 작가님에게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브런치 작가라면 언제나 떨리는 알림 문구가 울렸다. 솔직히 브런치에서 종종 오는 대부분의 제안이 책 서평 제안이거나 광고성 제안인 터라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제안 항목이 [출간, 연재]였다!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학교 관련 글을 열심히 연재하던 때라 '혹시?'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도 큰 기대는 큰 실망으로 이어질 테니 호흡을 가다듬고 메일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진아 작가님. 월간 공군 담당자 000입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은 <월간 공군>이라는 월간지에 책 소개 코너 연재를 제안하는 글이었다. 군 생활 경험이 (당연히) 없고 군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경험도 별로 없던 터라, 군대에서 월간지를 발행한다는 사실조차 낯설었다. 메일에는 지금까지 발행된 <월간 공군>을 전자책 형태로 볼 수 있는 사이트의 링크가 있었다. 들어가 보니 이미 오랜 시간 발간되어 온 월간지였고, 내용도 군 생활 이모저모뿐만 아니라 문화생활 전반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내가 제안받은 연재 페이지는 -한 달, 한 권-이라는 책 소개 페이지였다. 격월로 연재를 하면 된다고 했다. 분량도 많지 않았고, 책 소개라면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니 별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에는 사촌 동생과 제자들 몇이 군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그 아이들 생각도 났다. 책을 매개로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연재였지만 해보기로 했다.


2023년 일 년 동안 짝수달 연재를 맡았다. 연재는 격월이었지만 '어떤 책을 소개하면 좋을까' 매달 고민했다. 담당자분께서는 군인들이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거나 신간 도서들이면 좋겠다고 하셨다. 독서가 부담되지 않는 책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고전 작품들은 선정도서 목록에서 제외하게 됐다. 생각할 거리가 있거나 마음의 울림이 있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흥미로운 책이면 좋겠다 생각하니 비문학보다는 소설이나 에세이에 집중하게 됐다. 한 해를 시작하는 2월, 봄이 무르익은 4월, 여름이 시작되는 6월, 한 해의 절반을 지난 8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연말 분위기가 가득한 12월, 각 월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었다.


책을 고르고 원고를 쓰면서 쉽게 읽히는 원고를 쓰려고 애썼다. 책을 소개하는 글은, 그 책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글이지 나의 필력을 내세우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 어려운 서평이나 비평 느낌의 글보다는 친근하게 읽히는 독후감 같은 글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 소개라는, 어쩌면 따분하게 느껴질 코너를 부드럽게 이어가고 싶었다. '제가 이 책을 읽어봤는데, 이런 점이 참 좋았어요. 당신도 이 책을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정도의 느낌만 전해진다면 내 몫을 다한 거라 여겼다. 책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하기보다는, 책을 통해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부드러운 표현으로 다듬어 썼다.


일 년 동안 짝수달 원고 게재를 위해, 홀수달 10일 경이면 원고를 보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지금껏 내 삶과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던 '공군'이라는 단어와 다정한 마음을 나누었다. 지난 일 년 동안은 공군 관련 기사만 나와도, 길에서 공군 군복을 입은 군인들만 봐도 혼자 괜히 애틋한 마음이 되곤 했다. 글로 이어진다는 건 참 신비로운 일임을 또 한 번 느낀 해였다.


12월 연재를 끝으로 <월간 공군>과의 인연도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공군에서 보내준 택배 박스에는 수제 쿠키 한 박스와 공군 다이어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진아 작가님'으로 시작하는 메시지도. 매달 소개할 책을 고민하고 초고를 쓰고 여러 번 다듬어 원고를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더 좋은 책은 없었을까, 혹시라도 책의 의미를 왜곡해서 소개하지는 않았을까. 더 따뜻한 글을 쓸 수는 없었을까, 단 한 분이라도 내가 쓴 원고를 읽고 그 책을 읽어보았을까, 그 책이 그분께는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출간을 비롯하여 공개된 곳에 나의 글이 남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글이 남는다는 건 사진이 남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외모가 공개되는 것과 달리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니까. 훨씬 더 두렵고 가끔은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꾸 이곳저곳에 내면의 흔적을 단어로 엮어 남기는 이유는 뭘까. 지금처럼 연재가 끝났을 때 혹은 출간을 한 뒤에,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 이유는.


아마도 두려움을 극복하며 글을 써내고 누군가에 보이는 일을 반복하면서 내 삶도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수도 있고.


앞으로도 어디서든 어떻게든 글로 많은 분들과 만나기를 소망한다. 하나의 연재는 끝났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브런치라는 공간이 있으니. 이곳에서 더 많은 글로 더 많은 분들과 이어지고 함께 하기를.  


*월간 공군에 소개해드렸던 책 관련 글도 순서대로 업로드해드리겠습니다. 이미 공개된 글이지만 브런치 독자분들과도 다시 한 번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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