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Mar 14. 2024

아이들이 사라지는 세상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한 해 휴직을 했다. 영유아 시기를 잘 버티던 엄마들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퇴사를 결심한다는 말을 실감할 만큼, 아이는 금세 하교를 한다. 8시 20분에 집에서 나가 빨리 마치는 날은 12시 20분, 늦게 마치는 날도 1시 20분이면 집으로 돌아오니. (다음 주부터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지만, 그래도 2시-3시면 하교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돌봄 교실도 있고 각종 학원도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부부 중 한 사람이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는 일정이다.


우리 집도 맞벌이 부부이자 다자녀 가정에 해당하므로(2024년부터 두 자녀도 다자녀에 해당한다) 돌봄 교실에 보내려면 충분히 보낼 수 있었다. 태권도나 줄넘기 학원(요즘은 줄넘기도 학원에서 배운다), 음악이나 미술 학원 등에도 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직을 결심한 것은 아이에게 안정감과 충분한 휴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신 경제적 자유를 잃었다.)


아이가 입학한 지 2주가 되었다. 아이는 매일 하교와 동시에 “엄마! 가방!” 하며 가방을 던지고는 놀이터로 달린다. 어제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놀았다. 유치원 생활과 달리 4-5시간의 수업 내내 거의 앉아 있다 보니, 학교 후에 마음껏 달리고 노는 시간이 더 간절한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매일 오후 서너 시간 동안 공원을 걷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봄바람을 맞고, 친한 엄마들과 수다를 떨며 아이의 놀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경력은 단절되었고, 내 일정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으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등의 취미 생활도 거의 누릴 수 없지만, 그게 불만스럽지 않을 만큼 아이는 학교에도 잘 적응하고 뿌듯할 정도로 잘 놀고 있다.     


“아니, 근데 정말 놀이터에 우리밖에 없네요?”     


요 며칠 날씨가 좋은 덕에 놀이터에서 내내 시간을 보냈는데, 문득 놀이터에서 노는 게 우리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집과 첫째의 어린이집 시절부터 친구인 네 집 아이들을 포함한 ‘다섯 집의 아이들’이다) 몇 시간을 노는 데 우리 다섯 집 아이들을 제외한 어떤 아이들도 놀이터에 나오지 않았다. 지난주까지는 추위 때문에 그랬다 치더라도, 어제오늘은 날씨도 너무 좋은 봄날이었는데.

    

“그러게, 방과 후 수업도 다음 주부터 시작인데 다들 어디 갔죠?”

“진짜 다 학원에 갔을까요? 아님 돌봄 교실에 있을까요?”

“와, 정말 우리 애들밖에 없다니.”     


정말 초등 1학년부터 모두 사교육을 받으러 간 것인지, 부모의 맞벌이로 돌봄 교실에 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이 너무 없는 놀이터는 봐도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그런 문제로 아이들이 안 보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진짜 아이들이 줄긴 주는 것 같아요. 이제 피부로 확 느껴지네요.”

“그러게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이 시기 이 시간의 놀이터는 왁자지껄 했는걸요.”

“하긴 초등학교 학급 수도 눈에 띄게 줄고 있으니……. 이 동네도 이렇게 아이가 없다면 진짜 아이들이 줄어들긴 줄어드나 봐요.”

“생각해 보면 첫째 국공립어린이집 보낼 땐 대기 60번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대기도 거의 없다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이번에 00 어린이집도 문을 닫았고, 유치원들도 거의 다 미달인 것 같더라고요."

     

 내가 사는 동네는 대도시의 외곽지역에 조성된 신도시이다. 대부분의 신도시가 그렇듯 영유아에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을 키우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외지인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아파트 대단지가 초등학교를 둘러 세워져 있으며, 편의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공원도 매우 많다. 나도 첫째 출산 직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이들의 육아를 위해서 여기를 선택했을 만큼 아이 키우기에 좋은 곳이다. 지금 우리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도시 전체에서 손꼽히는 과밀학급이었을 만큼, 이곳은 아이들이 많은 동네였다.


이젠 그것도 다 옛말이 되었다. 첫째가 입학하면서 학급은 지난해보다 한 학급이 줄었다. (올해 2월 졸업을 했던 6학년과 비교하면 3 학급이나 줄었다.) 학급 수만 준 것이 아니라, 한 반 인원수가 24-25명이니 과밀학급이라는 타이틀도 더는 달 수 없게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학교 측에서 동사무소를 통해 내년도 입학생을 미리 통계 내 본 결과, 또 한 학급을 줄여야 할 만큼 입학생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대로 4-5년쯤 지속되면, 우리 첫째가 6학년이 되었을 때 1학년으로 입학하는 학생이 한 반이 채 안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그저 먼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10대) 아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아이가 줄어드는 일은 향후 수십 년 후의 일일 거라고 착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더는 착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정말로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피부로 느껴질 만큼, 아이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던 고등학교도 올해 신입생을 한 반 줄여서 받았다고 한다. 근처 학교 중에는 두 학급 이상을 줄인 학교도 있다. 지금부터 향후 5-6년 간 순차적으로 학급을 줄여나가면서 교원 수를 조정해야 할 만큼 인구 절벽이 다가오고 있다. 물론 학군이 좋다고 소문난 지역은 여전히 과밀학급이고, 학급을 증설해야 할 만큼 아이들이 모인다고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 지역의 이야기일 뿐이다. 절대다수의 지역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미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사회는 두렵다. 이 두려움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닌, 실질적인 공포이다. 두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어떨지 가늠할 수 없다. 경쟁이 덜할 것도 같지만, 적은 수의 아이들이 벌일 경쟁은 더욱 치열할 것도 같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면, 노동인구는 줄어드는데 노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니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부양 부담도 급증할 것이다. 사실 그렇게 먼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내 아이가 사는 세상에서 점점 ‘사람’이 사라진다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우니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끝없이 울리던 놀이터가 그립다. 우리 아이가 놀이터를 독차지하는 것보다, 놀이터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전에 모르던 질서를 배워 함께 노는 기쁨을 알아가는 것이 더 귀한 일 같다. 여러모로, 아이들이 사라지는 세상은 참 적막하고 쓸쓸한 세상인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째의 입학을 앞두고. 학부모가 되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