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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01. 2024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잘 지내고 있어요.

To. 밀라노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저의 선량 작가님!

작가님의 지난 편지의 시작은 이탈리아 말이었지요. 최근에 <라틴어 수업>(한동일)을 다시 읽고 있던 중이었는데 아주 비슷한 맥락의 라틴어 인사말을 발견했답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이 말은 로마인들이 편지에 쓰던 인사말이었다고 해요. 해석하면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입니다.(찰떡같은 발견이지요?) 내가 안녕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편지를 받을 당신의 안녕을 먼저 염려하고 묻는 인사말이 참 따스합니다. 작가님이 제게 건네 주신 인사말, ’ 친애하는 나의 친구에게. 안녕, 잘 지내니?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 역시 따스했어요. 작가님의 안녕보다 제 안녕을 먼저 물어주시고 빌어주시니 어쩐지 조금 더 안녕한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이 커집니다.


작가님과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제가 쓴 모든 편지에는 우울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지요. 그리하여 이번 편지에도 제 우울의 안부를 전해야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우울이 마치 반려 대상처럼 느껴지네요. 반려 우울?)


제 우울은 요즘 아주 안녕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단 운동량과 시간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렸어요.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마음이 좀 수월해졌습니다. 생각할 틈도 많이 사라졌고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날들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작가님은 지난 편지에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지요. 저는 요즘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제와 새삼 다시 보게 되는, 저와 깊고 진한 인연으로 닿아있는 사람들이요.


집안에서 장녀로 자란 저는 태생적인 콤플렉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장녀 콤플렉스인데요. 덕분에 책임감이 무척 강한 터라 조직에서 인정받는 일도 많았지만 때문에 매사에 책임감에 짓눌러 살기도 했어요.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잘해도 힘들다는 말은 못 했고, 어깨를 내어주는 일은 쉽지만 어깨를 빌리는 일은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제껏 별다른 불편 없이 살아왔어요. 하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에 주변에는 저를 따르는 동생이나 동기들이 꽤 많았고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일은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했으니까요.

최근에 저는 ‘언니들’을 많이 만납니다. 성격 탓인지, 언니들보다는 동생들과 더 가깝게 지낸 경우가 많았는데 어쩌다 보니 최근에는 언니들을 자꾸 찾게 되어요. 아마 제 안의 약해진 마음이 기댈 곳을 찾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언니들은 제 우울을 가감 없이 들어줍니다. 어깨를 내어주기도 하고 술잔을 채워주기도 해요. 먼 곳의 언니이신 작가님은 저를 위해 이렇게 편지를 써주기도 하시지요. 언니들에게 기대어 나아지고 나아가면서 오랜 시간 짊어지고 살던 책임감의 덩어리를 조금씩 떼어내는 중입니다.


언니들에게 기대는 마음과 별개로 무조건적으로 저를 믿고 지지해 주는 동생들의 마음도 자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특히나 ‘우리 언니’라는 말이 주는 힘은 대단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잘 살고 싶게 하는 주문 같은 말이랄까요. 저와 피를 나눈 친동생을 비롯해서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언니’가 하는 일이라면 일단 응원하고 보는 ‘내 동생’들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용기를 되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 제게 완벽한 날들을 주신 엄마를 떠올립니다. 엄마에게는 우울을 직접적으로 고백하지 못했어요. 작가님과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엄마도 처음으로 알게 되셨을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장녀 콤플렉스가 짙은 터라 엄마에게 우울을 고백하기가 어려웠어요. 더군다나 엄마의 지난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웠는지 아는 저로서는, 그때의 엄마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고 안정된 삶을 누리면서 감히 우울하다고 말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지요. 이 편지들을 엿보며 저의 우울을 알아차린 엄마는 굉장히 놀라고 아프셨을 거예요.


그런 엄마가 보내준 문자 한 통에 저는 오래 울지 못하던 마음에 마침표를 찍고 펑펑 울어보았답니다. 진심으로 저를 염려하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는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꼈어요. 여전히 내게는 이런 엄마가 있음에, 세상 모두가 내게서 등을 돌려도 두 팔 벌려 나를 안아줄 엄마가 있음에 모든 게 조금은 괜찮아지는 기분을 느꼈어요.


살아가는 동안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러다 보면 제게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음이 새삼 기적처럼 느껴져요. 기적의 한가운데에 서있으면서 더 큰 기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도 하게 됩니다.


작가님, 작가님께 편지를 쓰다 보면 새로운 문이 보입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에는 여전히 우울감이 남아 있어요. 그렇지만 제법 가까운 곳에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이 보이는 듯해요. 용기 내 손을 뻗으면 문고리를 잡고 딸깍, 열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야말로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네요.


항상 저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주시는 ‘나의 작가님’

작가님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잘 지냅니다.


From.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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