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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08. 2024

[26일 차]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이다.

드디어 몸에 이상신호가 켜졌다. 며칠 전부터 기미가 보였는데, 결국 오늘 아침 도저히 일어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온몸이 아팠다. 누가 나를 두들겨 패는(?) 듯한 느낌. ‘너무 열심히 놀았던 거지. 아플만하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아프다고,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고 말했더니 아이들도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내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밥을 챙길 기운이 없어서 한 시간을 더 누워있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무슨 놀이를 하는지 시끌시끌했다. 나도 약을 먹어야겠고 아이들의 아침도 더는 미룰 수 없어서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켰다.


오늘따라 집에 식빵 한쪽이 없었다. 아이들과 차를 몰고 함덕 해변으로 갔다. 김밥에 간식에 빵까지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이미 녹초가 되었지만 그대로 누울 수는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넘어가지 않는 김밥을 꾸역꾸역 먹고 편의점에서 사 온 비상약도 챙겨 먹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엄마, 우리 이제 나가 놀게! 엄마는 좀 자!“


아이들의 말이 너무 고마웠다.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며 오전 시간을 푹 쉬었지만 몸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주사라도 한 대 맞았음 싶었는데 하필 일요일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배려해 준 덕분에 푹 쉴 수 있으니 이게 어딘가 싶었다. “엄마, 나 배고파. “라는 첫째 아이의 목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키니 벌써 오후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전에 사 온 음식들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눈이 떠졌다. 아이들은 마당에 나가 노는지 집안이 고요했다. 창문을 열어보니 아이들은 마당에서 신나게 물총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다행인지. 여행을 와서 아픈 엄마 때문에 집에만 있는다고 원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저희들끼리 잘 놀아주다니. 이번 여행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훌쩍 키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전보다는 아주 조금 나아진 듯했지만 그래도 온몸 구석구석이 아팠다. 목은 침도 삼키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의 저녁은 챙겨야 하니까.(삼시 세끼는 대체 누가 정한 건지. 정말 오늘은 하루종일 뻗어있고 싶었지만 나는 엄마니까…. 또르륵…) 몸을 일으켜 저녁 준비를 했다. 때맞춰 홀딱 젖은 채로 들어온 아이들을 간단히 씻기고 저녁을 먹였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약을 먹어야 하니 나도 꾸역꾸역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저녁 먹고 나면 바로 누워야 할 것 같아.”

“그렇게나 많이 잤는데 또 졸려?”

“그러게. 또 졸리네. 엄마가 진짜 많이 아픈가 보다.”

“엄마! 엄마가 우리 걱정만 하고 엄마 몸을 안 챙기니까 그렇지. 약도 우리 것만 들고 오고! 엄마 몸을 먼저 챙겼어야지! “

“봄아… 엄마 몸을 먼저 챙겼어야 하는구나. 봄이 말에 엄마 감동…”

“엄마, 제일 중요한 건 엄마야. 그니까 아프지 마.”

“사랑아……”


아이들이 툭 건네는 말에 눈물이 찔끔 흘렀다.




아이들이 곤충 채집을 하겠다며 나간 저녁, 조금 이른 오늘의 문장을 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이다.’ 여행 기간 내내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도 했다. 내 몸과 마음을 잘 살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위기 상황에서 가장 나중으로 밀리는 것이 내 몸과 마음이었다. 특히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는 내 뜻과 다르게 그래야 하는 일이 많았다. 모든 일에서 최우선 순위에는 항상 아이들이 놓였다. 아이들 바로 다음이 나이기만 했어도 마음이 무너지는 일은 덜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들, 그리고 학교나 일. 그런 것들이 나 자신보다 항상 우선이었다.


아프기 전에 돌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만큼은 그러지 못했다.(남들에게는 그런 조언을 잘도 했다는 게 더 우습다.) 꼭 몸이 아파야, 마음이 아파야 부랴부랴 나를 살피느라 분주해졌다. 그러다 보면 최우선 순위인 아이들에게, 다른 가족들에게 예민해졌고 해야 할 일들에 한숨이 나왔다. 결국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것을, 무너진 이후에게 깨닫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오늘 여섯 살 난 딸아이가 해준 말이 마음에 깊이 와 박힌다. 사실 오늘은 몸이 너무 아파서 글이고 뭐고 그냥 자겠다고 일찌감치 마음을 먹었었는데, 딸아이의 말이 너무 귀해서 잊히기 전에 짧은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엄마가 우리 걱정만 하고 엄마 몸을 안 챙기니까 그렇지! 엄마 몸을 먼저 챙겼어야지!‘ 아이에게 혼나는 기분이 꽤 기쁘고 행복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나를 놓았던 시간에 대해 보상받은 기분이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이다. 내가 건강해야 나에게 부여된 수많은 역할도 감당할 수 있다. 내가 아프지 않아야 아이들도 잘 돌볼 수 있고, 다른 이들도 잘 챙길 수 있으며, 어떤 일도 잘 해낼 수 있다. 이건 진리다. (그러니 제발 잊지 말자..!)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굉장한 것을 채집한 모양이다. 아이들의 응원과 배려로 충분히 쉬어간 하루, 내일은 아이들의 환호 속에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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