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무엇을 더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두 아이는 약속이나 한 듯 ‘승마’를 외쳤다. 가기 전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아이들의 원대로 승마장에 갔다. 운동신경이 좋은 두 아이는 겁도 없이 신나게 말을 탔다. ‘저런 모습은 나와 정말 다르구나. 달라서 참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 근처 공원을 짧게 산책한 후, 용눈이오름에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오전에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했으니, 오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약속한 터였다. 정말 나이를 먹는 건지 산과 숲이 그렇게 좋다. 물론 아직은 산보다 바다가 조금 더 좋지만, 제주에 와서 바다는 실컷 봤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인지 출발한 지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오전 내내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용눈이오름이 가까워질수록 빗발이 거세졌다. 평소의 나였다면 차를 돌려도 몇 번을 돌렸겠지만, 이곳은 제주고 나는 여행자니까. 그냥 가보고 싶었다. 두 아이가 어려서 장대비를 맞으며 오름에 오르는 것은 어렵겠지만 빗발이 약해진다면 우산을 쓰고서라도 오르겠다 다짐한 터였다. (아이들의 동의는 없었다. 그저 나의 바람이 그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굵은 빗발을 뚫고 용눈이오름 주차장에 도착해서 이십 분쯤 더 기다렸다. 잦아드는가 싶던 빗발이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 비에 오름을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쉬운 건 나뿐이고, 아이들은 좋아했지만.)
그대로 집으로 돌아올까 하다가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제주 사는 언니에게 추천받은 드로잉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웬만하면 ‘제주다운 곳’에만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오늘은 예상하지 못한 비가 억수 같이 내리니까. 한 번쯤 제주와 관련 없는 곳에 가보아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와 타협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다행히 산길에서 내려오자 비가 그쳤고, 어렵지 않게 드로잉카페를 찾았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베어브릭 체험(곰 모형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을 하는 체험)도 가능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해보겠냐고 물었더니 고민도 없이 베어브릭 체험을 하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여태껏 아크릴 물감을 써본 적이 없었다. 물감이라고는 학창 시절에 써본 게 전부인데,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수채화 물감과 포스터물감을 쓰는 것이 다였으니.
직원분이 아크릴 물감과 다양한 사이즈의 붓을 준비해 주셨다. 물감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시작 전부터도 신이 났다. 갑작스럽게 온 비 때문에 즉흥적으로 간 곳이었는데 아이들의 들뜬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내 마음도 들떴다. 두 아이는 각자의 개성대로 색깔을 골라 색칠을 시작했다. 물감을 짜주고 잘못 칠했다는 부분을 닦아주고 마무리를 도와주느라, 아이들이 색칠하는 동안 여유를 누리겠다는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하나 칠해볼 걸 싶을 정도로 재밌었다. 아크릴 물감의 질감도 좋았고 하얀 베어브릭에 내가 고르고 칠한 색감이 입혀지는 것도 좋았다. 여행이 끝나고 아크릴 드로잉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아이들은 오늘 밤, 각자가 색칠한 베어브릭 인형을 하나씩 들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오늘의 문장을 쓴다. ’오히려 좋아!‘ 이 문장이 밈으로 유행을 한 지는 꽤 되었다. 평소에도 오히려 좋은 상황은 자주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말 그대로 매 순간이 ‘오히려 좋아’였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그토록 오르고 싶던 오름에 가기로 한 날, 갑자기 쏟아진 비에 어쩔 수 없이 경로를 변경했지만 ‘오히려 좋아!’였다. 아이들도 나도 몰입해서 두 시간을 즐겁게 보냈으니.
아무 준비 없이 바다에 뛰어든 아이들의 뒤처리는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놀았던 날을 더 진하게 기억했다. ‘오히려 좋아!’ 가기로 했던 식당이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다른 식당에서 아이들이 밥을 두 공기씩 비운 날도 있었다. ‘오히려 좋아!’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별생각 없이 방문했던 곳이 좋았던 날은 숱했고, 요트에 탔던 날은 파도가 높았던 탓에 바이킹을 덤으로(?) 탔다. ‘오히려 좋아!’
생각하기에 따라서,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나쁘다고 생각한 일은 금세 좋은 일이 되었다. 이곳에 와서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긴 덕분일 것이다. 한동안 매사에 날카롭고 가까운 이들에게 냉담하기 그지없던 나는, 이곳에서 조금 무뎌지고 (아주 조금씩) 다정을 회복하고 있다.
여행지에 와서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은 비단 내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여행지니까, 이곳에서의 기억은 가능하면 모두 좋은 기억이길 바라니까, 적어도 이곳에서까지 일상의 ‘나’와 같은 결로 모든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곳에서 얻은 에너지로 또다시 일상을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테니까. 여행에서만큼은 모두가 조금 부드러워지고 조금 너그러워지는 게 아닐까.
‘오히려 좋아!’ 생각할수록 참 좋은 말이다. 매사에 그런 마음이라면 일상도 여행처럼 기껍게 보낼 수 있을 텐데. 일상에 찌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오히려 좋아’ 대신 ‘역시나 나빠‘가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아니면 ’그럴 줄 알았어‘라든가. 예상한 대로 나쁜 결론이라는 말. 어떤 희망의 틈새도 찾아볼 수 없는 말.
문득 이곳에 오기 전 내가 자주 뱉던 말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유난히 나 자신에게 ‘네가 그럴 줄 알았어’와 ‘역시나 별로네’라는 말을 꽤 자주 한 것 같다. 내가 나를 별로라고 생각했으니, 그렇게 마음이 바닥을 쳤을 수밖에.
인생책으로 여기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120쪽).‘ 이 문장 때문에 이 책이 인생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이들에게서도 결코 빼앗을 수 없던 자유는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였다.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은 결국 그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각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어떤 환경을 맞닥뜨리더라도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일상을 여행처럼 여기며 조금은 더 부드럽고 너그러운 마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빛나는 기쁨을 찾아내어 ‘오히려 좋아!, 오히려 좋네!’라고 외칠 수 있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