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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06. 2024

[24일 차] 아이가 환대받는 곳에는 웃음이 넘친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자 슬슬 체력에 한계가 온다. 문제는 내 체력에만 한계가 오고 아이들의 체력은 무한히 충전된다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고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으며, 하루를 알차게 놀면서 점점 더 건강해지는 게 보인다. 한 달 사이에 아이들의 키도 부쩍 자란 것만 같다. 나도 여기에서는 스트레스 요인이 현저히 적고, 여러 역할 중 딱 엄마 역할 하나에만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건강해지는 게 느껴진다. 다만 나이를 속일 수 없고 아이들의 일과를 함께 소화하면서 육아를 해야 하는 데다, 읽고 쓰는 일에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다 보니 몸이 축나는 것도 느껴진다. ‘얼마 안 남았으니 좀 살살해야 할 것인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늘은 아침 아홉 시부터 함덕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제주레저축제에 다녀왔다.(나란 사람, 못 말려…)


열한 시부터 축제 시작이라 간단히 아침을 사 먹고 일찌감치 백사장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만은 물놀이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축제 행사장 한 편에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터가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오 마이 갓. 말이 물놀이터지, 대형 에어튜브에 물을 받아 놓고 가운데에 징검다리 같은 것을 설치해 놓은 것이 다였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에는 세상 그보다 재밌는 게 없어 보이는지, 언제부터 저기 들어갈 수 있냐며 성화였다.


결국 우리는 차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 준비를 마쳤다. 물놀이터 개장 전에 바다에서 몸을 좀 풀고, 모래놀이도 하다 보니 물놀이터 개장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단순한 놀이터에서 두 시간을 거뜬히 놀았다. 내가 보기엔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게 다인데, 그러다 물에 좀 빠지고 넘어지는 게 진짜 다인데 그렇게 신나 했다. 참 신기한 아이들의 세상.


물놀이터 휴식 시간에는 체험 부스에서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일일 클라이밍 체험도 했다. 그리고 다시 물놀이터 2차전에 이어 물총놀이까지. 본부에서 진행요원이 나눠주는 물총으로 신나게 놀았다. 안전요원 한 분이 대형 물총으로 아이들 전체와 맞서고, 아이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안전요원 아니 물총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쉴 새 없이 물총에 물을 채웠다. 얼마나 잘 노는지, 아이들과 함께 하던 어른들은 얼마 가지 않아 모두 나가떨어지는데 아이들 중에는 아무도 중도 이탈자가 없었다.


아이들의 집중 공격을 받은 안전요원은 본인이 더 즐기듯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아이들이 조준을 잘하지 못하다 보니 백사장을 지나가는 어른들이 물을 맞기도 했는데,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분들이 없었다. 삼십 명은 족히 되는 아이들이 모여 신나게 노는 모습을 근처 벤치에서 구경하는 어른들도 많았다. 참 오랜만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마음 놓고 지켜보았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웃고 방방 뛰는 것도.




너무 신나게 축제를 즐겼던지, 온몸이 욱신거린다. 아이들도 다리가 아프다, 팔이 아프다 우는 소리를 하더니 어제보다는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몸의 통증과 달리, 마음은 뭉근하게 따뜻해지는 밤. 오늘의 문장을 쓴다. ‘아이가 환대받는 곳에는 웃음이 넘친다.’ 오늘 축제에서는 아이들이 메인이었다. 사실 다른 쪽에는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꽤 있었지만, 다수의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희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을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즐겼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을 미워하는 이들을, 미워하는 공간들을 많이 만났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눈살 찌푸려지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으니까. 사실 그런 경우에는 아이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아이 뒤에 숨은 부모들을 일일이 찾아내 미워할 수 없으니, 모든 아이를 미워하는 쉬운 방식을 택한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우리는 모두 한 때 아이였고, 아이들은 언젠가 모두 어른이 될 텐데.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나이부터 차별과 배제를 겪게 하는 세상이 엄마로서 좀 속상하다.


나는 아이를 낳은 후,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여러 마음들을 되찾았다. 작은 것을 신기하게 보는 마음, 아무것도 아닌 일에 깔깔 웃는 마음, 놀고 또 놀아도 아쉬운 마음, 금세 친구가 되고 도움을 구할 줄 아는 마음,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가엾게 여기는 마음, 사물과 대화하는 마음, 돌멩이 하나로도 몇 시간을 거뜬히 노는 마음, 부모를 무한히 사랑하는 마음 같은 것들. 되찾았다고 해서 그 마음을 아이처럼 고스란히 누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게 된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세상이 두려운 이유다. 아이들이 내게 알려준 마음은 어른들만 사는 세상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귀한 것들이라서.


오랜만에 아이들이 한껏 환대받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그 마음에 화답하듯 정말로 신나고 재밌게 그 시간을 누렸다. 아이가 환대받는 곳에서는 웃을 일이 많았다. 원래도 잘 웃는 아이들은 더 잘 웃었고, 아이의 웃음을 잊고 살던 어른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아이의 마음이 되어 크고 환하게 웃었다. 바닷가 모래사장 가득, 아이들과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진짜 축제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환대받는 곳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이 귀하게 대접받는 곳에서 어른들도 아이처럼 크고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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