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산은(장석남)
[2024 시 쓰는 가을] 열 번째 시
나의 유산은(장석남)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주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이 드러나는
검은 징검돌 같은 걸로 하고 싶어
지금은,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듯
섭섭함의 시간이지만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밑의 묵묵한 목숨
과도한 성냄이나 기쁨이 마셨더라도
이내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처럼 솟아나와
모두들 건네주고 건네주는
징검돌의 은은한 부동
나의 유산은
출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시 필사 모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브런치에도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전 7시쯤 인스타그램을 통해 필사 모임 멤버들에게 시를 보내드려요. 그리고 종일 그분들이 저마다의 필체로 시를 필사하고 단상을 쓴 게시물들을 기다립니다. 어떤 분은 제가 시를 보내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써서 올려주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올려주시기도 해요. 같은 시를 읽고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생각을 떠올리는 글들을 읽으며, 시를 고를 때의 마음을 떠올립니다.
늦은 밤, 두 아이가 잠자리에 든 후면 저도 이곳에 시를 매개로 한 글을 씁니다. 매일 한 편의 시를 고르는 일도, 그 시를 멤버들에게 배달하는 일도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가장 품이 드는 일은 바로 이 글을 쓰는 일입니다. 저는 이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하루 종일 제가 배달한 시를 입안에서 굴려봅니다. 마음에서 매만져보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처음 시를 고를 때의 마음과 전혀 다른 마음이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첫 마음에 깊이가 더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종일 굴리고 만진 시를 놓고, 오늘도 글을 씁니다.
오늘의 시는 ‘나의 유산은(장석남)’입니다. 유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죽음이 함께 떠오릅니다. 죽음에 다다른 이가 남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것이 ’유산‘이지요. 유산은 실물 재산일 수도 있고, 남은 자가 마음에 품고 살 무형의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유산은’에서 나‘는 자신의 유산을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다고 합니다. 징검다리가 놓인 강이나 개천 등을 상상해 보세요. 그곳에 ’장마‘와 같이 큰 비가 내리면 ’징검다리‘는 잠시 몸을 감춥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 이내 다시 ’세운 무릎 상부‘같이 징검다리는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 번도 무릎의 윗부분과 징검다리의 모습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행을 읽으며 그야말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정말로 그 모습이 비슷하게 보여서요.
2연의 시작은 조금 의미심장합니다. 1연에서 ‘나’는 큰물이 덮어도 이내 제 모습을 찾는 ‘징검다리’같은 것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는데요. 2연의 시작이 ‘지금은,’이에요. 조사 ‘은’ 하나 때문에 ‘나’의 소망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듯/섭섭함의 시간‘입니다. 큰물도 이내 지나가고 징검다리는 곧 제 모습을 드러낼 테지만, ’지금은‘ ’불어난 물길‘에 제 모습을 감추고 있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유산은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다는 소망을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가 나올 텐데요.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밑의 묵묵한 목숨’에서는 ‘목숨’이 두 번 나옵니다.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은 징검다리를 밟고 지나가는 살아있는 생명들입니다. 그에 달리 ‘발밑의 묵묵한 목숨’은 그 생명들이 밟고 지나가는 징검다리를 말하는 듯합니다. 이 징검다리는 누가 ’과도한 성냄‘으로 혹은 ’기쁨’으로 물길을 불어나게 하더라도 ’이내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처럼’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저를 밟고 지나가는 ‘모두’를 ‘건네주고 건네주‘어요. 결코 움직이는 법 없이, ’은은한 부동‘을 지켜냅니다. 이런 징검다리 같은 것을 ’나의 유산‘으로 삼고 싶다는 것으로 시는 끝이 나요.
징검다리의 속성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네주는’ 것이지요. 징검다리는 어떤 외부 사정에 의해서 잠시 모습을 감출 수는 있지만, 한 번 박힌 자리에서 결코 움직이는 법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언제나 누군가의 발밑자리가 되어줍니다. 달리 말하면 징검다리 덕분에 누군가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시를 꼼꼼히 읽다 보니, 화자가 왜 ‘나의 유산’으로 ‘징검다리 같은 것’을 삼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까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그것도 발밑자리에서 ‘너’를 받쳐주겠다는 말은 남은 ‘너’에게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가‘ 고민하셨을 텐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사실 제목을 보자마자 그 생각부터 했어요. ‘내가 이곳을 떠나는 날이 오면, 소중한 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물질적인 유산은 별로 남기지 못할 것 같아요. 그쪽으로는 재주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요. 다만 제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마음과 기억뿐입니다.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 그 순간의 마음을 빠뜨리지 않고 남겨놓고 싶어요. 그래서 이토록 열심히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보니 물질적인 것 중에도 남길 것이 있네요. 바로 제 책들입니다. 최근 5년 간 저는 이전까지 산 책보다 더 많은 책들을 사서 책장 가득 채우는 중인데요. 중간중간 선물도 하고 기증도 하지만 책장은 자꾸만 무거워지네요.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잠시 생각했어요. 제가 떠난 자리에 남은 아이들이 제가 읽었던 책들을 꺼내 읽으며 ‘아, 우리 엄마는 이 책에서 이런 문장에 오래 머물렀구나’, ‘이 책의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구나’, ‘이 책은 손때가 많이 묻은 걸 보니 특별히 더 많이 아꼈던 책이구나’, 그런 생각을 해준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유산이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산을 떠올리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