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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행복한 문학 시간

by 진아 Mar 22. 2025

학교를 옮길 때, 여러 선택지 중에서도 주변의 만류가 가장 컸던 이 학교를 희망했던 건, ‘수업’  때문이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강의식 수업 대신 활동식 수업을 고수했지만, 쉽지 않았다. 학생들도 동료들도 강의식 수업을 선호하는 분위기였고, 그곳에서 나는 외로운 섬 같을 때가 많았다. 교과서 지문 외 다양한 지문을 다뤄보려 늘 새로운 지문을 찾아다녔고, 아이들  모두를 수업에 참여하게 하려고 매차시 활동지를 새로 만들었다. 매시간 수업 피드백을 써주기도 하고 사비를 들여 수업 자료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열정 넘치는 동료 교사로 여겨주는 분들도 많았고 아이들도 꽤 잘 따랐지만,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귀찮아하는 아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들의 눈치까지 살피랴 누구에게도 함께 이렇게 수업해 보자고, 이렇게 하는 것이 너희들의 성장과 닿을 거라고 확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이곳은 특목고라는 특성상 아이들의 성적이 높은 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아이들의 태도가 대부분 매우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그러하니, 수업으로 뭔가를 해보고자 하는 교사들에게는 꿈꾸던 수업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곳이라고. 그 점이 여러 가지 우려를 단박에 불식시킬 만큼 매력적이었다.


올해 내가 맡은 과목은 2학년 문학과 3학년 논술이다. 3학년 교양과목인 논술과 달리, 2학년 문학은 일반 선택 과목이므로 학생들의 내신 성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과목이다. 일반계고에서는 내신성적에서 중요한 과목일수록 강의식 수업을 더욱 선호하던 터라 멈칫했지만, 이곳에서는 이곳의 문화대로 ‘문학적인 수업’을 제대로 해보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2월 중순, 학년과 과목이 정해진 후, 정말 많이 고민했다. 문학 수업이 필요한 이유, 문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얻었으면 하는 가치, 문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 고민을 거듭할수록 답에 가까워지기보다 질문이 불어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문학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라기보다는 ‘읽고 향유하는 것‘에 가까운 과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 작품 자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문학‘을 읽는 독자로 키워내는 것. 거기서 올해 수업의 캐치프레이즈가 나왔다.


*문학을 읽는 사람의 삶과 읽지 않는 사람의 삶이 같을 리 없다.


올해 모든 수업은 결국 이 문장을 향해 나아가는 수업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문학의 기능과 가치, 의미와 효용을 두루 느끼고 온전히 문학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문학을 읽는 독자로 키워내는 것.


매차시 새로운 제재를 찾고 새로운 활동지를 만들고 있다. 활동지 끝에는 반드시 그날 읽은 문학 작품과 관련된 단어를 넣어 캐치프레이즈를 넣으며. *사랑 시를 읽은 사람의 사랑과 읽지 않은 사람의 사랑이 같을 리 없다.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수필을 읽은 사람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이 같을 리 없다. *문학을 통해 행복을 고민해 본 사람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이 같을 리 없다. *봄을 다룬 수필을 읽은 사람의 봄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봄이 같을 리 없다. 문구를 넣을 때마다 책임감이 생긴다. 아이들을 문학에서 도망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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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의 활동지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정과 번복을 거치는지 모른다. 어렵게 골라둔 제재를 폐기하고 새로운 제재를 넣는 일도 다반사, 질문 하나를 놓고 며칠간 씨름하는 일도 다반사, 활동지 구성을 이렇게 바꿨다 저렇게 바꿨다 하기도 다반사.


수업 준비에 갖은 공을 들이는 와중에, 업무도 구멍을 내서는 안되니 퇴근 시간이 계속 늦어졌다. 결국 3월 중순에 입술이 터지고 말았다. 며칠 후엔 감기까지 걸렸다. 보통 이런 몸 상태는 7월 말, 한 학기 동안 혹사당한 몸 상태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너무 재밌다. 수업을 고민하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 교사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얼마나 엄청난 행운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원래도 학교와 수업을 사랑하던 교사였던 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느낌이다.


이 늪은, 달콤하기 그지없는, 마치 초콜릿으로 가득한 늪 같다. 손가락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깊게 푹—- 담가 달콤함을 만끽하고 싶은.


다음주에는 실제 문학 수업 이야기를 기록해봐야지. 아이들과 나눈 사랑과 이별 이야기, 행복과 봄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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